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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와 공생
사피엔스와 공생
  • 전현정
  • 승인 2023.02.04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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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과 법

지난 3년 동안 인류가 코로나 팬데믹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이제는 코로나 19 감염증이 팬데믹, 즉 세계적 대유행이 아니라, 풍토병으로 굳어진 감염병이라는 의미에서 엔데믹으로 전환되어 수세대에 걸쳐 지속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2021년 7월에는 서유럽이 100년 만의 대홍수로 많은 피해를 입었다. 독일과 벨기에를 중심으로 서유럽에 집중적으로 쏟아진 비로 강물이 불어나 건물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물에 휩쓸렸다. 독일 쾰른 지역에서는 하루 동안에 7월 월평균 강수량의 두 배 가까운 물 폭탄이 쏟아졌다. 독일에서 최소 133명, 벨기에에서 20명이 사망하고 실종된 사람도 1,000여 명에 이르렀다. 우리나라도 드물지 않게 예상치 못한 폭우에 놀라곤 한다. 기후위기와 환경문제가 인류의 미래에 재앙이 될 수 있겠다는 걱정에 우리 인간은 어떤 존재인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지구에는 원래 다양한 인간종이 살았다. 우리가 인류의 조상으로 여기는 호모 사피엔스는 동부 아프리카에 거주하던 별로 중요하지 않던 인간종의 하나에 지나지 않았으나, 약 7만 년 전부터 지구상에 급속하게 퍼져나가 번성하였다. 사피엔스가 서서히 지구의 주인이 되면서 세상은 그의 필요에 맞게 변형되었다. 서식지는 파괴되고 지구상의 많은 종들이 사라졌다. 사피엔스는 지구상에 존재했던 어떤 생물체보다 잔인했다. 사피엔스가 지나간 자리에는 흔적이 길게 남았다. 미래의 사피엔스도 온갖 새로운 원자재와 에너지원의 보고(寶庫)를 손에 넣으면서 남아 있는 자연 서식지를 파괴하고 대부분의 종을 멸종시킬지 모른다. 이런 생태적 혼란은 인류의 생존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 지구온난화, 해수면 상승과 광범위한 오염은 지구를 인류가 살기에 부적합한 공간으로 만들 수 있고, 자연에 대항하는 인류의 힘과 인류가 유발한 자연재해가 쫓고 쫒기는 경쟁의 나선을 그리며 커질 수 있다. 인류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자연과 생태계의 부작용을 통제하는 유일한 방법은 생태계를 더욱 극적으로 조작하는 것인데, 이것은 더더욱 큰 혼란을 초래할 것이다. 유발 하라리의『사피엔스』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유발 하라리는 외계인이 지구를 바라보듯이 지구의 오랜 역사와 미래에 대해 이야기한다. 따분하게 느껴지는 선사시대 이야기도 원주민 어느 부족의 이야기처럼 생생하게 들려준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동서양을 넘나들며 생물학, 인류학, 역사학에 관한 방대한 지식으로 던지는 질문도 흥미롭다. 인간은 과학발전과 기술개발로 오랜 세월 인류를 괴롭혀온 대규모 기근과 질병에서 벗어났다. 경제성장에 따라 에너지와 원자재가 고갈될까 우려하였지만 그때마다 새로운 에너지와 원자재를 만들어냈다. 앞으로도 그러한 추세는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러나 생태계 파괴는 자원의 회소성과는 다른 차원의 얘기로 매우 두려운 것이라고 한다. 인류의 과거에 대한 그의 예리한 분석을 보면, 인류의 미래에 대한 예측도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최근 50년 동안 이루어진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은 자연선택을 지적 설계로 대체할 정도로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유전자 조작을 비롯하여 생명공학이나 인공지능(AI)과 같은 기술의 발전에 따라 인간의 신체뿐만 아니라 정신도 개량할 정도에 다다르고 있다. 인류는 발달된 기술로 새로운 자원과 에너지원을 찾아냈듯이 파괴된 자연환경과 생태계 변화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시도를 할 것이다. 유발 하라리는 핵 재앙이나 생태적 재앙이 인류를 먼저 파괴하든지, 아니면 지금과 같은 속도로 기술이 발달하여 급기야 호모 사피엔스가 완전히 다른 존재로 대체되는 세상이 올 거라고 예측한다.

인간의 상상력과 도전은 한계가 없다. 기술 발전은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결말을 가져올지는 알 수 없다.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기술개발은 달리는 열차와 같다. 돈이 눈앞에 보이는 사람들이 기술개발을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예상치 못했던 전염병이나 자연재해를 직접 경험하면서 성찰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달리는 기차는 어디로 가는가?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하려고 시작된 기술개발의 종착역은 어디인가? 다른 종과 잘 공생하지 못하고 현세의 자기 종만을 생각하는 호모 사피엔스에게 미래의 지구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인류가 거대한 흐름 속에서 잠시 눈을 돌려 다른 생물과 공생하는 지혜를 터득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글 전현정 변호사 (법무법인 케이씨엘)
 

 

전현정 변호사는…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1990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23년간 판사로 일하다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를 끝으로 2016년 법원을 떠났다. 현재는 법무법인 KCL 고문변호사다. 한국여성
변호사회 부회장, 법제처 법령해석심의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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