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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리 국수 가게에서 본 여성 농업인의 도전과 과제
삼성리 국수 가게에서 본 여성 농업인의 도전과 과제
  • 이복실
  • 승인 2022.10.29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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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시골 우리 집 근처에 국수 가게가 새로 생겼다. 가게보다는 농막이 더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하지만 주변 자연환경은 너무 좋았다. 앞에는 흑천이 흐르고 넓은 밭에는 옥수수가 익고 있었다. 메뉴도 잔치국수와 비빔국수, 딱 두 개였지만 국수 맛이 다 거기가 거기일 것으로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먹어보고 깜짝 놀랐다. 시원하기도 하고 칼칼하기도 하고 감칠맛 나는 맛이었다. 육수를 어떻게 내는지 물었더니 새벽에 일어나서 그날 필요한 육수를 매일 우린다고 했다. “대파, 무, 다시마, 멸치, 양파 등 다양한 천연재료를 넣어 한참 끓여요.” 맛에 감탄하여 내가 덕담을 건넸다. “대박 나실 것 같아요.” 초기에 나는 단골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점점 손님이 늘더니 정말 대박이 났다. 손님들이 자발적으로 SNS에 올려 입소문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손님이 많아지니 기다리기가 싫어서 국수 가게 가는 일이 뜸해졌는데 국수 가게가 곧 문을 닫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렇게 장사가 잘되었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알고 보니 무허가라고 군청에 민원신고가 들어갔다는 것이다.

오픈한 지 딱 두 달 만의 일이다. 앞으로 그녀의 국수를 못 먹는다고 생각하니 아쉬워서, 가게 마지막 날 국수를 먹으러 갔다. 알고 보니 국수가게 사장님은 나와 동갑이었다. 그녀는 시집와서 지금까지 40년간 농사를 지었다고 했다. 그녀는 자기의 거친 손을 보여주면서 “남편이 5% 일하고 내가 95% 일했어요.”라고 말했다. “그렇게 억척스럽게 일했지만, 농업으로는 기본적인 생활만 가능했어요.” 똑같이 열심히 일해도 도시인보다 소득이 적을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이다. 시골로 이주해 오는 도시 이주민들의 생활과 시골 원주민들의 차이가 이를 말해준다. “농민은 왜 잘 살 수 없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에, 농지에서 농가공을 통하여 이익을 창출할 방안을 모색하였어요.”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은 요리였어요.” 마음먹은 지 두 달 만에 그녀의 땅에서 국수 가게를 열었다.

2018년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실시한 여성 농업인 실태조사에 의하면 여성 농업인이 농업 이외에 생산 소득을 얻고 싶은 의향은 62.5%로 높게 나타났다. 현재 참여율이 32.1%인 점에 비추어 봤을 때 여성 농업인들의 희망은 훨씬 의욕적임을 알 수 있다. 국수가게 사장님도 이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농사로는 소득을 내기 어려우니 농업 외에 다른 소득을 창출하고 싶은 마음. 그런데 가게를 열고 보니 소득 외에 얻는 것도 있었다. 손님들의 칭찬 한마디가 그녀를 신나게 하였다. 어떤 어르신은 그동안 입맛이 없어서 밥을 통 못 먹었는데 국수를 먹고 입맛을 찾으셨다는 분도 있었고, 요양하기 위하여 시골에 왔다가 외롭던 차에 인근에 국수 가게가 생겨서 좋아하셨던 분도 있었다. 국수 한 그릇이 갖는 의미와 영향은 생각보다 컸다.

그런데, 가게를 연 지 두 달 만에 농지법 위반으로 민원신고가 들어온 것이다. 시골에는 농지에서 식당을 운영하거나 소매업허가만 받고도 음식을 조리하여 파는 곳을 쉽게 볼 수가 있다. “농촌 지역이다 보니 융통성 있게 농민의 실정을 고려해주나 이런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하지만 법은 법이다. 단속 공무원이 부족하여 적극적으로 점검하지는 못하지만, 민원이 들어오면 어쩔 수가 없다는 것이다. 법은 근엄하지만, 현실은 민원이 들어온 곳만 조치하고 그렇지 않은 곳은 방관하고 있었다. 문을 닫는다고 하니 인근 주민들이 많이 아쉬워했다.

삼성리 국수 가게는 주민들의 식사 한 끼에 대한 욕구와 소통과 교류의 장소의 필요성에 대하여 시사점을 준다. 농촌은 도시지역과 달리 배달음식이 들어오기도 어렵다. 스스로 식사를 해결하기 어려운 노인들도 계시지만, 온종일 논밭에서 땀 흘리며 일한 여성 농업인들도 저녁밥을 지을 여력도 기운도 없다. 시범사업이라도 식사를 실비로 판매하는 마을 부엌을 만드는 방안을 제안해본다. 굳이 마을회관에서 마을 부엌을 만들 필요는 없을 것이다. 삼성리 국수 가게처럼 농막이든 비닐하우스이든 ‘나의 부엌’을 활용하여 음식을 파는 형식도 좋다. 함께 모여 식사하며 소통하는 공간이 되어 주민들의 외로움도 방지하고 식사도 해결하니 주민들의 생활이 편리해질 것이다. 여성 농업인의 권익향상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조만간 삼성리 국수가게 사장님이 법의 테두리 안에서 다시 멋있게 등장하기를 기대하며 그녀의 도전을 응원한다.

글 이복실(전 여성가족부 차관) 

 


이복실은…

전 여성가족부 차관, 세계여성이사협회 한국지부 회장.
서울시립대 도시행정학과를 졸업,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USC에서 교육학으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1985년 여성으로서 네 번째 행정고시 합격자이다. 30년간 중앙부처에 재직했으며,
2013년 여성가족부가 설립된 이래 최초 여성 차관으로 임명됐다.
저서로는 <여자의자리 엄마의 자리>, <나는 죽을 때까지 성장하고 싶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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