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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와 회화의 공존, 작가 전지연
도예와 회화의 공존, 작가 전지연
  • 신규섭 기자
  • 승인 2023.05.15 07: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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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희로애락이 모여 인생을 이루듯, 파편화된 작품을 통해 삶을 직면하다”
도예와 회화의 변주를 통해 시너지를 얻고 있는 전지연 작가.
도예와 회화의 변주를 통해 시너지를 얻고 있는 전지연 작가.

 

사단법인 이태석재단과 동아일보는 4월 22일부터 5월 8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고 이종욱 WHO 사무총장과 이태석 신부를 기리는 특별전시 ‘바로 우리展’을 가졌다. 위대한 인생을 살았던 두 의사의 삶을 조명하는 ‘바로 우리展’에는 국내외 유명 작가 75인이 참여해 의미를 더했다. 
전시 참여 작가는 윤형근, 김창렬, 이우환 등 회화계 거장부터 콰야, 잠산, 김지희 등 신진작가까지 세대를 아우른다. 여기에 에바 알머슨, 마리 로랑생, 아담핸들러 등 해외 작가를 비롯해 사진작가 민현우, 황문성, 제이안 등이 참여했고 도예 분야에서는 박철원, 한의석, 이호영, 전지연 등의 작가가 뜻을 함께 했다.  
‘바로 우리展’이 있고 며칠 후 세종문화회관에서 그녀를 만났다. 미국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덕에 한국 지리에 익숙하지 않는 그가 약속 장소로 정한 곳은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이었다. 
헤이리 새오리공방에서 전업작가로 활동하는 그녀는 대학에서 도자기를 전공했다. 경희대학교 요업공예과를 나와 미국 FIT 의상학과와 경희대학교 일반대학원 도예학과를 졸업했다. 그동안 국제KWCA협회전(이천), 공예트랜드페어(서울), 아시아현대교류전(일본) 등 개인전 6회와 국내외 크고 작은 단체전에 참여했다. 

‘바로 오늘展’에 많은, 유명 작가분들과 함께 해 감회가 새로웠을 것 같습니다. 
저로선 영광이었습니다. 75인의 작가들이 전시회에 참여한 이유가 이종욱 WTO 사무총장과 이태석 신부의 사랑과 헌신적인 희생정신을 널리 알리기 위함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뜻 깊은 전시에 훌륭한 작가들과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전시기획부터 다양한 프로그램까지 75명이 함께 두 분의 정신을 기리며 한 마음으로 모였던 것 같습니다. 멋진 전시기획행사에 참여하게 되어 더없이 영광이었습니다. 그 뜻에 맞춰 Piece of Peace란 타이틀로 평면작품을 출품했습니다.

처음 작업을 하셨을 때는 어떤 작업을 하셨나요? 
입체위주의 작품을 하다 평면 도판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현대 도예의 추상표현주의 도자, 표현방법에 관심을 갖고 있어 좀더 예술의 지평을 넓혀서 작업하고 싶었습니다. 도자기라는 형식은 차용하지만 매체에 진실해야만 한다는 공예적 개념에서 벗어나 붓고 뿌리고 담그는 작업을 통해 우연의 효과를 얻고 흙의 질감, 색채, 형태 등에서 회화성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작품이 일반적인 공예 작품과는 다릅니다. 이런 작업을 하기까지 꽤 긴 과정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한동안 작업을 쉬다 다시 시작한 게 2008년이었어요. 작업을 재개하면서 ‘작가로서 내가 자격이 될까?’ 진지하게 자문했어요. 가까운 작가분들께 여쭤도 보고요. 뉴욕에서 활동하는 강종숙 작가께서 나중에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자격은 무슨 자격, 그냥 작업하면 되지’라고요.(웃음) 사실 작품은 작가의 개성과 의도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표현되는 것이거든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작업에 매진하신 거군요. 
질문에 답을 찾는 시간이었어요. 또한 작업실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함께 작업하는 분들과 뉴욕에서 활동하는 회화작가들의 작업실을 방문하고 교류하며 많은 걸 배웠습니다. 첼시의 크고 작은 갤러리에서 매주 목요일마다 와인 한잔 마시고 작가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고요. 그때 알았어요. 작은 작품도 인정하고, 편견 없이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사실을요. 

깨진 도자 조각들을 맞춰가는 과정이 삶을 예술로 만드는 과정이다.
깨진 도자 조각들을 맞춰가는 과정이 삶을 예술로 만드는 과정이다.

파편 시리즈도 초기와 근작은 분위기가 다른 듯합니다. 
초기에는 비정형, 또는 정형으로 깨진 도자 조각들을 조화롭게 맞춰 그 위에 전사지를 사용하거나 회화적 요소를 가미해 질감, 입체감을 달리 표현했습니다. 최근에는 파편화된 삶의 희로애락은 쓸모없이 버려지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자신의 온전한 모습은 그런 조각들 없이는 이룰 수 없다는 것을요. 그 조각들을 맞춰가는 과정이 곧 삶을 예술로 만드는 과정입니다. 그런 과정을 면이나 색감을 통해 추상적으로 표현하고 있어요. 밝게 빛나던 순간, 따뜻하고 소중했던 추억, 어둡고 거친 기억 등 숨기고 싶은 내면의 감정들이 모두 조각에 담겨있어요.

귀국 후 작품이 많이 밝아진 듯합니다. 
한국에 돌아온 후 이전보다 색감이 밝아진 건 사실이에요. 인생과 대항하려면 정답이 없는 것 같아요.(웃음) 작업을 통해서 삶을 대하는 태도를 배워간다고 할까요. 마치 알 수 없는 미지의 삶이, 불에 작품을 넣고 기다리는 것과 같이 많은 기대감을 갖게 해요.

달항아리 시리즈도 일반적인 달항아리는 아닙니다. 
제 속에 내재된 동양적인 DNA를 표현한 게 달항아리 시리즈입니다. 한 갤러리에서 전시를 할 때 가운데 달항아리를 놓고, 주변에 파편들을 늘어놓았어요. 그걸 본 관람객이 ‘파편화된 내 삶도 저런 달항아리처럼 중심을 잡는 게 필요하겠다’며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해요. 그런 얘기들 들으면 작가로서 보람을 느껴요.  

그런 감동들이 파편처럼 모여, 작가에게 큰 힘을 주는 게 아닐까요. 
그럼요. 수강생 중 한 분은 도자기를 굽고 그림을 그리면서 힐링이 됐다고 해요. 얼마 전 어머니를 여윈 한 수강생은 작업을 통해 큰 위로를 받았다고 하고요. 그런 분들과 소통하는 게 제게는 중요한 일이에요.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되세요. 
작업은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5시까지 이어집니다. 캐스팅 작업은 사이즈가 커지면 경화에만 한나절이 걸려, 온종일 작업해야 하나를 만들 수 있어요. 온종일 작업에 매달려야 하는 이유죠. 모든 게 제게는 아직도 배우는 과정이에요. 다양한 온도에서 구워도 보고, 유약도 계속 배우는 과정이고요. 작품들이 불에 들어가서 오묘한 색으로 표현되는 게 제게는 큰 즐거움이에요. 

앞으로 어떤 작업을 해보고 싶으세요. 
회화작가들은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수많은 대상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려고 시도합니다. 도예가들도 회화작가들처럼 다양한 시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과정에서 얻는 시너지가 적지 않을 겁니다. 재료와 방법, 개념을 통합해 새로운 창조물을 얻는 작업을 계속 하고 싶어요. 다음 전시에서는 깨진 조각들로 벽 한 면을 채우는 등 작품 사이즈도 키워보고 싶고, 앞서 말씀드렸듯이 설치작업도 해보고 싶습니다.

 

신규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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