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7 17:20 (토)
 실시간뉴스
[기획 특집] 한국인의 혼과 정서 - K-젊은 ‘영끌’
[기획 특집] 한국인의 혼과 정서 - K-젊은 ‘영끌’
  • 김다은
  • 승인 2023.05.09 08: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소설가 김다은의 문화 PBL
오명희 작. The days were snowy but warm(150x227).
작가는 가족 사진첩에서 영감을 받아 역사 속 한국 여성들이 감내해야 했던 도전과 모순에 관심을 갖게 된다.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는 삶의 지속 가운데 봄날은 오고 간다.


영끌! 최근 한국을 뒤흔든 가장 강력한 신조어를 들라면 ‘영끌’을 빼놓을 수 없다. 가볍게 생겨났다가 스스로 소멸해가는 수많은 신조어와 달리, 우리 사회에 크게 한 방을 먹인 단어이기 때문이다. 본래 사전적인 의미는 ‘본연의 몸매를 감추고 매력을 최대한 부풀리기 위해 하는 행동’이었다. 그런데 최근 회자하는 신조어 ‘영끌’은 주택을 사기 위해 주택담보대출이나 신용대출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했다는 의미이다. ‘영끌’이 올해 처음 나온 것은 아니지만, 20~30대의 MZ 세대가 큰 비중을 차지하여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는 점이 여느 때와 다르다. 소위 K-젊은 영끌이 생겨난 것이다.

영끌‘족’의 계보는 어떻게 될까

우리나라 신조어와 세대 간의 관계를 살펴보면, 기성세대보다 젊은 세대가 신조어 제조기 역할을 해왔다. 가령, 젊은이들의 삶의 양식이 변화하면서 ‘가족’의 신조어가 대거 출현하는 식이었다. 맞벌이하면서 아이를 키우는 젊은 듀크족, 맞벌이하면서 아이없이 부부만 즐기는 딩크족, 마찬가지로 혼자서 애완동물 하고만 사는 싱펫족도 젊은 세대에서 시작되어 점점 부모 세대로 확산되었다.

경제적인 신조어 ‘족’도 젊은이들의 취업과 관련하여 양산되었다. 1991~1995년 거품경제 덕에 쉽게 취업할 수 있었던 거품족, IMF 이후에 취직난 때문에 부모 품을 벗어나지 못한 캥거루족, 취직이 되지 않아 아예 휴학한 모라토리엄족, 취업했으나 적응하지 못하고 학교로 다시 돌아간 유턴족,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며 프리하게 사는 프리터족도 젊은이들의 패턴이었다.

IMF에서 벗어나서 경제가 회복되었을 때 등장한 웰빙족 시리즈도 있다. 외모를 꾸미는데 돈을 아끼지 않아 결혼하고도 처녀처럼 꾸미며 사는 미시족, 결혼한 남자가 미혼처럼 보이고자 하는 우모족, 특히 당시 젊은이들은 집보다는 자동차를 선호했고,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우선이어서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지 않는 경향을 보였다.

그렇다면, 2023년 현재 진행되고 있는 ‘영끌’은 어떤 ‘족’보를 가졌을까. 부동산과 관련하여 ‘영끌’이라는 표현이 회자하기 시작한 것은 2017년 부동산 광풍 이후인데, 정부의 8.2 부동산 정책에 의해 LTV와 DTI 등 규제로 대출이 어려운 상황에서 ‘영끌’이라는 표현이 등장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부동산 광풍의 특징에는 공통점이 있다. 우선 주변 사람들이 집을 사서 짧은 기간에 엄청난 시세차익을 누리는 것을 보게 된다. 마음이 점점 조급해지고, 하루가 다르게 급격하게 오르는 부동산 가격에 불안감을 느낀다. 월급을 착실하게 모아도 평생 집을 살 가능성이 보이지 않자 심리적 공포를 느낀다. ‘패닉’ 상태에서 돈이 될만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소위 영혼까지 끌어모아서 집을 사는 패닉 바잉(panic buying)을 저지르고 만다. 이런 식으로, 전국 집값이 최고점에 도달한 2022년에 과도한 은행 대출을 일으켜 집을 산 사람이 139만명에 달한다고 한다.

문제는 이번 영끌족에 MZ 세대가 주류를 이룬다는 점이다. 4~5명 중의 1명이 영끌 대출을 했고, 그래서 청년 일 인당 빚이 8,455원에, 아예 빚이 없는 젊은이들을 빼면 일 인당 빚이 1억 1,511만원이라는 통계를 보았다. 이는 자신의 수입 능력의 3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빚투’ 자체만으로도 무거운 짐인데, 우크라이나-러시아와의 전쟁이 터지고, 미국이 기준금리 인상을 지속하면서 세계 경제가 침체하기 시작했다. 그 여파로 특히 한국에서는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점점 치솟는 동안 부동산 가격은 도리어 심각하게 하락했다. 작년에 이어 2023년에 MZ 세대가 지불해야하는 이자는 더욱 가중되고 있고, 이자 폭탄 때문에 집을 팔려고 내놓아도 살려는 사람이 없는 실정이다.

MZ 세대의 영끌, 왜 새로운 이슈일까

필자가 재직하고 있는 대학에서 대학혁신지원사업 성과 공유회인 <2022년 추계 대학혁신 리그> 발표회가 있었다.

“우리나라 베이비붐 세대는 후진국에서 태어났고, X세대는 개발도상국에서 태어났으며, MZ 세대는 선진국에서 태어났다.”

연세대학교 융합과학기술원 행정팀장인 김동하 박사가 발표 과정에서 한국의 세대 차이를 이같이 표현했을 때, 청중들은 동조의 웃음을 터뜨렸다. 베이비붐 세대는 어린 시절에 가난의 쓴맛을 알고 자랐고, X 세대는 개발도상국에서 ‘오렌지족’의 경험했으며, 요즘 MZ 세대는 선진국에서 비교적 여유로운 경제적 문화적 경험을 하며 자랐다. 우리나라 경제가 얼마나 급속하게 발전했는지, 그리고 우리나라에 유독 세대 분류가 많은 이유를 단적으로 깨닫게 해주는 언급이었다. 급속한 경제적인 변화가 필수불가결하게 문화적인 변화를 야기했고, 서로 다른 세대의 특징들이 생겨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편, MZ세대는 두 세대 분류를 합친 것인데, 처음부터 합쳐진 것은 아니다. 1980년대 초 ~ 2000년대 초 출생한 밀레니엄 세대를 M 세대라고 불렀는데, 1990년대 중반 ~ 2000년대 초반 출생한 Z세대를 합쳐서 통칭하게 된 것이다. 이들은 한국민의 전통적인 특성 중의 하나인 집단성보다는 개인의 행복을 추구한다. 그렇다고 고립되기보다 디지털 문화에 워낙 익숙해서 SNS를 기반으로 정보를 원활하게 교환하거나 디지털 특유의 인간관계를 맺는데 더 익숙한 편이다. 개인적인 행복에 관심을 두고 있지만, 상품을 구매할 때는 사회적 가치를 표출한 물건을 공동 구매하거나, 필요에 따라 부당한 생산자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소비적 주체의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정치적인 의사나 신념도 SNS를 표출하거나 필요에 따라 단체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선진국에서 태어난 자신감과 신세대다운 면모가 합쳐진 MZ 세대의 삶의 양태는 기성 세대에게는 부러운 것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들이 최근 ‘내 집’ 마련 과정에 보여준 영끌 수난기는 MZ 세대만의 신념이나 가치가 무색할 만큼 이전 세대와 너무나 닮은 면모를 보인다. 기존 세대들의 ‘내 집 마련 고난기’와 크게 다를 바가 없고, 어떻게 보면 더욱 심각한 빚투의 수준이었다. 패닉 바잉이라는 단어가 보여주듯 기존 세대보다 더 부동산에 자신을 내걸었다. 도리어 MZ 세대가 부동산 ‘영끌’를 통해 기존 세대와 연결된 듯한 느낌이다. 대부분이 집이 없는 나이이니 온전하게 투기성 때문이라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실거주를 위해 샀다 해도 소득보다 2~3배가 넘는 대출을 했으니 대책을 마련하기 어려운 투자를 한 셈이다. 어느 세대보다 자신의 신념을 표현하며 경제적인 활동을 했던 MZ 세대지만, 부동산 광풍의 여파에는 그대로 휩쓸렸다.

그렇다면 선진국에 태어났다는 MZ 세대는 정말 선진국에 태어났을까. 즉, MZ 세대가 진정 선진국에 태어났다면 집의 ‘소유’에 지나치게 연연하지 않는 선진국형 가치관이 형성되었을 텐데 그렇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 신조어 ‘영끌’은 신세대가 기성세대로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라 기성세대가 신세대로 영향을 미친 결과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겉으로는 보이지 않다가 뜻하지 않은 혹은 예기치 못한 순간에 본래 특성을 드러내고 마는 한국인의 내적 DNA가 발로된 것은 아닐까.

K-젊은 세대는 어떤 DNA를 물려줄 것인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영혼까지 끌어다 쓴다. 어떻게 보면 참으로 열정적이고 아름다운 표현이기도 하다. 한국인의 영끌은 부동산 때문에 갑자기 생겨난 것은 아니고 그 이전에도 다른 형태로 한국인의 혼과 정서에 깊게 자리잡고 있었다. 부동산 광기가 한국인의 DNA로 새겨지기 전에 다른 영끌이 이미 내재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가령, 우리 부모 세대는 후진국에 태어난 베이비부머의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얻기 위해 밤낮없이 일해야만 했다. 특히 자식들만은 가난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몸이 가루가 되도록 일하여 희생하며 살았다. 자신의 개인적인 행복은 고사하고, 요즘처럼 은행에서 끌어올 대출이라는 개념도 없이 당신들의 영혼을 다 끌어다가 자식들의 성공을 뒷바라지한 것이다. 우리 부모들의 영끌도 지금 MZ세대의 영끌보다 결코 약하지 않았다.

이처럼 한국인의 K-영끌이 희생을 기반으로 했다면, 서양인들의 영끌은 대가성을 지녀 차이가 있다. 우선 언어에서부터 서양인들은 ‘영혼을 판다(sell one’s soul to the devil)’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악마에게 자신의 영혼을 넘겨주고 대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 개념이다. 악마가 인간에게 원하는 것을 주겠다는 유혹의 DNA는 아무래도 성경에서 유래한 것이지 싶다. 예수가 광야에서 40일 금식기도를 끝내자마자 마귀가 나타나서 유혹하는데, 자신에게 절하면 보이는 눈앞의 천하만국을 다 주겠다는 제안을 했던 것이다. 예수님은 오로지 하나님에게만 경배한다고 마귀를 물리친다.

마찬가지로 서양 예술에서 인간이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소재는 자주 등장한다. 괴테의 ‘파우스트’가 악마 메피스토텔레스에게 영혼을 팔고, 드라마나 영화에서 악마는 호시탐탐 인간의 영혼을 노리고, 이태리의 니콜로 파가니니는 아예 영혼을 판 천재 음악가로 알려져 있다. 파가니니는 워낙 뛰어난 연주로 듣는 이들을 졸도시키거나 울음을 터뜨리게 했고, 유전병으로 팔다리가 길고 가늘어져 바이올린 연주에 적합한 신체가 되어갔으며, 매독과 결핵 그리고 치정사건에 얽혀 감옥에 가는 등 복잡한 사생활로 사람들의 의심을 샀다. 결국, 카파렐리 사제가 파가니니에게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는 고백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지독한 연습과 노력으로 자신의 약점을 극복한 천재적인 음악가에게 따라다닌 뒷담화가 아닐까 싶다. 최근 서양식의 ‘영혼을 판다’라는 표현이 한국 예술가 사이에서도 자주 회자하는데, 신들린 연기 혹은 뛰어난 재능에 찬사를 보내기 위해 사용하는 표현이 되었다.

이처럼 한국인과 서양인들이 영혼을 사용하는 방식이 조금씩 다른데도, 현재 진행되고 있는 K-젊은 영끌은 동양과 서양의 공통점을 떠올리게 한다. 중세나 고전주의 시대와 달리, ‘나’를 비로소 자각하고 자신의 삶과 상상력을 설계하지만, 산업화로 인해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는 ‘근대적 영혼’의 비극적인 자화상을 보는 느낌이다. 이는 K-영끌이 단순히 개인의 욕망과 관련된 문제가 아니라 산업화나 경제적인 상황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음을 시사한다. 겉으로는 한국이 경제 선진국처럼 보여도 아직 선진국형 가치를 지닐 수 없는 삶과 사회가 진행되고 있다는 반증이다. MZ 세대가 오로지 자신을 위해 ‘내 집’을 마련하다가 덫에 걸린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본연의 몸매를 감추고 경제적인 매력만 부풀린 한국의 덫에 걸린 것이나 다름없다.

오명희 작. The days were snowy but warm(150x227).
작가는 ‘눈이 내렸지만 따뜻했다 The days were snowy but warm’를 통해 역사 속 한국 여성들이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는 하나의 끊기지 않는 경험을 공유하고 살고 있으며, 그 속에서 과거를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함을 일깨워 준다.

 

우리 부모들의 세대는 오로지 자식들의 성공과 가족의 생계를 위해 영끌을 했고, 그 덕분에 공부하고 성장한 자식들은 나름 개발도상국에서 젊은 날을 보내게 되었고, 그 자식들은 그나마 ‘부풀려진’ 선진국에서 젊은 날을 보내게 되었다. 그런데 세대가 바뀔수록 K-젊은이들은 오로지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 영끌 투자하는 경향으로 바뀌고 있다. MZ 세대의 영끌 성향은 부동산뿐만 아니라 주식 투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젊은 부자의 꿈을 꾸는 것은 더할 나위없는 희망이지만, 미래를 위해 서슴없이 ‘빚투’한 결과 도리어 경제적 약자가 되는 경우를 주변에서 보았다. 어쩌면 MZ 세대들은 이 경험을 통해 제대로 투자하는 법을 배우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MZ 세대가 자식들에게 물려줄 K-DNA가 궁금하다. ‘부풀려지지 않은’ 선진국 한국을 만들어낼 수 있는 K-DNA가 형성되어 후대로 전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글 김다은(추계예술대 문창과 교수) | 사진 오명희 작가, 뉴스1
 


김다은…
이화여자대학교 불어교육과와 불어불문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제8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첫 소설 「당신을 닮은 나라」가 1995년 국민일보 ‘제3회
1억 고료 국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장편소설 「손의 왕관」, 「소통 말통」, 「바르샤바의 열한 번째 의자」, 「금지된 정원」, 「모반의 연애편지」, 「훈민정음의 비밀」, 「이상한 연애편지」, 「러브버그」, 창작집 「쥐식인 블루스」, 「위험한 상상」, 문화 칼럼집 「발칙한 신조어와 문화현상」, 「너는 무엇을 하면 가장 행복하니?」, 서간집 「작가들의 연애편지」, 「작가들의 우정편지」을 출간했다. 「금
지된 정원」등 다수가 번역되어 해외에 소개되었다. 현재 추계예술대학교 문예창작
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