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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칼럼] 남녀 임금 격차에 대한 오해
[여성 칼럼] 남녀 임금 격차에 대한 오해
  • 전현정
  • 승인 2023.06.03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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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의 일이다. 국정감사에서 남녀 임금 격차 개념에 대한 논란이 벌어졌다. 모(某) 국회의원이 한국수출입은행의 남녀 임금 격차를 문제 삼았다. 그러나 은행장은 “우리 기관에는 성별 임금 격차는 존재하지 않아요.”라며 자신 있게 답변했다. 공개된 호봉 표에 근거하여 남녀가 동일하게 임금을 받기 때문에 임금 격차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 반박의 근거였다. 그의 주장에는 이해가 되는 부분이 있다. 호봉 표에 의해 월급을 받는 모든 직장인은 그의 말에 동의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국회의원도 순순히 물러서지 않았다. 여성계가 주장하는 남녀 평균임금을 들고 나왔다. 수출입은행 평균임금 현황을 분석해보니, 남성 행원이 100의 임금을 받을 때 여성 행원은 59의 임금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남녀 임금 격차 41.36%는 기획재정위원회 산하기관 중 독보적이며, OECD가 조사한 한국의 성별 임금 격차 32.5%보다도 8.9%나 높아요.”라고 다그쳤다.

그 광경을 본 나의 지인이 내게 톡을 보내왔다. “도대체 누구 말이 맞나요?” 이럴 때 참 난감하다. 결과적으로 둘의 말이 완전히 틀리고 완전히 맞지는 않기에 정확한 답변을 내기 어렵다. 먼저, 임금에 남녀차별이 없다는 행장의 말부터 따져보자. 호봉 표는 경력에 근거하여 산정되므로, 월급을 받는 모든 직장인은 남녀 동일노동 동일 임금원칙에는 부합한다. 남녀 임금 격차는 있을 수 없다. 이런 차원에서 행장의 말은 100% 맞다.

남녀 임금 격차가 의미하는 것

하지만 여성계가 주장하는 남녀 임금 격차나 남녀동일노동 동일임금 개념에는 더 큰 의미가 부여되어 있다. 남녀 평균임금을 염두에 둔 것이다. 문제점을 지적한 국회의원도 그런 차원에서 지적했다. 같은 경력, 같은 직종, 같은 직급에 동일한 급여를 규정대로 지급한다는 것이 성별 임금 격차가 없다는 근거는 될 수 없다는 것이 여성계의 주장이다. 동일노동 동일임금과 남녀 임금 격차에 평균임금 차이까지 혼용되어 사용되고 있으니 혼동이 되는 것도 이해가 된다. 나의 설명을 들은 지인은 페미니즘이, 여성계가 너무 나갔다고, 과도하다고 반박했다. 심지어 이런 표현도 했다. “억지야. 억지.” 이러니 페미니즘이 국민의 동의를 받기 어렵다는 것이다. 남녀 동일노동 동일임금에 평균임금 격차 개념까지 포함된 줄을 누가 알겠느냐며 일침을 놓았다. 이런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남녀 임금 격차에는 ‘평균’이라는 두 글자는 꼭 들어가야 할 것이다.

은행이나 공무원처럼 호봉 표가 공개된 직장은 수출입은행장처럼 ‘우리 회사에는 남녀 임금 격차가 없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직장도 많이 있다. 대표적인 곳이 법무법인이다. 2017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의 일이다. 여성 변호사가 본인이 다니던 로펌을 상대로 "남자 변호사와 비교했을 때 불평등한 임금을 받았다"라며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남녀차별에 따른 임금 격차'로 피해를 보았다는 것이 그녀의 주장이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 여성 변호사는 지난 2013년 계약직 변호사로 근무를 시작했다. 당시 이 변호사의 연봉은 8만5000달러로 1년 후 정규직으로 채용되면서 연봉은 13만 달러로 인상됐다. 2015년에는 16만5000달러로 인상됐으나 같은 직급의 남성 변호사들과 비교했을 때 여전히 연봉 수준이 낮았다는 것이다. 동일노동에 대한 임금이 달랐다면 위법상황임은 분명해 보인다. 실제 캘리포니아주에서는 2016년부터 공정임금법(California Fair Pay Act)을 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법에 따라 남성과 여성이 실질적으로 유사한 조건의 업무를 수행하면 동등한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

그럼 우리나라의 상황은?

정부는 지난 3월 상장법인과 공공기관 근로자 성별 임금 격차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2021년 성별 임금 현황을 공시한 2,364개 상장법인의 성별 임금을 조사해보니, 상장법인 전체의 남성 1인당 평균임금은 9,413만 원, 여성 1인당 평균임금은 5,829만 원으로 나타났다. 상장법인 근로자 1인당 평균임금의 성별 격차는 38.1%이었다. 이는 직전년도 35.9%보다 2.2% 포인트 확대된 수준이다. 남성 평균 근속연수는 12.0년, 여성 평균 근속연수는 8.3년으로, 성별 근속연수 격차는 31.2%로 조사됐다. 그럼 공공기관은 어떨까? 2021년 성별 임금 현황을 공시한 370개 공공기관의 성별 임금 격차 조사결과, 남성 1인당 평균임금은 7,806만 원, 여성 1인당 평균임금은 5,755만 원으로 나타났다. 공공기관 근로자 1인당 평균임금의 성별 격차는 26.3%이며 전년 대비 1.5%포인트 줄어든 수치이다. 전체 공공기관의 남성 평균 근속연수는 13.9년, 여성 평균 근속연수는 9.2년으로, 성별 근속연수 격차는 34.0%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민간기업과 마찬가지로 공공기관 남녀 평균 근속연수 격차도 매년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녀고용평등법 제8조에 ‘사업주는 동일한 사업 내의 동일가치 노동에 대하여는 동일한 임금을 지급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어서 ‘동일가치 노동의 기준은 직무 수행에서 요구되는 기술, 노력, 책임 및 작업조건 등으로 하고, 사업주가 그 기준을 정할 때는 노사협의회의 근로자를 대표하는 위원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라고 되어있다. 하지만 법적 구속력이 없고 선언적 성격이 강하다. 동일가치 노동은 엄밀한 직무분석이 요구된다. 직무분석도 안 되어있고, 직무 정보가 공개되지 않는다면 어떤 것이 동일 가치노동인 줄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은 남성과 여성의 동일임금 원칙을 강화하기 위해 성별 임금 정보를 제공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과거 문재인 정부는 성별 임금 공시를 국정과제로 추진했지만, 안타깝게도 이런저런 이유로 시행하지 못했다. 하지만 금년 초, 현 정부는 제4차 양성평등 기본계획을 발표하면서, 올 하반기부터 공공기관에서 성별 근로 공시제가 시행될 예정이라고 공언했다. 성별 근로 공시제란 기업이 채용·근로·퇴직단계 등 고용상 항목별 성비 현황을 확인할 수 있도록 외부에 공시하는 제도다.

성별 평균임금 격차는 저조한 여성 대표성, 여성의 경력단절 문제와 순환의 고리를 갖고 있다. 여성의 평균 재직기간이 남성보다 짧고, 하위직에 여성이 많다는 통계는 한편으로는 성별 평균임금 격차를 의미하고 있다. 성별 평균임금 격차의 원인으로는 남녀 간의 직급, 근무 기간, 직종 간의 차이, 출산과 육아·경력단절, 승진에서의 성차별 등 다양한 요소가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성별 근로 공시제를 통해서 성별 평균 임금 격차 해소를 위한 첫발자국을 내디뎠다. 앞으로, 동 제도의 정착을 통해서 남녀 임금 격차 불식이 여성계의 과도한 요구라는 오해를 불식시키고, 고용현장에 남녀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정착되는 날이 어서 오기를 기대해 본다.

글 이복실(전 여성가족부 차관)
 

 

이복실은…
전 여성가족부 차관, 세계여성이사협회 한국지부 회장.
서울 시립대 도시행정학과를 졸업,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USC 에서 교육학으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1985년 여성으로서 네 번째 행정고시 합격자이다. 30년간 중앙부처에 재직했으며,
2013년 여성가족부가 설립된 이래 최초 여성 차관으로 임명됐다.
저서로는 <여자의자리 엄마의 자리>, <나는 죽을 때까지 성장하고 싶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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