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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망을 가진 그녀에게
야망을 가진 그녀에게
  • 이복실
  • 승인 2023.01.28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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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우리 가족은 12월 31일 밤에 새해의 희망 쓰기 시간을 가졌었다. 메모지에 각자 새해에 바라는 희망을 적고, 돌려가면서 읽었다. 딸들이 학교 다닐 때는 학업 성취, 직장에 다닐 때는 승진이 가장 많이 나온 희망이었다. 하지만 이 오붓한 시간은 딸들이 해외에서 직장을 다니는 바람에 얼마 가지는 못했다. 하지만 지금도 그때 적은 메모지를 간직하고 있다. 지난날의 추억의 한 페이지이다. 메모지를 보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공부 잘하고 싶고, 좋은 직장도 얻고 싶고, 직장에서는 승진도 하며 성공하고 싶은 딸들의 애틋한 마음이 읽히기 때문이다. 나도 생각해보니 그랬었다. 야망이 별것인가? 거창한 인물이 되는 것만이 야망이 아니다. 나의 가능성을 마음껏 발휘하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도 야망이다.

하지만 주변의 많은 여성이 마음속으로는 야망을 품었으나 내색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나도 예전에는 “야망을 숨기세요”라고 조언한 적이 있다. 왜 야망을 숨기라고 했을까? 먼저 실력과 힘을 갖추라는 취지였다. 야망을 드러내는 순간 나대는 여자로 낙인찍히는 것은 물론이고 경쟁자들의 표적이 되는 것은 순식간이다. 그런데도 야망을 갖는 것은 중요하다. 인생의 결과는 야망의 크기를 넘어서기 어렵기 때문이다. 각 분야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낸 여성 리더들 모두 야망과 성취욕이 있었다. 아직은 소수자인 여성이 어려움을 딛고 앞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야망이라는 두 글자는 꼭 필요하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여성 리더들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있다. 경제정책을 담당하는 국제 기구조직은 최근까지 남성이 지배해 왔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세계경제를 쥐락펴락하는 기구의 수장들이 다 여성이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 쟈넷 옐런 전 미연방준비제도 이사회(FRB)의장이자 현 미국 재무부 장관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작년 3월 8일 여성의 날에 국제적인 인물 두 여성이 화상 대담을 하였다. 국제통화기금(IMF)의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바 총재와 쟈넷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은 40분간 진행된 대담에서 코로나가 여성의 경제활동에 미친 영향과 다양한 젠더 이슈를 나누었다. 옐런 장관은 본인의 경험을 예로 들면서 남성 중심적인 경제 분야에서 얼마나 버티기 어려웠는지 털어놓았다.

옐런 장관은 “경제학과에서는 여성이 남성들로부터 적대적인 질문을 받는 경우가 많다”라며 “이 같은 문화는 변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여성들에게는 여전히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고위직에 도전하는 데 주저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IMF 총재가 되기 전 세계은행(WB) CEO를 지냈던 게오르기에바 총재도 이에 동의했다. “주변 여성들에게 승진 기회가 있다면 부끄러워 말고 지원하라고 독려한다.”라면서 “여성들은 남성 위주 조직에서 더욱 자기 비판적인 경향이 있고, 그래서 기회를 놓치곤 한다.”라고 아쉬워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장벽을 만났을 때 주저앉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하나의 문이 닫혀 있더라도 다른 문이 있다는 것이다. “나를 믿고 정진하면서 다른 기회를 두드려라.” 옐런 장관은 하버드대 교수였는데 정년 보장을 받지 못하였다. 정년 보장을 못 받을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하지만 낙담하지 않고, 다른 길로 방향을 바꾸었다. 연방준비위원회로 이직을 하였는데 거시정책이 무척 재미있었다. 거기서 인정을 받고 지금 이 자리에까지 올랐다. 게오르기바 총재는 호주에서 대학교수를 하다가 고국인 불가리아로 돌아갔다. 그런데 직장을 구하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다시 미국 MIT로 갔고, 그 후 세계은행(월드뱅크)에서 직장을 잡았다. 두 여성 다 방향을 틀었더니 새로운 길이 보였다. 물론 실력을 갖추었으니, 준비된 그녀들이니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로라하는 그녀들도 그런 좌절의 시간이 있었다니 새삼 놀랍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인정을 받을까? 『사실은 야망을 가진 그대에게』의 저자 국민대 이은형 교수는 인정을 받고 싶다면 직장 내에서 보스의 고민을 헤아려보라고 조언했다. 보스의 고민을 덜어주는 직원은 함께 일하고 싶은 최고의 직원일 것이다. 30년간 공직에서 근무한 필자의 경험으로도 이는 쉽게 알 수 있다. 함께 일하고 싶은 직원은 서로 데리고 가려고 한마디로 인기 폭발이다. 조직원이라면 그런 직원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개인의 노력만 가지고는 안된다. 개인의 능력과 이를 인정하는 조직문화가 합해져야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가 있다. 몇 년 전 여성 CEO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그녀의 강의 제목은 『CEO를 꿈꾸었던 여성』이었다. 대단한 여성이었다. 남성 중심적 조직문화에서 여성이 살아남기도 쉽지 않은데 그녀는 남성 동료들을 제치고 CEO의 자리에 올랐다.

실력은 기본이고 지도력도 갖추었다. 살아남으려고 술도 많이 마셨다고 했다. 과장해서 말하면 그동안 마신 술의 양이 경부고속도로를 몇 번 돌 정도라고 했다. 그 강연을 들은 후배 여성들은 감탄하면서도 난 도저히 저렇게 할 수 없다고 자조했다. 그렇다고 낙담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남성 중심적 조직문화에서 버티기 어렵다면 나에게 맞는 조직문화가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 게오르기에바가 말한 것처럼 하나의 문이 닫혀 있다면 또 다른 문도 있다. 나와 맞는 조직에서 일하는 것은 행운이다. 그런 조직에서는 나도 언젠가는 CEO가 될 것만 같은 생각이 들게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행운을 잡는 것도 본인의 도전이 필요한 일이다.

어느새 2023 새해를 맞이했다. 1월이 되면 왠지 희망이 생긴다. 새해가 갖는 힘일 것이다. 잘되리라 기대가 되고 이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리라 다짐도 해본다. 금년 한 해에는 야망을 품은 그녀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도전하고 정진하는 한 해가 되기를 응원한다.

글 이복실(전 여성가족부 차관)
 

 

이복실은…
전 여성가족부 차관, 세계여성이사협회 한국지부 회장.
서울 시립대 도시행정학과를 졸업,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USC 에서 교육학으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1985년 여성으로서 네 번째 행정고시 합격자이다. 30년간 중앙부처에 재직했으며,
2013년 여성가족부가 설립된 이래 최초 여성 차관으로 임명됐다.
저서로는 <여자의자리 엄마의 자리>, <나는 죽을 때까지 성장하고 싶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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