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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년만의 단죄, 친일앞잡이 이두황은 누구인가? … 농민군 토벌에 '국모 시해'까지
백 년만의 단죄, 친일앞잡이 이두황은 누구인가? … 농민군 토벌에 '국모 시해'까지
  • 김정현 기자
  • 승인 2022.08.15 09: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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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전주시 완산구 중노송동에 위치한 친일 반민족 행위자 이두황 묘.
전북 전주시 완산구 중노송동에 위치한 친일 반민족 행위자 이두황 묘.

광복 후 77년이라는 긴 세월이 지났어도 친일의 잔재는 우리 곁에 여전히 남아있다. 전북 전주시 기린봉 초입에 자리잡은 이두황(1858~1916)의 묘가 대표적이다.

민족을 배반하고 일제의 총칼을 휘두른 친일 반민족행위자, 그 중에서도 이두황은 죽는 날까지 일제치하에서 부귀와 영달을 누린 앞잡이었다.

이두황은 '이토 히로부미'의 양아들을 자처했고, 실제로도 이토 히로부미의 총애를 받아 지원을 여러차례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두황의 일본 이름 '이토 시치로(이토의 일곱번째 아들)'에서도 이를 엿볼 수 있다.

77주년 광복절을 맞아 이두황의 무덤을 찾았다. 잃었던 국권을 되찾은 기쁨 그 뒤편으로, 암울하고 참혹했던 흔적이 초라하게 남아있었다.

이두황이 잠들어 있는 곳은 전북 전주시 중노송동의 기린봉이다. 이두황은 동학농민군 토벌에 앞장섰고,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친일 반민족 행위자다. 역사 자료 곳곳에 그의 잔혹한 행적이 낱낱이 드러나있다. 하지만 그가 기린봉 자락에 묻혀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광복절을 앞두고 찾은 기린봉 산책로는 전날부터 내린 비로 젖어있었다. 축축한 산길로 400미터쯤 발걸음을 옮겼을까. 이두황의 무덤을 찾는 일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초입에 들어서자 빨간 잉크로 '친일 반민족 행위자, 이두황'이라는 글씨가 써진 푯말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 위로 낭창낭창한 무궁화 한 송이가 이에 동의라도하는 듯 고개를 들고 있었다.

이두황의 묘는 호석이 둘러진 무덤과 망주석 2기, 비석 등으로 꽤나 널찍하게 조성돼 있었다. 전북 도장관으로 임명된 뒤 죽는 날까지 이두황이 누렸을 호사가 눈에 선했다. 100여년 전 그의 죽음으로 지역의 수많은 인력과 재원이 동원됐을 생각을 하니 이곳의 풀 한 포기도 아깝게만 보였다.

묘소 곳곳에는 '나쁜새끼 영원히 기억되라', '네 죄를 만천하에 알리리라', '후손들까지 평생 불행해라' 등 분노에 찬 나무푯말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무덤에는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있어 봉분의 둥근형태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2m 높이에 이르는 비석에는 이두황의 행적으로 추정되는 글씨들이 새겨져 있었다. 하지만 화려한 비석 뒤쪽에 새겨진 이름들은 대부분 훼손돼 그 자취를 감췄다.

무덤에서 도심쪽으로 370여m 떨어진 곳에는 '이두황 단죄비'가 세워져 있다. 민족문제연구소전북지부가 이두황 사망 100년 뒤인 2016년에 세운 것이다. 100년만에 그를 다시 깨워 처벌한다는 의미를 담은 이두황 단죄비는 그의 악행을 세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단죄비에 따르면 이두황은 서울 출생으로 동학농민혁명 당시 일본군과 관군의 연합 진압군의 지휘관으로 임명돼 크고 작은 전투에서 동학농민군들을 무참히 살해하고 진압하는 데 앞장섰다. 특히 보은 장내리의 민가 수백 채를 불사르고, 장흥에서는 동학농민군들에 대한 무자비한 살육을 자행했다.

이두황은 이른바 '여우사냥'으로 불렸던 명성황후 살해 사건에 훈련대 1대대장으로 우범선, 이진호, 이주회 등과 함께 조선인으로 직접 군대를 이끌고 참여해 일국의 국모를 살해하고 불태우는 범죄 행각에 가담했다.

사건 직후 일본으로 도주했던 이두황은 이토 히로부미의 비호 아래 중추원 부찬의로 화려하게 복귀, 1908년 전라북도 관찰사에 임명돼 이른바 일본의 '남한대토벌'로 불리던 호남지역 의병운동을 초토화시키는 데 앞장섰다.

그는 1910년부터 1916년 전라북도 도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일본의 식민통치 하수인으로 복무했고, 재임 중 지방토지조사위원장을 겸임, 일제의 토지 수탈에 적극 협력했다. 이러한 공로로 일제로부터 한국병합기념장, 일본적삽자사조선본부 유공장, 천황즉위기념 대례기념장, 훈3등서보장 등을 수여받기도 했다.

김재호 민족문제연구소 전북지부장은 "이두황은 친일파 중에서도 잔인하고 악랄했다"며 "이두황 사후 100년을 맞아 2016년 광복절을 앞두고 많은 분들이 그의 악행에 대해 알 수 있도록 단죄비를 세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아직도 민족 반역자의 후손들이 그 땅 일대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며 "이렇게 청산해야할 친일 잔재가 주변에 널려있지만 사회의 관심이 부족한만큼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연구와 홍보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Queen 김정현 기자] 사진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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