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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특집] 탈춤(Talchum), K-문화의 얼쑤!
[기획 특집] 탈춤(Talchum), K-문화의 얼쑤!
  • 김다은
  • 승인 2023.03.15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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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다은의 문화 PBL
[기획 특집] 탈춤(Talchum), K-문화의 얼쑤!
[기획 특집] 탈춤(Talchum), K-문화의 얼쑤!


2022년 11월, 모로코 리바트서 열린 제17차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보호협약 정부간위원회에서 한국의 탈춤이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문화재청과 외교부, 그리고 탈춤과 관련된 각 지역의 민·관이 협력하여 이룬 성과였다.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기쁨의 감정과 함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탈춤’을 소개한 방식이었다. 탈춤(Talchum, Mask Dance in the Republic of Korea)! 인류무형문화유산에 탈춤(Talchum)이라는 표현이 들어간 것이 예사롭지 않았고, ‘탈춤’이 가면극(Mask Dance)과 의미적 등가를 지니는가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한국의 탈춤에 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 소식을 들은 후, 탈 혹은 한국의 탈춤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지 학생들에게 물어보았다. 봉산탈춤이라는 단어가 먼저 튀어나왔고, 혹시 원시시대에 사냥을 위해 나뭇잎으로 은폐할 때 얼굴이나 머리 전체 혹은 온몸을 가린 것에서 탈이 유래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견이 나왔다. (사실 얼굴만 가리는 것이 아니라, 북청사자놀음의 사자나 하회별신굿의 백정에 의해 죽게 되는 소처럼 몸 전체를 덮은 것도 탈이다.)

한 학생은 신라의 처용탈과 고려의 방상씨 탈 등이 귀신을 쫓아내는 제의에 사용되었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탈의 종류에 대해서도 생각나는 대로 입에 올렸는데, 말뚝 이탈(양반을 조롱하는 하인), 백정탈(소 잡는 이의 탈), 비비탈 (무엇이든지 먹을 수 있으며 ‘비비’ 소리를 내는 탈)과 영노탈(양반을 잡아먹는 탈), 중탈, 목중탈, 옴중탈(파계승), 하인에게 조롱당하는 탈(양반탈 샌님탈, 차양반탈) 순이었다.

각시탈은 예쁜 새색시 탈이라거나 TV 드라마의 영향으로 얼굴을 가리고 독립운동하는 탈이라고 해서 웃음을 자아냈다. 각시탈은 안동별신굿의 성황신처럼 신격을 지닌 매서운 눈꼬리를 가진 여인이다. 주막의 작부인 부네탈과도 구별해서 알려주어야 했다. 학생들은 하회탈처럼 얼굴의 주름과 웃음이 한꺼번에 잡혀 있는 것을 재미있게 여긴 반면, 문둥이탈, 병신탈, 각설이탈, 봉사탈처럼 신체적 장애자나 사회적으로 소외된 계급이 한결같이 웃는 표정인 점에 주목했다. 특히 옴이 잔뜩 오른 옴중탈은 눈이 화가 나 있는데도 입은 웃고 있고, 심지어 남편에게 구박받다가 죽어가는 미얄할미탈조차 얼굴에 곰보 자국을 가득 안고 웃고 있어서 도리어 슬프다고 했다.

지난 이태원의 핼로윈 행사 때 썼던 탈들은 보기에도 두려움을 주는 귀신 탈들이었고, 베네치아에 갔다가 사 온 탈은 무도회에 쓰고 가면 좋을 듯한 아름다운 가면이라 돌아와서 벽에 걸어두었다고도 했다.

한국의 탈은 울퉁불퉁 굴곡이 심하고 혹이나 붉은 얼굴 등이 강해서 섬세하지는 않다는 의견도 있었다. 한국의 탈이 희화적인 이유는 탈꾼의 섬세한 감정을 드러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비판적인 대상에 대해 배역을 맡은 배우처럼 객관적인 입장에 서기 위해서라는 의견을 나누었다. 그렇지만 탈을 쓰고 관객과 간격을 유지하면서도 배역 사이로 수시로 자신의 개인감정을 드러내는데 이것 또한 재미있는 부분이라고 학생들은 입을 모았다.
 

탈춤이라는 이름의 역사적 중요성

한국의 탈춤이 언제 시작되었는지 유래를 알기가 어려운데, 이유는 민간의 놀이로 전승된 민속극이기 때문에 문헌에 거의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고려에서 조선에 걸쳐 국가의 행사에서 거행된 기록들이 있는데, 조선시대 궁중에서 귀신을 쫓아내기 위한 나례희와 국가경축일에 비단으로 장식된 다락 무대를 만들어 즐긴 산대희가 있다. 조선 후기에 나례희와 산대희가 중단되면서 놀이패가 민간에서 탈춤을 추게 되었다는 설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농촌 마을에서 풍년을 기원하는 행사에서 탈을 썼고, 자연재해를 없애달라는 주술적인 행사가 탈춤의 속성을 그대로 지녔기에 민속극으로 보는 편이 더 자연스럽다(조동일, 「한국의 탈춤」).

본래 ‘탈춤’이라는 표현은 황해도 일원의 해서탈춤으로 지칭했는데,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봉산탈춤과 강령탈춤, 은율탈춤이 그렇다. 그 외는 지역별로 다른 이름을 사용하였는데, 서울과 경기도 지역의 탈춤은 산대놀이(송파산대놀이, 양주별산대 놀이), 경남에서 낙동강을 중심으로 서쪽에서 전승해온 오광대(통영오광대, 고성오광대, 가산오광대, 진주오광대)와 낙동강을 중심으로 동쪽 지역에서 전승돼온 탈춤 ‘야류’(수영야류, 동래야류)가 있다. 한자어 야류(野遊)는 한국어로 들놀음인데 농사일이 잘 되기를 염원하는 마을굿놀이를 뜻한다. 그리고 안동의 하회별신굿탈놀이가 있다. 탈춤이라는 표현이 범용하기까지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기억할만한 계기들이 있었다.

 

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마을 하회별신굿탈놀이전수관에서 열린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기념 ‘한국의 탈춤’ 특별공연 가운데 하회별신굿탈놀이가 펼쳐지고 있다. 2022.12.4.
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마을 하회별신굿탈놀이전수관에서 열린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기념 ‘한국의 탈춤’ 특별공연 가운데 하회별신굿탈놀이가 펼쳐지고 있다. 2022.12.4.

 

탈춤은 탈을 쓰고 공연하기 때문에 가면극의 일종이기는 하지만, 두 단어가 서로 각축을 벌였던 시기가 있었던 것이다. 민속극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가면극이라는 학술용어를 사용하던 시절에, 즉 1960년대와 70년대에 대학가에서 민속극 부흥 운동이 일어났다. 대학생들은 근엄하고 딱딱한 가면극이라는 표현 대신에 탈춤 혹은 탈꾼이라는 단어들을 사용하여 자신들이 체감하는 신명을 더 잘 표현하고자 했고, 민속극의 본래 이름을 찾아주고자 했다. 이러한 변화는 탈춤뿐만 아니라 다른 민속극에서도 일어났는데, “이를테면, 창악이 판소리로, 농악이 풍물로, 부락제가 마을굿으로, 노동요가 일노래로 본래 이름을 되찾게 되면서 가면극도 자연스레 탈춤으로 부르게”(채희완, 「탈춤」) 되었던 것이다.

대학생들이 민족의 정서와 본질을 더 잘 표현하는, 그리고 서툴게나마 탈춤을 배우면서 몸에 체감되는 언어로 가면극이라는 용어를 물리친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그렇지만 ‘탈춤’이라는 표현이 사람들의 입에 익숙해지면서 범칭으로 사용된 것은 항해도의 봉산탈춤이 대중화되고 국제적으로 알려지면서라고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채희완 씨는 황해도의 ‘탈춤’을 범용어로 사용한다고 해서 각 지역의 특성이 담긴 고유명사를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가령, 하회별신굿을 하회탈춤으로 불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인간의 이름도 고유명사여서 비슷하게 부르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은 것처럼, 문화민족일수록 자국 문화의 고유명사 표기에 더 섬세할 필요가 있겠다.

한편, 한국의 ‘탈춤’은 서양에서 말하는 가면극과 표현 양식에 있어서 여러 차이가 있다. 서양의 가면극은 특정한 무대 장치가 필요하다면, 한국의 탈춤은 ‘마당’을 중심으로 일어난다. 마당이라는 표현은 물리적인 공터이자 공연장소이지만, 탈춤에서 문둥이 마당, 양반마당, 영노마당, 할미마당처럼 시공간과 주제를 구분하는 이중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특정한 무대 장치가 미리 준비되는 서양의 가면극과 달리, 탈춤은 필요한 배경을 미리 설정할 필요 없이 탈꾼이 재담과 몸짓으로 장소를 즉시 만들어내고 구경꾼들도 그런 설정을 동시적으로 승인하는 능동적인 참여자의 역할을 한다.

서양의 가면극이 연기자와 관객이 거리를 두는 극이라면, 탈춤은 어디에서나 상황적으로 만들어지는 거리극이다. 서양 가면극은 정해진 극본에 의해 진행되기 때문에 극의 시공간이 구경꾼의 그것과 구별되는 반면에, 탈춤은 정해진 시나리오가 있다 해도 구경꾼의 능동적인 개입으로 내용이 달라질 수 있어서 상황극과 현실의 시공간이 겹치는 매우 창의적인 놀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얼쑤! K-문화의 특징

탈춤의 내용은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양반에 대한 반감과 계층 사이의 갈등, 처첩사이에서 발생하는 가정문제, 그리고 요망하고 간사한 귀신을 물리치는 ‘벽사의식’( 邪儀式)과 관련이 깊다. 이러한 공통된 주제는 일반 서민의 애환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하인은 재담과 몸짓을 통해 양반을 조롱하고, 심지어 동래야류에 등장하는 영노는 99명의 양반을 잡아먹어 한 명만 더 잡아먹으면 승천하는 내용이다. 양반을 풍자할 때는 거침없는 입담으로 비속어와 음담패설을 함께 쏟아낸다. 위계질서가 분명했던 조선시대에 하인이나 평민이 공개적으로 양반을 풍자할 수 있었다는 것이 희한하고, 이런 희화화는 어느 나라에서도 보기 힘들다는 점에서 K-문화의 특징을 보여준다.

유네스코에 등재될 수 있었던 중요요인 중의 하나도 이러한 ‘사회신분제에 대한 비판과 인간 평등의 가치’였다고 한다. 양반들이 이를 묵과한 이유는 무엇일까 싶으면서도, 알면서도 모른 척해준 양반의 관대함도 민중극의 요소일까 싶다.

한국의 탈춤은 정해진 탈꾼의 이름까지 바뀔 수 있는 상황극의 한 종류이다. 가령, 양주별산대놀이에서 완보라는 이름의 목중이 나오는데, 본래 양주사직당 당지기의 이름이었다고 한다. 탈춤은 구경꾼의 동조나 야유가 놀이판에 섞여들어야 더 신명이 나기 마련이다. 한국의 탈춤은 구경꾼이 함께 뛰노는 뒤풀이로 끝이 나는데, 농악대의 흥겨운 음악에 맞추어 구경꾼들이 무대마당에 뛰어들어 함께 춤을 이어간다. 우리나라 음주문화에서 자주 사용하는 ‘뒤풀이’라는 단어가 민속극에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다. 
 

지난해 12월 4일 오후 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마을 하회별신굿탈놀이 전수관에서 열린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기념 ‘한국의 탈춤’ 특별공연 가운데 속초사자놀이가 펼쳐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4일 오후 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마을 하회별신굿탈놀이 전수관에서 열린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기념 ‘한국의 탈춤’ 특별공연 가운데 속초사자놀이가 펼쳐지고 있다.
봉산탈춤(봉산탈춤보존회)
봉산탈춤(봉산탈춤보존회)

 

한국의 탈춤의 특징 중 하나는 관객들의 추임새이다. 얼쑤! 이 단어를 뱉으면 우리나라 민족의 정서가 하나가 되는 것을 누구나 느낄 수 있다. 그런 민족적인 단결과 호응을 두려워했던 것은 일제강점기의 일본이었다. 사람들이 모여서 호응하고 한 마음이 되는 우리나라 민중문화가 일본에게는 위협적일 수밖에 없었다. 일본은 급기야 1911년에 ‘밤에 함부로 노래 부르거나 춤을 추면 즉결처분을 한다’는 명령을 공표했고, 1920년에는 “이른 바 문화통치를 표방하고 명절놀이나 민속행사를 제한된 범위 안에서 사전 승인을 받도록” 탄압했다.

이러한 억압 속에 탈춤은 점점 전승이 중단되었고, 광복 후에도 복원이 여의치가 않았다. 1960년대 후반에 무형문화재 지정 사업과 앞서 언급한 1970년대 대학생들의 민족극에 회복에 대한 열망과 마당극 형태의 계승 노력이 ‘탈춤’의 이름과 함께 탈춤을 되살렸다.

탈춤은 유네스코에 등재된 22번째 한국 인류무형유산이다.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2001). 판소리(2003), 단오제(2005), 강강술래, 남사당놀이, 영산재, 제주칠머리당영등굿, 처용무(009), 가곡, 대목장, 매사냥(2010), 택견, 줄타기, 한산모시짜기(2011), 아리랑(2022). 김장문화(2013), 농악(2014), 줄다리기(2015), 제주 해녀 문화(2016), 씨름(2018), 연등회(2021), 그리고 한국의 탈(2022)로 이어진다.

어머니께 무형문화재 리스트를 보여 드렸더니, ‘김장문화’를 짚으시며 한국의 모든 어머니가 그렇듯 당신도 무형문화 보유자라 말씀하셨다. 정말 그렇다! 필자가 맞장구를 치자, 어머니는 강강술래도 해보셨고, 아리랑도 부를 줄 알고, 탈춤의 뒤풀이 때 흥을 같이 누렸다고도 하셨다. 순간 여태 놓치고 있었던 한 가지를 깨달았다. 무형문화유산 보유자는 예인들뿐만이 아니었다. 한국인 모두가 K-문화의 전승자였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재유산 등재를 온 국민이 함께 즐거워해도 좋은 이유였다. 머지않아 각 지역의 공터에서 얼쑤를 외치는 구경꾼들의 소리가 들려올지도 모르겠다.


글 김다은(추계예술대 문창과 교수) | 사진 봉산탈춤보존회, 뉴스1

*소설가 김다은의 문화 PBL(Problem Based Learning)은 우리나라 문화 속에 제기된 문제를 학습자처럼 해답을 찾아가며 새롭게 배워보고자 하는 문화 기획이다.
 

 

김다은…

이화여자대학교 불어교육과와 불어불문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제8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첫 소설 「당신을 닮은 나라」가 1995년 국민일보 ‘제3회 1억 고료 국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장편소설 「손의 왕관」, 「소통말통」, 「바르샤바의 열한 번째 의자」, 「금지된 정원」,
「모반의 연애편지」, 「훈민정음의 비밀」, 「이상한 연애편지」, 「러브버그」,
창작집 「쥐식인 블루스」, 「위험한 상상」, 문화 칼럼집 「발칙한 신조어와 문화현상」,
「너는 무엇을 하면 가장 행복하니?」, 서간집 「작가들의 연애편지」, 「작가들의 우정편지」를 출간했다.
「금지된 정원」등 다수가 번역되어 해외에 소개되었다. 현재 추계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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