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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소녀>를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 클리셰 혹은 클래식…
<20세기 소녀>를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 클리셰 혹은 클래식…
  • 최우진
  • 승인 2023.01.19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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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진의 Netflix Actually
20세기 소녀(넷플릭스)
20세기 소녀(넷플릭스)
20세기 소녀(넷플릭스)
20세기 소녀(넷플릭스)


2022년 10월, 단풍이 물드는 가을의 한복판에서 넷플릭스는 첫사랑을 닮은 영화 한 편을 선보였다. <구르미 그린 달빛>, <편의점 샛별이>로 친숙한 배우 김유정이 주연을 맡은 <20세기 소녀>. 이 영화는 1999년 한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17세 소녀 보라(김유정)가 절친인 연두(노윤서)의 첫사랑을 이루어주기 위해 사랑의 큐피트를 자처하며 벌어지는 관찰 로맨스다.

<오징어 게임(2021)>과 같은 긴장감도, <지옥(2021)>과 같은 공포심도, <지금 우리 학교는(2022)>과 같은 속도감도 없지만, 이 자극적이지 않고 담백한 순백의 영화 한 편이 넷플릭스 영화의 자존심을 지켰다. 한때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랭킹 사이트인 플릭스 패트롤에서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본 넷플릭스 영화’ TOP 10에 오른 것은 물론, 한국과 인도네시아, 대만, 베트남 등 총 4개국에서 1위를 기록한 것.

2016년 한국에 상륙한 넷플릭스는 시리즈 물뿐 아니라 영화에도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왔지만, 송중기 주연의 <승리호(2022)>를 제외하면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넷플릭스를 대표하는 시리즈 물인 <오징어 게임(연출 황동혁)>, <지옥(연출 연상호)>, <지금 우리 학교는(연출 이재규)>, <수리남(연출 윤종빈)>이 모두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감독의 손에서 탄생했다는 사실. 시리즈물이 아닌 영화가, 그것도 장르물이 아닌 로맨스로 거둔 성적이라는 점에서 <20세기 소녀>에 대한 평가는 주목할 만하다.

이 영화의 어떤 면이 전 세계 넷플릭스 가입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을까. 또다시 아이러니하게도 어느 하나 특별할 것이 없다는 데에 이 작품의 특별함이 있다. 영화를 본 사람들의 호불호가 갈리는 이유다.

90년대를 배경으로 한 학창시절의 추억은 <응답하라> 시리즈 이후 전 세대를 매료시킨 레트로 감성과 맥이 같고, 아련한 첫사랑의 기억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수천 번은 족히 보았을 닳고 닳은 소재다. 게다가 고등학교 시절 첫사랑과 어쩔 수 없이 헤어진 여자가 약속과 달리 연락이 닿지 않는 남자를 원망하며 서서히 잊어가던 중, 그녀 앞에 남자의 부고와 그가 남긴 물건이 도착한다는 설정 역시 기시감이 들 정도로 뻔하다.

우리는 이런 뻔한 설정을 가리켜 ‘클리셰’라 부른다. ‘클리셰’의 사전적 의미는 ‘진부하거나 틀에 박힌 생각을 이르는 말’로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흔히 쓰이는 소재나 이야기의 흐름을 가리킨다. 이야기의 독창성을 작품성과 결부시킬 경우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기도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과도한 ‘클리셰’의 사용은 이야기를 뻔하게 만들지만, 잘만 활용하면 친근함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에서 친근함이란 대중의 공감을 쉽게 끌어낼 수 있는 힘이다. 사람들은 어떤 이야기에 공감할 때 울고 웃는다. 독창적이며 낯선 것들은 새롭기는
하지만 쉽게 공감을 얻기 힘들다.

그래서 창작자들은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을 ‘클리셰’와의 싸움이라고 말한다. 우주 영화인 <인터스텔라>가 딸과 아버지의 이야기로 귀결되는 이유이며, 히어로 영화인 <어벤져스>가 인간적인 고뇌와 희생을 주요 서사로 삼는 이유다. 처음에는 신선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익숙해진 것들 가운데 오랫동안 사랑받은 소재와 형식, 아이템 등을 가리켜 ‘클래식하다’고 말한다.

<20세기 소녀>는 오랜 시간 대중에게 사랑받은 로맨스 영화의 정석을 따라가고 있다는 측면에서 ‘클리셰’로 가득하지만, 그렇기에 ‘클래식’하다. 새로운 것만이 좋은 것이라는 강박을 깨고 고유의 평범함으로 대중을 사로잡는다. 미국의 대중문화잡지 버라이어티는 이 영화에 대해 “어떤 순간 혹은 어떤 사람을 잊을 수 없게 만드는 감동을 전한다.”고 평했다. 기본에
충실한 것이 클래식이고, 클래식은 영원하다. 우리 사회도 이 간단한 명제를 잊지 않길.

글 최우진(스토리위드 대표)│사진 넷플릭스 ‘20세기 소녀’
 

 

최우진 대표는…
20년간 「인간극장」, 「추적60분」, 「한국기행」등 방송다큐멘
터리를 집필한 작가인 동시에 「본 어게인」, 「마우스」, 「블라
인드」 등 드라마 기획에 참여한 프로듀서다. 「워킹 데드」의
제작사인 스카이 바운드와 한미합작 드라마를 기획하기도
했다. 현재는 원천 IP 기획개발 및 작가 에이전시 회사인 스
토리위드의 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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