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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룹>, 백성들의 우산이 되어주는 참 국모
<슈룹>, 백성들의 우산이 되어주는 참 국모
  • 이현민
  • 승인 2023.01.19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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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민의 콘텐츠 바로비터
슈룹 tvN 공식 홈페이지
슈룹 tvN 공식 홈페이지

 


조선시대 여성들의 지위와 역할은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이미 익숙할 것이라 생각된다. 지아비를 잘 보필하고 자식을 잘 키우는 것만이 여성의 참 도리임은 지위나 신분의 높고 낮음과는 무관한 것이었다. 신분이 낮은 여성에게 인권이란 당연히 없었고, 천민이라는 이유만으로 멸시와 농락을 당하는 것이 부지기수였다. 지체 높은 마님들, 더 나아가 내명부 소속 궁중 여성들은 물론 달랐겠지만, 그녀들의 본분도 수동적이고 정적이며, 자신의 목소리는 줄이고 남성 중심 사회에서 자신을 희생하는 것을 임무로 여겼을 것이다. 중전이라고 예외가 있었
을까?

하지만 드라마 <슈룹> 속 중전은 지금까지의 드라마가 표현한 다양한 중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중전 화령(김혜수 분)은 어느 누구보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태도로 삶을 살아간다. 드라마의 포문을 여는 첫 장면부터 버선발로 달리는 중전이라니… 생경한 중전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첫 장면의 의미는 남다르다. 회를 거듭할수록 그녀의 활약이 마치 현재에도 발생하고 있는 여성들의 문제를 발벗고 해결해주는 해결사의 모습과 닮아있기 때문이다.

드라마 <슈룹>은 첫 홍보 당시, 조선판 <SKY 캐슬>로 눈길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왕자들의 교육 전쟁은 <슈룹>의 포문을 여는 하나의 에피소드에 불과했으며, 실제 <슈룹>이 다룬 조선시대의 사회 문제는 현재의 문제들과 그 궤를 같이한다. 중전은 궁중 내명부의 수장이지만, 조선의 국모로 조선 여성들 모두를 대표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화령은 이런 자신의 지위를 증명이라도 하듯, 백성들이 원하는 여성상을 보여주고 있다. 단순히 자신의 지위와 권력, 대군들의 보위와 안위에만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닌, 각 계층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화령은 궐 밖 출입이 비교적 잦은 중전으로 묘사되는데, 따라서 자연스럽게 백성들과의 접촉도 잦다. 일상다반사가 일어나는 궐 밖 세상 속 여성들의 삶은 어쩐지 고된데, 그 중에서도 천민 여성들의 삶은 멸시와 모함의 연속이다.
 

슈룹(tvN 공식 홈페이지)
슈룹(tvN 공식 홈페이지)

 

화령은 양반에게 겁탈당하여 임신까지 했지만, 양반에게 모욕과 내쫓김을 당한 천민 여성을 위해 발벗고 나선다. 하지만 앞으로의 안위를 더욱 걱정하는 그녀를 위해 “내 이미 너의 인생에 끼어 들었다”며 그녀가 앞으로 살 거처를 마련해준다. ‘해월각’이라는 이름의 이 곳은 다양한 문제로 의식주 해결이 어려운 여성들을 위한 거처로, 지금의 ‘여성 쉼터’와 매우 닮았다. 그냥 지나치면 그만이었을 천민 여성의 안위까지 직접 챙기고 걱정하는 중전의 참 모습이다.

또 빈궁을 간택하기 위해 사가를 탐방하는 중전의 모습은 더욱 인상적이다. 아직 어린 예비 빈궁을 만난 중전은 여성의 ‘칠거지악’에 대해 논한다. 여성들에게 족쇄와 같은 ‘칠거지악’에는 익숙하면서도, 여성을 위한 ‘삼불거’라는 제도에는 생경한 예비 빈궁에게 제도를 설명하면서 여성의 권리를 일깨워주는 대목이다. 자신의 권리를 운운할 필요가 없는 중전이지만, 한 여성으로서 많은 여성들의 권리와 안위를 진심으로 걱정하며 백성들을 일깨워준다. 이는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도 필요한 지도자의 모습으로 비추어진다. 소수자와 약자를 대변하는 국모, 백성들을 진심으로 그리고 세심하게 걱정하는 국모의 모습이다.

‘슈룹’이 우산의 조선말이라고 했던가. 중전의 슈룹은 단순히 자신과 대군들의 비를 피하기 위해 펼쳐진 것이 아니라, 백성을 위해 친히 우산이 되어주는 중전의 다른 말로도 풀이할 수 있겠다. 김혜수가 연기해서 더욱 빛났던 <슈룹> 속 중전의 모습이다.

글 이현민(대중문화평론가) 사진 tvN ‘슈룹’ 
 

 

이현민…
대중문화평론가, 로앤컬쳐 대표. 저서로 <대중문화, 이슈로
답하다>, <입체적 한중 대중문화>, <OTT 스토리텔링 생존공
식> 등이 있다. 더 칼럼니스트 등 주간지와 웹진에서 방송 비
평을 하며, 국립 안동대학교, 추계예술대학에서 강의한다.
대중문화 분석, 한중 콘텐츠 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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