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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세대에 대한 책무, 양육비 이행
미래세대에 대한 책무, 양육비 이행
  • 전현정
  • 승인 2022.11.20 14: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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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그동안 이혼으로 인한 ‘어른의 문제’에 많은 관심을 기울인 반면 ‘자녀의 문제’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소홀한 모습을 보여 왔다. 가령 이혼 당사자 사이의 위자료나 재산분할 문제에 비하여, 이혼 후 자녀의 양육 문제는 부수적으로 고려될 뿐이었다. 그러나 이혼 후 양육비를 이행하도록 하는 문제는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이혼을 한다고 해서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단절되는 것은 아니다. 부모가 이혼을 한 다음에도 자녀를 양육할 책임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자녀 양육을 맡고 있지 않은 사람은 양육을 맡고 있는 상대방에게 양육비를 지급할 의무를 진다. 이때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다면 상대방은 법원에 양육비 지급을 청구하는 재판을 하고 법원의 결정을 받아 집행하는 것이 원칙이다. 여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국가는 양육비 이행을 강제하는 별도의 조치를 할 수 있는가? 이처럼 국가가 개인들의 양육비 이행을 강제하기 위한 조치를 하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나라에서 양육비 이행률, 즉 이혼 후 미성년 자녀를 직접 양육하지 않는 부모가 양육부모에게 양육비를 지급하는 비율은 30%대에 그치고 있다. 미국의 양육비 이행률이 72%에 이르고 있는 점과 비교하면 우리나라 양육비 이행률이 얼마나 낮은지 알 수 있다.

양육비 이행확보의 강화방안에 대해서는 그동안 정책 개선과 함께 꾸준한 논의가 있었지만 실질적인 효과가 미미했다. 심지어 ‘배드 파더스’사이트에서 자녀의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부모의 신상정보를 공개하였다가 그 관계자가 정보통신망을 이용하여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것이라며 1심 재판을 받기도 하였다. 최근 들어 양육비 이행을 강제하기 위한 문제에 관심이 점차 많아지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저소득자에게 경제적 어려움은 매우 절실하고 고통스러운 문제이다. 양육비가 제때 지급되지 않으면 미성년자에게는 형언하기 어려운 아픔과 고통으로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양육비는 일반적인 채권채무 사례와는 다른 문제이다.

2020년 한국여성변호사회에서는 「양육비 미지급 문제 해결을 위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양육비 이행은‘적시의 정기적 지급’이 핵심이다. 절차가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면 문제가 있는 것이다. OECD 다수의 국가들은 아동 부양과 관련된 기관에서 신속하고 효율적인 시스템을 마련하고 있는 데 비해 우리나라는 여러 제도를 두고 있지만, 신속성이나 절차의 간소화라는 측면에서 매우 뒤떨어져 있었다.

2020년 12월 9일 국회에서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감치명령을 받고도 양육비 채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신상이 공개되고 출국금지가 될 수 있으며, 감치명령을 받고 1년 이내에 양육비 채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받을 수 있게 된다. 여태까지 양육비 미지급에 대해 가장 무거운 제재는 30일의 범위에서 감치를 하는 것이었지만, 집행이 되는 경우가 오히려 드물었다. 감치명령을 받기까지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해서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고 감치명령의 실효성도 크지 않았다. 이번 개정 법률도 감치명령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양육비 이행을 강제하기 위해 진일보한 입법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세대는 앞선 세대와 미래세대를 이어주는 끈과 같은 존재이다. 아동은 아직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기 때문에 미래세대를 구성하는 아동을 양육하는 것은 개개인의 자율적 선택에 맡겨놓을 수만은 없다. 국가가 자녀의 양육비 이행을 강제하는 것은 부모로 하여금 미래세대의 구성원에 대한 책무를 이행하도록 하는 것이다. 국가가 아동의 양육을 떠안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지만, 부모의 이혼 후에 그 자녀가 방치되지 않고 잘 자랄 수 있도록 국가의 후견적 개입이 불가피하다.

무엇보다도 양육비를 간편하고 쉽게 지급받을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양육비를 사적으로 해결해야 할 개인 간 채무로 보고 채권확보와 집행 모두 사법절차에 맡겨두고 있는데, 집행단계에서는 적어도 행정적 절차가 중심이 되도록 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양육비 지급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자녀를 직접 양육하지 못하는 경우에 자녀의 복리를 위하여 양육비를 제때 지급하고 면접교섭을 성실히 하는 것은 양육의 한 방법이다.

글 전현정 변호사 (법무법인 케이씨엘)
 

 

전현정 변호사는…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1990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23년간 판사로 일하다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를 끝으로 2016년 법원을 떠났다. 현재는 법무법인 KCL 고문변호사다. 한국여성
변호사회 부회장, 법제처 법령해석심의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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