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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송현과 이건희 컬렉션
열린 송현과 이건희 컬렉션
  • 김다은
  • 승인 2023.02.24 0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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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다은의 문화 PBL
좌) 이중섭. 〈여인〉, 1942, 종이에 연필, 41.2×25.6cm.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우) 이중섭. 〈나무와 까치가 있는 풍경〉, 1950년대 전반, 종이에 유채, 40.7×28.3cm.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경제침체기 어려운 시기지만 2023년은 누구에게나 희망의 해가 되기를 소망해본다. 역사적으로 갇혀 있던 서울 송현동 부지가 ‘열린 송현’이란 이름의 녹색광장으로 지난해 10월7일 시민들에게 개방됐다. 서울시는 이곳을 2년간 임시개방, 이후엔 ‘이건희 기증관(가칭)’이 들어선 ‘송현문화공원’으로 조성한다. 2025년 1월 착공해서 2027년 ‘이건희 기증관’과 공원을 동시에 개장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계묘년 새해를 열며 ‘열린 송현’과 이건희컬렉션의 문화적 의미를 짚어본다. -편집자 주(Queen 2023년 1월호)
 

‘이건희 컬렉션’에 관한 관심이 폭발적이다. 이건희 컬렉션 이중섭 전, 이건희 컬렉션: 영원한 유산, 이건희 컬렉션 한국근대특별전 ‘수집: 위대한 여정’ 등 여러 전시회가 서울이나 지방에 동시에 열렸다. 필자도 작년에 국립현대미술관의 ‘이건희 컬렉션 이중섭 전’을 보려고 현장 표를 구하러 아침 일찍 갔었다. 그런데 후배와의 약속까지 2시간이나 남아서 주변 화랑의 그림들을 보며 발길이 닿는 대로 걸었다. 어! 어느 순간 마법이 일어난 듯 푸른 하늘 아래 활짝 열린 공원이 펼쳐졌다. 높은 담벼락이 사라지고 꿈처럼 ‘열린’ 공간에, 네 글자의 팻말이 박혀 있었다. ‘열린 송현?’

 

송현동 기본계획 조감도(서울시 제공)
송현동 기본계획 조감도(서울시 제공)

 

송현은 어떻게 ‘열린’ 것일까
 

서울 종로구 중심의 노른자 땅인데도 송현이라는 동(洞)의 이름이 생소했다. 이유는 4미터의 높은 담장이 그곳의 풍광뿐만 아니라 우리의 아픈 역사를 가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곳은 ‘조선시대 경복궁을 보호하기 위해 소나무 숲을 형성했던 땅이어서 송현(松縣)이라고 불렸고, 1920년 일제강점기에 조선식산은행 사택의 문화주택으로 송현장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해방 후에는 미국대사관 직원들의 숙소로 사용되면서 우리 국민에게는 여전히 꼭꼭 닫힌 송현이었다. 이건희 컬렉션 이중섭 전을 보러 가서 우연히 만났던 ‘열린 송현’은 110년 만에 대한민국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모습이었다.

경복궁과 청와대의 땅의 역사적 의미를 다룬 장편소설 『금지된 정원』을 집필하기 위해 청와 대 방문 및 그 일대를 걸으며 나라의 주권을 생각해볼 기회가 많았던 필자로서는 열린 송현을 보는 감회가 남달랐다. 한 나라를 구성하는 요소는, 영토, 국민, 그리고 주권 세 가지이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현대 세계에 어느 국가의 주권도 미치지 않는 지역은 남극 대륙뿐이라는데, 남극 대륙을 제외한 지구의 땅들은 특정 나라의 지배나 영향력 속에 있는 셈이다. 어느 땅이건 건드리면 주권을 건드리게 된다. 대사관은 타국에 있으면서도 자국의 주권을 행사하는 예외적인 곳이지만, 송현의 영토 회복이 남다른 이유는 일제강점기에 이어 역사적 아픔의 연장선에 있었기 때문이다.

당분간은 송현의 부지가 대한민국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기쁨을 누리며 주권의 온전한 회복을 기뻐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여겨진다. 열린 송현! 이름조차 가슴이 열리듯 시원하다. 서울광장의 3배에 해당하는 녹지광장이 있었지만, 지금은 녹지가 사라지고 하얀 눈송이들의 축제가 벌어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시민들은 어느 계절이건 그 땅의 냄새와 촉감을 마음껏 느껴보면 좋을 것이다. 열린 송현을 빈 공원으로 남겨놓자는 의견도 있는데, 정말 시민이 즐겨 찾는 공원으로 남을 수만 있다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서울의 광장과 다른 공원들이 활용되는 방식을 보면, 특정 지역 사람들이나 특정 세대가 모여드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할 수도 있고, 광장처럼 넓은 송현은 정말 ‘광장’처럼 데모 군중이나 수많은 행사지로 점령당할 가능성도 있다. 열린 송현 녹지광장은 시민참여형 문화예술 공간으로 활용하다가, 2024년 ‘이건희 기념관’이 들어설 계획이라 한다.
 

메디치가(家)의 예술품 기증의 유일한 조건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메디치 가문의 소장품을 일반인들도 불 수 있도록 만든 사람은
메디치가의 마지막 상속자인 안나 마리아 루이자(Anna Maria Luisa). 루이자는 1737년
우피치 궁과 예술품들을 토스카나공국(현 피렌체 시)에 기증했다.(사진=Queen)

 

막강한 경제력을 기반으로 많은 예술품을 수집하고 이를 사회에 환원한 대표적인 가문이 이태리의 메디치가이다. 정치적으로나 예술적으로나 유럽의 귀족들과 예술인 사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가문이다. 메디치가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보디첼리, 미켈란젤로, 도나텔로 등을 경제적으로 후원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3명의 교황과 프랑스 왕비를 배출한 메디치가는 후에 프랑스의 침략으로 정치적인 권력을 잃었고, 상공업의 쇠퇴로 재정적인 궁핍 상태에 놓이기도 했다. 메디치가는 점점 후손이 귀해져서 결국 마지막 상속자인 안나 마리아 루이자 데 메디치가 모든 예술품을 정부에 기증했는데, 한 가지 조건이 ‘피롄체 밖으로 반출하지 않아야 한다.’였다. 200년 동안 메디치가가 모은 르네상스의 명작 2,500여점이 소장된 곳이 이태리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Galleria degli Uffizi)이다.

그렇다면, 수 대에 걸쳐 모은 세계 최고의 명작들을 오롯이 기증하면서 메디치가가 붙인 하나의 조건은 무엇을 염두에 둔 것일까. 우선, 피렌체는 이탈리아 왕국의 옛 수도로 르네상스의 본고장이다. 기증한 미술품들이 피렌체에 있기를 바라는 근거에는 ‘옛 수도’ 그리고 ‘르네상스의 본 고장’이라는 조건 외에도, ‘메디치 가의 본거지’였기 때문일 것이다. ‘우피치’라는 미술관의 이름은 신생 ‘피렌체 지역의 대공이었던 코시모 데 메디치 1세가 중앙집권적 권력을 사용하던 공무집행실(Office)’이라는 뜻으로 정치행정의 허브였는데, 지금은 전 세계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예술 허브가 되었다.

 

도나텔로 ‘참회하는 막달라마리아’. 피렌체 두오모 오페라박물관.(사진=Queen)
도나텔로 ‘참회하는 막달라마리아’. 피렌체 두오모 오페라박물관.(사진=Queen)
이탈리아 피렌체 두오모 오페라 박물관에 소장된 반디니 피에타.
이탈리아 피렌체 두오모 오페라 박물관에 소장된 반디니 피에타.(사진=Queen)


그리고 ‘피렌체 밖으로 반출하지 않는다’는 단서는 무엇보다 작품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막강한 정치적 권력을 자신의 ‘사무실(Office)’ 안에 집중시키기 위해 지은 우피치 궁은 아예 설계 때부터 미술품들을 소장할 공간을 따로 두었고, 예술품에 관심이 많았던 메디치가는 그 보관에도 각별한 관심을 가져 조명조차 특별히 설치했다고 한다. 그림 보호와 생명력에 얼마나 신경을 썼을지 상상하고 남음이 있다. 메디치가가 건 단 하나의 조건 밑에는 외국이나 다른 지역으로 옮겨 다니면서 일어날 수 있는 손상이나 변색 등을 사전에 막고자 했던 작품에 대한 사랑이 깔려있었다. 덕분에 르네상스 시대의 명작들을 피렌체 밖으로 내돌리지 않고 도리어 와서 보게 만들어서, 이태리 피렌체뿐만 아니라 메디치가의 영광도 지속하고 있는 셈이다.
 

‘어느 수집가’는 우리에게 무엇을 남겨주고 싶었을까
 

열린 송현에 ‘이건희 기념관’을 세우는 서울시의 기획에 대해, 많은 전문가가 많은 의견을 내놓는 것을 보았다. 정치적, 경제적, 도시 건축학적, 혹은 미학적으로 관점이 저마다 다르다. 작가도 이 기획에 대해 한번 짚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경복궁은 옛 왕조인 조선의 수도인 한양의 주궁이었으니, 고대 이태리 왕국의 수도인 피렌체와 상통하는 점이 있다. 열린 송현은 주변으로 행정 관청이 밀접해 있는 행정 중심지이기도 하고, 국립현대미술관과 많은 화랑, 그리고 인사동 문화의 거리가 인접한 지역이기도 하다. K-문화라고 하면 흔히 대중음악과 한국 음식이나 한복을 먼저 떠올리는데, 열린 송현지역에 세계 관광객들이 우리 미술품을 보러 모여드는 예술 허브가 형성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둘째, 이건희 컬렉션에 사람들의 관심이 파도처럼 퍼져나가는 이유가 무엇일까. 관람한 장소나 작품의 내용이 저마다 다르더라도 본 소감을 말하라면 적어도 공통된 한 방향은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잊고 있었던 우리의 전통과 정신이 담긴 문화와 예술품들이 갑자기 눈앞에서 나타나서 한국의 전통 속에서 숨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가난한 방 하나 안에 여러 명의 가족의 든든한 엉킴, 자연과의 교감이나 자연을 활용하는 지혜, 예술품을 통해 보는 우리나라 역사의 흔적들! 이건희 씨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이러한 것들을 수집했는지는 그의 에세이집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의 글귀로 잘 알려져 있다. “과거에 우리가 무엇무엇을 세계 최초로 발명했다느니, 서양보다 몇백 년이나 앞섰다느니 하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지만, 바로 오늘 우리 문화의 색깔이 있는가, 세계에 내세울 만한 우리 문화의 정체성은 과연 무엇인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것이다. 우리 문화의 색깔과 정체성이 선명한 컬렉션에 한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들도 당연히 관심을 보이고 있다.

셋째, ‘이건희 기념관’이 가칭이겠지만, 이 때문에 고 삼성그룹 회장의 개인 기념관을 서울시 한복판에 세운다는 반감이 없지 않다. 피렌체 미술관의 이름이 메디치가 아니라 우피치인 것이 처음에는 의아했지만, 메디치라고 했다면 지금처럼 한 가문의 영광을 뛰어넘어 전 세계인이 사랑하는 예술품으로 자리매김하기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작년 5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고(故) 이건희 기증 1주년 기념전을 열었을 때, 전시 명이 ‘어느 수집가의 초대’였다. 삼성 가(家)의 뜻일 수도 있고 국립중앙박물관의 기획일 수도 있지만, 고인의 뜻을 최대한 반영한 것이라면 참으로 아름다운 전시 명이 아닐 수 없다. 전시관의 진짜 이름을 지을 때는, 이름을 사용하지 않아서 더 이름이 기억되는 예술적 전략도 좋을 듯하다.

넷째, 메디치가가 피렌체 밖으로 반출하지 말라고 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지 않을까. 이건희 신드롬으로 인해 국내뿐만 아니라 미국이나 영국 등 외국의 여러 박물관으로부터도 러브콜을 받고 있다. 그래서 반출하지 않고 피렌체로 와서 관람하게 유도했던 메디치가의 교훈을 한 번쯤 돌아보게 된다.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K-예술품을 보기 위해 외국인들이 우리나라를 기꺼이 찾아 드는 때를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주권을 행사할 수 없었던 송현에 우리의 정체성을 표방할 수 있는 예술문화 공간이 세워진다면 땅의 회복만이 아니라 심미적인 역사성도 회복하게 될 것이다.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_이중섭》 전시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_이중섭》 전시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한편, 이건희 컬렉션 관람을 함께 했던 후배가 집에 가서 아이에게 받은 반응을 전해주었다. 고인이 삼성그룹의 회장이었다는 사실을 잘 알지 못하는 나이여서인지, 좋은 그림을 많이 수집해서 많은 사람에게 공짜로 보여주는 예술가로 인식하더라는 것이다. 마치 막강한 재력이나 정치적인 영향력은 희석되었으나 르네상스 시대의 명작들을 기꺼이 후대에 남겨준 아름다운 가문으로 우리가 메디치가를 인식하는 것과 유사하다고나 할까. 더구나 메디치가는 화가, 조각가, 철학자, 작가, 건축가, 과학자 등 서로 다른 영역의 수많은 거장을 한곳에 모아서 그들의 상호융합의 효과를 만들어갔는데, 그것이 흔히 말하는 ‘메디치 효과’이다. 어느 분야에서건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만들고자 할 때 적용하는 방법이기도 하고, 특히 예술 분야에서 최근 자주 사용하는 역발상의 개념이기도 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표현이 이건희 컬렉션에도 해당하는 것일까!

글 김다은(추계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김다은…
이화여자대학교 불어교육과와 불어불문과 대학원을 졸
업하고, 프랑스 파리제8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
았다. 첫 소설 「당신을 닮은 나라」가 1995년 국민일보 ‘제3
회 1억 고료 국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
다. 장편소설 「손의 왕관」, 「소통 말통」, 「바르샤바의 열한
번째 의자」, 「금지된 정원」, 「모반의 연애편지」, 「훈민정음
의 비밀」, 「이상한 연애편지」, 「러브버그」, 창작집 「쥐식인
블루스」, 「위험한 상상」, 문화 칼럼집 「발칙한 신조어와 문화현상」, 「너는 무엇을 하
면 가장 행복하니?」, 서간집 「작가들의 연애편지」, 「작가들의 우정편지」을 출간했다.
「금지된 정원」등 다수가 번역되어 해외에 소개되었다. 현재 추계예술대학교 문예창
작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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