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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과 헤어짐
만남과 헤어짐
  • 전현정
  • 승인 2022.10.30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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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변화를 나타내는 중요한 지표 중 하나가 이혼율이다. 우리나라는 예전과 달리 이혼율이 높은 나라에 속한다. 2017년에는 OECD 국가 중에서 이혼율이 3위를 차지할 정도로 이혼율이 빠르게 증가했다. 이에 따라 이혼에 관한 생각도 급속하게 바뀌고 있다.

만남이 선택이라면 헤어짐도 또 하나의 선택이다. 결혼을 운명으로 받아들였던 시대에는 헤어지는 것이 선택일 수 없었다. 그러나 결혼을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시대에도 이혼은 쉽지 않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서 발표한 2019년도 상담통계에 따르면, 60대 이상 이혼상담 비율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특히 남성이 이혼상담을 하는 비율을 보면 60대 이상이 43.5%나 된다. 노년의 이혼은 그동안 견뎌온 삶 대신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미성년 자녀가 없는 부부의 이혼도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에 비해 어린 자녀를 둔 젊은 부부는 어렵게 이혼을 결정한다. 헤어지지 않으면 안 되는 절박한 사정이 있어도 부부로 맺어졌던 인연 속에 돌봐야 할 자녀가 있기 때문이다.

이혼에는 협의이혼과 재판상 이혼이 있다. 부부가 협의를 하여 이혼을 하는 경우에는 두 사람의 의사가 합치되면 이혼을 하게 된다. 그러나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에는 가정법원에서 재판을 통해 이혼을 해야 한다. 재판상 이혼에서 유책주의와 파탄주의는 중요한 논쟁 중의 하나이다. 파탄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들이 많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유책주의를 유지하고 있다. 대법원은 2015년 9월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에 대해 전원합의체 판결을 선고하였다. 상대방에게 혼인 파탄의 책임이 있는 경우에만 이혼을 허용하는 유책주의를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혼인이 파탄상태에 빠지면 그 책임 유무를 따지지 않고 이혼을 허용하는 파탄주의로 전환할 것인지 문제되었다. 당시 의견이 7:6으로 엇갈릴 정도로 의견이 팽팽하게 나뉘었다. 다수의견은 유책주의를 유지해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는 허용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다만 혼인생활의 파탄에 대한 유책성이 그 이혼청구를 배척해야 할 정도가 아니라면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허용할 수 있다고 보았다. 반대의견은 파탄주의를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의 판례에 따르면 혼인의 실체가 사라졌다고 해도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혼인 파탄의 책임이 어느 쪽에 있고 그 경중을 따져 이혼 여부를 결정한다.

판사가 된 지 3년이 되었을 때 서울가정법원에서 가사사건을 담당하였다. 이혼사유를 둘러싸고 잘잘못을 따지는 이혼재판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가족들이 증인으로 나와 상대방이 잘못했다면서 그동안 살아온 과정을 시시콜콜 들추어낸다. 재판을 한다는 것 자체가 당사자에게도 매우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가정법원 근무를 마치고 지방에 내려가 근무하는 기간 동안 법원장님의 배석판사로서 가사합의 사건을 담당한 적이 있었다. 그때 가사조정을 담당하면서 ‘잘 헤어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파탄주의의 장점은 잘잘못을 지나치게 따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혼사유를 들춰내는 것이 당사자를 힘들게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협의이혼과 재판상 이혼 사이에 간극이 너무 크다. 협의이혼에서는 당사자가 이혼에 동의하기만 하면 모든 걸 덮어두고 헤어질 수 있는데, 재판상 이혼을 하려면 시시콜콜 이혼사유를 따지니까 당사자들도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고 제도를 설계할 필요가 있다. 어려움을 감안하고 이혼을 선택한 사람들이 좀 더 쉽게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한순간 행복한 일이 있다고 해서 그 순간의 행복이 지속될 수 없듯이, 어렵거나 불행한 일도 시간이 지나면 회복된다. 그러나 이혼과 같은 경험은 사람의 행복감을 심각하게 낮추고, 행복감이 원래 수준으로 돌아오는 데에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한다(최인철, 『굿라이프』). 그런데 이혼 전후 삶의 만족도 변화를 보면, 이혼 직전보다는 이혼했을 때 만족도가 나아진다. 부부관계가 도저히 회복될 수 없을 정도로 파탄이 났다면 혼인은 한낱 형식에 불과할 뿐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하나의 가족을 이루기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것에서 벗어나기도 힘들다. 결혼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을 때에는 이혼이라는 또 하나의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생기는 상처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일을 당사자에게만 맡겨놓아서는 안 된다. 이혼율의 증가와 이혼에 관한 인식의 변화를 반영하여 이혼에 따른 후유증을 줄이는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


글 전현정 변호사 (법무법인 케이씨엘)

 

전현정 변호사는…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1990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23년간 판사로 일하다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를 끝으로 2016년 법원을 떠났다. 현재는 법무법인 KCL 고문변호사다. 한국여성
변호사회 부회장, 법제처 법령해석심의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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