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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 경영평가 살펴보기
공공기관 경영평가 살펴보기
  • 전현정
  • 승인 2022.10.16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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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평가는 피할 수 없다. 사람이 태어난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아니 그 이후에도 평가가 따라다닌다. 말을 배우고 글을 깨우치기 시작할 무렵에 하는 평가는 있는지 없는지 모르고 넘어가는 느슨한 평가라고 한다면, 대학입시를 비롯한 각종 시험에서 하는 평가는 성적으로 순위가 매겨지고 당락이 결정되는 냉혹한 평가라고 할 수 있다. 직장에서는 근무성과로 평가를 받고 사회생활에서는 성품이나 인간관계로 평가를 받기도 한다. 좋은 평가에 기뻐하고 나쁜 평가에 낙담하면서 살아간다. 끝없는 평가에 시달려왔기 때문인지 평가에 연연하지 않는 초연한 모습에 감동을 받기도 한다. 평가에는 무수히 많은 종류가 있고 이에 대한 생각도 다를 수밖에 없지만, 올바른 평가는 사람이나 조직이 발전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반면, 잘못된 평가는 좋지 않은 결과를 낳는다.

매년 3월이면 공공기관 경영평가가 시작된다. 최종 평가결과를 매년 6월 20일까지 국회와 대통령에 보고하도록 법률에서 정하고 있기 때문에, 평가를 받는 공공기관이나 평가를 하는 위원들이나 3월부터 5월까지 봄꽃을 느낄 겨를도 없이 평가 업무로 바쁜 나날을 보내게 된다. 공공기관은 정부의 출자 또는 재정지원 등으로 설립·운영되는 기관을 말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대표적인 공공기관으로는 한전, 코레일, LH, 인천국제공항공사 등의 공기업이 있다. 국민연금이나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같이 정부의 업무를 위탁받아 집행하는 준정부기관도 공공기관에 속한다.

지난 3년 동안 기획재정부의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참여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생소한 것이 많았다. 행정학이나 경영학에서 사용하는 언어와 체계는 법학에서 사용하는 것과는 달랐다. 공공기관 경영실적 보고서에는 1년 동안의 성과와 실적이 낯선 언어와 표현으로 빽빽하게 채워져 있었다. 변호사로서는 드물게 경영평가 업무를 경험하는 소중한 기회였기에 새로 배운다는 생각으로 평가업무를 수행하였다.

공공기관들이 목표를 세우고 체계를 갖추어 목표 달성을 위해 노력하는 구체적인 과정을 들여다 본 것 자체가 좋은 경험이었다. 우수한 기관과 그렇지 못한 기관의 차이를 알 수 있었다. 리더가 어떤 비젼을 가졌는지에 따라 조직이 달라지고 변화하는 것도 눈에 들어왔다. 조직의 아픈 경험을 새로운 발전의 계기로 삼아 거듭나는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평가업무를 하면서 조직의 운영, 리더의 역할, 구성원의 행복과 소통, 공동체에 대한 공헌, 이런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평가는 항상 어렵다. 평가를 하면서 평가를 받는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더군다나 공공기관이라는 방대한 조직을 평가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힘든 경영평가가 공공기관에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윤을 추구하는 사기업은 시장에서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공공기관에는 시장에 의한 평가나 통제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다. 세금이 투입되기 때문에 국민이 공공기관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지만, 엄밀히 말해 기업의 주주와 같은 주인은 없다.

공공기관의 경우에는 국민의 이익보다 공공기관이나 공공기관 구성원의 이익, 정부의 입김 등 다른 이익이 우선시될 수 있다. 공공기관이 방만하게 운영될 수도 있고 사업 목적과 상관없는 일에 자원을 낭비할 수도 있다. 국민연금과 같은 연기금의 경우에는 기금을 잘 운용·관리하고 있는지, 기관투자자로서 스튜어드십 코드, 즉 주주권 행사 준칙에 따라 의결권을 행사하고 있는지에 관해 의구심이 들 수도 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시장에 의한 통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공공기관이 설립목적에 맞게 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는지, 국민에게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지 정기적인 평가를 하게 되었다.

좋은 평가가 되려면 평가기준이 적정해야 한다. 평가기준이 잘못되어 있으면, 평가를 아무리 잘 해도 의미가 없고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 공공기관 경영평가의 커다란 축은 공공성과 효율성이다. 이 두 가치가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적절하게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2017년에 ‘사회적 가치’라는 평가지표가 신설되었다. 일자리 창출, 균등한 기회와 사회통합, 안전과 환경, 상생협력과 지역발전, 윤리경영이 사회적 가치의 구체적 평가부문이다. 윤리경영이나 안전은 공기업과 사기업을 막론하고 중요한 요소이다. 균등기회에서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차별적 요소가 문제되고, 상생협력에서는 지역경제 활성화와 중소기업과의 상생협력이 문제된다. 오늘날 경영의 화두인 ESG 경영과 유사한 점이 많다. 그러나 이와 같이 좋은 내용도 공공기관의 본업과 동떨어져 있으면 본말이 전도되는 부작용이 생긴다. 평가 기준에 맞추어 좋은 평가를 받으려고 본업과 상관없는 사업을 벌이거나 공공기관에 그렇게 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부작용이 크다. 공공기관이 사회에 유익한 일을 하더라도 그것이 공공기관의 설립목적이나 본업과 연결되어야 한다.

교육 관련 어느 공공기관에서 경제적 불평등으로 꿈을 포기하는 예체능 지역인재를 지원하기 위하여 재능을 가진 지방의 청소년들에게 장학지원을 한 것은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장애인 관련 기관에서 장애인을 위해 많은 편의시설을 갖춘 모습을 보았던 것도 오래 기억에 남는다. 공공기관에서 성과관리업무를 담당한 직원들은 정말 열심이었다. 평가를 하는 입장에서는 고마운 일이지만, 우수한 인재들이 성과관리업무에 매달려야 하는 것이 안타깝기도 했다.

좋은 평가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평가 자체를 되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평가업무의 낭비적 요소를 없애고 평가를 통해서 나아지는 점이 있어야 한다. 공공기관을 평가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내세워 평가를 위한 평가를 해서는 안 된다. 공공기관이 경영평가를 통해 공공기관의 문제점과 성과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 운영을 개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평가의 본래 목적을 잊어서는 안 된다.


글 전현정 변호사 (법무법인 케이씨엘)

 

전현정 변호사는…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1990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23년간 판사로 일하다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를 끝으로 2016년 법원을 떠났다. 현재는 법무법인 KCL 고문변호사다. 한국여성
변호사회 부회장, 법제처 법령해석심의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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