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핼로윈 골목길과 젊음
핼로윈 골목길과 젊음
  • 김다은
  • 승인 2023.01.15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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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다은의 문화 PBL

 

핼로윈 축제가 한국에서 젊은이들의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가면을 쓰고 ‘코스튬’이라는 이상한 옷차림을 한 채 자유롭게 즐기는 서양식 축제는 10년 전만 해도 정서적으로 어색한 행사였다. 최근 젊은이들에게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고, 이를 낯설고 이질적인 행사로 바라보는 이들도 적지 않다. 천재학습백과 사이트의 초등 토론배틀에 이런 논제가 올라온 것을 본 적이 있다. “우리나라에 핼러윈을 즐기는 것이 좋을까요?” 지난 10월 29일 이태원 일대에서 일어난 참사 소식을 들은 후, 참담한 심정으로, 한 작가로서 이 질문의 해답을 찾아보기로 했다. (퀸 12월호)
 

왜 젊은 영혼들이 최대 피해자가 되었을까

듣고도 믿지 못할 비극적인 사고가 난 곳은 용산구 이태원의 한 골목길이었다. 과거 각국의 압사 사고는 대규모 종교행사, 스포츠 행사, 축제, 그리고 콘서트 등에서 일어나곤 했다. 특히 좁고 가파른 골목길에 군중이 몰려들어 압사한 사고로는 2021년 이스라엘 메론산 부근의 종교행사가 있다. 골목길은 아니지만, 일본이나 다른 국가도 핼로윈 축제로 범죄사건을 경험한 적이 있다. 행사가 범죄에 이용되는 영화 <할로윈: 살인마의 탄생>도 있다.

그런데 이태원의 참사에는 주목해야 할 점이 있는데, 4미터 폭의 골목길에서 (11월 11일 현재) 158명이 숨지고 196명이 다쳤는데, 사망자의 대부분이 10대와 20대였다. 우리 청춘들이 숨을 쉬지 못해 압사해간 골목길! 좁아서 혹은 경사 때문에 압박감이 얼마나 강했는가 하는 등 물리적인 설명은 다른 전문가들이 이미 많이 했다. 미국의 문화가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술판 문화로 변질되었다고도 하는데, 작가의 눈에는 그것이 본질이 아니지 싶다.
 

 

본질은 주최자도 없는 핼로윈 행사에 그토록 많은 젊은이가 왜 모여들었는가 하는 점이다. 이전의 핼러윈 행사들도 주로 이태원과 홍대 그리고 신촌 등 특정 장소에서 진행되었다. 다른 지역보다 자유로운 문화와 분위기가 있어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곳들이다. 청춘들이 숨통을 트기 위해 나들이 나왔던 장소였기에, 그곳에 그들만의 축제가 번져나간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처럼 보인다. 하지만 유럽과 다른 국가들이 핼로윈데이를 마을행사나 가정행사로 치르는 것을 상기한다면, 특정 장소에 젊은이들이 주가 된 한국식 축제는 남다른 데가 있다.

핼로윈데이(Halloweenday)는 고대 영국(아이슬랜드)의 풍습으로 죽은 자들의 영령이 다른 세상으로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이승에 와서 하루 놀고 가는 날이라 한다. 이날 영령들이 산 사람의 몸안으로 들어오거나 해코지를 할까 봐, 사람들은 불 속에 자신의 소리 나는 물건을 넣어서 태우거나 짐승의 머리나 가죽을 쓰고 변장했다. 고대 영국 켈트족의 풍습이 미국으로 넘어가면서 기독교적인 영향과 함께 가족이나 마을의 축제로 변해갔다. 특히, 아이들이 먹고 싶은 과자를 얻기 위해 장난치는 유쾌한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핼로윈데이에 아이들이 옆집에 가서 “과자 안 주면 장난칠 거야 (Trick or Treat)”라고 말한다면, 마을이나 아파트 내에서 야단이 날 것이다. 아이나 부모는 조심하라는 경고를 들을 게 틀림없다. 축제라는 형식을 통해서 아이들이 ‘허용된 자유’를 즐기는 문화가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축제의 자유에서 배제당하면서 아이들은 청년들로 자랐다.

한국 청년들이 핼로윈데이의 가면이나 코스튬을 더없이 즐기게 된 과정도 문화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건 사람들 앞에 드러나도록 교육받았다. 두드러져 보여야 하고, 선두가 되어야만 한다. 때로 자신을 숨기고 싶어도 그래서는 안 되고, 숨는 방법도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외부의 자극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는 방법도 잘 모른다.

핼로윈데이에서 짐승의 털이나 머리를 썼던 것은 귀신이 몸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방어하기 위해서였다. 마찬가지로 우리 젊은 세대도 가정 폭력이나 학교폭력을 방어해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한 작가에게서 들은 기막힌 이야기가 있다. 그녀는 어릴 때 부모님이 싸우면 달려가서 제일 먼저 책상 위에 책을 펼쳤다 한다. 격렬한 부부싸움이 끝나면 둘 중 한 사람은 자신에게 폭언하러 오는 순서가 매번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럴 때 책상에 앉아 책을 펴고 있으면 누구건 방문을 열었다가도 아무런 말도 없이 도로 닫고 나갔다. 가정 폭력을 피해 숨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 책의 그늘이었다!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가정환경과 억압적인 사회에 적응해야 했던 젊은이들은 가면들과 코스튬 속에서라도 억눌러놓았던 자아를 숨 쉬게 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치열한 생존경쟁에 내몰린 젊은이들의 초상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최근 『꿈은 모르겠고 취업은 하고 싶어』라는 책이 젊은이들 사이에 인기가 있다. 책 제목이 소위 MZ세대의 심정을 대변한다면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꿈꾸어 볼 시간도 없이 경쟁에 내몰려서 한시도 즐거움을 누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입시 위주의 교육을 받으면서 교실붕괴와 학교폭력을 경험하고, 기계적 평준화 속에 개성도 다양성도 존중받지 못하는 비교육적인 교육을 지속적으로 받아왔다. 사생결단의 노력으로 간신히 대학에 들어왔더니 코로나 펜데믹 때문에 대학 캠퍼스를 밟기도 힘들고, 대학축제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몇 년을 보내야만 했다. 더구나 아무리 시간과 돈과 노력을 들여 배워도, 배운 것들이 사회에서 제대로 쓰임 받을 수 있을지 끝없는 취업 불안에 시달려야 한다.

아! 우리 젊은이들이 압사해간 골목길은 평소 우리 젊은이들을 점점 옥죄어 숨 막히게 하던 현실과 고통을 대변하는 상징적인 장소나 다름없지 않은가!
 

 

축제는 세대를 나누기보다 세대를 아우르는 폭죽이어야 한다
 

핼로윈데이에 관한 초등 토론배틀의 요지를 보면 첫째, 친구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재미있는 문화라는 의견과 우리 고유의 문화를 먼저 챙겨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둘째, 다른 문화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쪽과 범죄가 발생할 수 있으니 반대한다는 쪽도 있다. 셋째, 핼러윈으로 경제가 활성화된다는 의견과 마케팅과 상술에 이용되는 것뿐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한국에서 핼로윈 축제가 여느 축제와 달리 빛과 그림자의 양면을 동시에 지적당하는 이유는 그 축제의 속성과 표현양식에 있다. 귀신 가면과 코스튬으로 전신을 가리니 자칫 범죄에 악용될 소지가 있고, 다른 세대와 소통하지 못하는 젊은이들만의 축제가 되어가기 때문이다.

유럽은 나라마다 독특한 축제가 수도에서 지방에 이르기까지 일년 내내 이어진다. 이는 자국의 경제활동과도 연관이 있고, 외부에서 오는 관광객과 소통하는 문화적인 활동이기도 하다. 점잖고 이성적인 거드름을 피우던 사람들도 축제 기간에는 전혀 다른 사람들이 되어 거리로 마구 쏟아져나오는데, 축제가 오랫동안 전통이 된 그들에게서 배울 점이 하나 있다. 축제가 세대를 나누기보다 세대를 아우르는 폭죽이 되게 하는 것이다.

축제는 가족 그리고 마을 그리고 외부에서 오는 이방인들까지 자연스럽게 서로 소통하는 시간이다. 핼로윈데이라고 해서 아이들이 아무 집의 초인종을 누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호박을 파서 만든 ‘잭-오-랜턴(Jack of the Lantern)을 대문 앞에 켜둔 집에는 아이들이 과자 장난을 쳐도 좋다는 신호다. 어른들이 축제에 아이들을 소외시키지 않는 방식이다.

 

 

한편, 핼로윈 축제가 귀신들의 축제다 보니 사용하는 가면들도 흉측한 것이 많다. 남보다 더 악마적인 가면이나 코스튬을 준비하기 위해 며칠 심지어 몇 달을 시간과 돈을 들여 준비한다고 한다. 경쟁에서 벗어나야 하는 축제에서 도리어 다른 경쟁을 치열하게 벌이는 측면도 있다. 더구나 사람들이 보고 깜짝 놀랄 악마적인 형상이나 색감을 사용하는데, 비록 장난이라 할지라도 경쟁적으로 점점 더 악마적인 형상을 추구한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나쁜 기운을 막으려고 시작된 것들이 도리어 나쁜 기운을 불러들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범죄 가능성이나 상술의 부작용을 해소할 방법으로, 문득 세계적인 베네치아 가면이 떠오른다. 베네치아는 역사적으로 가면을 쓰는 기간이 너무나 많아서 1608년 법으로 가면에 관한 법령을 발표할 정도였고, 어기면 강한 처벌을 했던 곳이다. 베네치아 공화국이 멸망한 후 오스트리아에 의해 사적 행사에서만 가면을 사용한 기간도 있었으나, 지금은 음악회나 전람회 등 다양한 카니발 행사에 가면을 쓰고 나온다. 이때 사람들은 가면과 함께 과거의 의상과 현재의 의상이 서로 만나는 대회를 하고, 시민들도 전통의상에 가면을 쓰고 거리를 활보하며 함께 즐긴다.

 

 

내년 핼로윈데이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한국에서 핼로윈 행사를 즐기는 것이 좋을지 아닐지는 이번 이태원 참사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달렸다. 인간의 일상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성격을 띠지만, 축제는 일상의 규범에서 이탈해서 감정과 본능이 자유를 만끽하게 해주는 행사이다. 일상의 규범을 파괴하기보다 일상을 더 잘 유지하기 위해 프로이드 용어로 “허용되어진” 것이 축제이다. 그래서 축제문화라고도 한다. 축제문화는 일상의 억압을 풀고 자유를 만끽하려는 일종의 열정적인 모험이다. 그 모험을 그만두고 젊은이들에게 일상으로 무조건 돌아가라는 것은 좋은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

내년 핼러윈데이에는 아예 이태원 골목길을 막아 다니지 못하게 하자는 의견이나 글을 읽었다. 아! 그것이 진정 대책일까. 배가 뒤집혀 사람들이 빠졌던 곳이라 하여 그곳의 바닷물을 가두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런 비극적인 상황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정부에서 철저하게 시스템을 마련해야겠지만, 청년들 스스로 이 좁은 골목길의 질서를 회복할 기회를 주어야 할 것이다. 많은 군중이 모여들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그들 스스로 방법과 지혜를 찾는 시간을 주어야 하지 않을까. 고통과 애환이 서린 눈물의 길이 아니라 새롭게 소통하며 거뜬히 걸어가는 넓은 길로 만들어갈 그들의 지혜를 신뢰해주는 사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깊은 애도 기간이 끝나면,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지혜를 모아 이 길을 새롭게 할 프로젝트를 세워보면 어떨까 싶다. 안타깝게 떠난 사람들 혹은 남은 사람들! 이들이 계속 이태원의 슬픔을 짊어지고 살아가기보다 슬픔을 헤쳐나갈 지혜를 사용하게 도와주는 것이다. 그 골목길에 우리 사랑하는 젊은이들이 밝게 다시 찾아드는 날, 우리 모두에게 큰 위로가 될 것이다.

*소설가 김다은의 문화 PBL(Problem Based Learning)은 우리나라 문화 속에 제기된 문제를 학습자처럼 해답을 찾아가며 새롭게 배워보고자 하는 문화 기획이다.

글 김다은(소설가, 추계대 교수) | 사진 픽사베이, 뉴스1

 

 

김다은…

이화여자대학교 불어교육과와 불어불문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제8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첫 소설 「당신을 닮은 나라」가 1995년 국민일보 ‘제3회 1억 고료 국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장편소설 「손의 왕관」, 「소통말통」, 「바르샤바의 열한 번째 의자」, 「금지된 정원」,
「모반의 연애편지」, 「훈민정음의 비밀」, 「이상한 연애편지」, 「러브버그」,
창작집 「쥐식인 블루스」, 「위험한 상상」, 문화 칼럼집 「발칙한 신조어와 문화현상」,
「너는 무엇을 하면 가장 행복하니?」, 서간집 「작가들의 연애편지」, 「작가들의 우정편지」를 출간했다.
「금지된 정원」등 다수가 번역되어 해외에 소개되었다.
현재 추계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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