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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케로의 『의무론』 단상 - 도덕적 선(善)과 유익함
키케로의 『의무론』 단상 - 도덕적 선(善)과 유익함
  • 전현정
  • 승인 2023.02.19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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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몫이나 권리를 앞세우는 ‘권리의 시대’이다. 무엇이 나에게 더 많은 이익을 가져다줄 것인지가 행동의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유권자의 표를 얻어야 하는 정치인들이 내세우는 공약은 무언가를 주어야 한다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누군가에게 어떤 의무를 부과하겠다는 것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의무’라는 말은 사람을 짓누르는 느낌이 든다. 어떤 것에도 구속되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꿈꾸어도 시원치 않을 세상에 의무에 관해 얘기하는 것이 뜬금없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개인이 자신의 권리를 누리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의무를 다하고 있어야 한다. 넓게 보면, 우리의 삶 자체가 의무일 수 있다.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의무, 인간으로서의 도리, 이 모든 것이 의무로 연결될 수 있다.

얼마 전 키케로의 『의무론』(허승일 옮김)을 읽었다.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Marcus Tullius Cicero)는 고대 로마 공화정 말기 혼란의 시대를 살았던 법률가이다. 이 책은 2000년 전에 법률가이기도 했지만 탁월한 정치가이자 웅변가, 철학자였던 키케로가, 로마의 정계에서 잠시 물러나 여가와 고독이 강요된 상황에서 시간을 헛되이 하지 않고 철학으로 마음을 달래던 시기에 아테네에서 유학하고 있던 그의 아들에게 보낸 편지를 모은 것이다.

키케로는 ‘공적으로나 사적으로, 정치적인 것이든 가정일이든, 혼자만의 문제이든 타인과 더불어 행동하든 간에 생활의 어떤 부분도 의무에서 벗어날 수 없으니, 인생에서 도덕적으로 옳고 선하고 명예로운 모든 것은 의무를 이행하는 데 있고, 도덕적으로 옳지 않고 나쁘며 불명예이며 추한 것은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데 있다’고 말한다. 이것이 키케로가 그처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의무’에 대해 탐구하고 규칙을 제시하기 위해 글을 쓰고 아들에게 편지를 보낸 이유인 것 같다.

키케로는 도덕적으로 선하지 않은 것은 그 어떤 것도 유익하지 않으며, 유익하지 않은 것은 그 어떤 것도 도덕적으로 선하지 않다고 강조한다. 유익한 것이 도덕적으로 선한 것과 상충되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이는 실제로는 유익하지 않은데 유익하게 보이는 것일 뿐, 도덕적으로 악한 것이 있는 곳에 유익함이란 있을 수 없다고 한다.

도덕적 선과 유익함이 상충하는 듯한 사례를 들어 우리에게 묻는다. 선한 사람이 자신은 알고 있지만 다른 사람은 모르는 결점 때문에 자기 집을 팔려고 내놓았다고 하자. 그 집은 건강에 좋지 않은 집인데 건강에 좋은 집으로 생각되고 나쁜 재목으로 축조되어 붕괴 위험이 있으나 이러한 사실을 집 주인 이외에는 아무도 모른다. 만일 판매자가 구입자에게 이러한 사실을 말해주지 않고 적정가격보다 더 많은 돈을 받고 팔았다면, 그는 부정직하거나 도덕적으로 옳지 않게 행동하였는가? 누군가는 물건을 팔려고 내놓은 사람이 물건이 지닌 결점을 모조리 밝히는 행위보다 어리석은 행위는 없다고 말한다. 또 누군가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잘못을 저지르도록 상대방을 유도하여 손실을 끼치는 행위는 잘못이라고 말한다. 도덕적 선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유익함이나 이로움을 추구할 것인가를 놓고 갈등하는 상황에서 무엇이 올바른 선택일까?

키케로는 ‘네가 알고 있는 것이 남에게 알려질 경우 그들에게 이득이 되는데도 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알리지 않을 때, 그것은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숨기는 것이다. 이런 행위를 하는 자는 정직하지도 순박하지도 명예롭지도 정의롭지도 선하지도 않은 사람이며, 교활하고 속이 컴컴하며 간교하고 남을 잘 속이고 사악하고 난폭하며 사기와 음흉의 세계에서 자란 사람이다. 이 모든, 나쁜 비난의 수식어가 붙을 행위를 하는 것이 과연 유익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도덕적으로 선하지 않은 행위는 결국에는 유익할 수 없다는 것이다.

키케로는 정복자나 군인만이 영웅이었던 세상에서 그와는 다른 방법으로 영웅이 될 것을 꿈꾸었고, 로마의 국부로 추앙을 받았다. 그러나 정치가였던 탓이어선지 매우 드라마틱한 삶을 살아야 했다.

도덕적으로 선한 것은 무엇이든 유익하고 도덕적으로 선하지 않은 것은 유익하지 않다던 그의 말이 현실세계에서 100% 맞는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혼돈의 시기에 이 책을 읽으면서 그간 희미해지기도 했던 가치와 원칙을 되돌아볼 수 있었다. 인간으로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삶의 가치나 윤리에 대해 키케로는 후세인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었고, 이것은 현재까지도 유효하다.

글 전현정 변호사 (법무법인 케이씨엘)

 

전현정 변호사는…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1990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23년간 판사로 일하다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를 끝으로 2016년 법원을 떠났다. 현재는 법무법인 KCL 고문변호사다. 한국여성
변호사회 부회장, 법제처 법령해석심의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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