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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칼럼] 워킹맘의 아침밥
[여성 칼럼] 워킹맘의 아침밥
  • 이복실
  • 승인 2023.06.17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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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드셨나요?”라고 질문하면 우리나라 국민 중의 세 명 중 한 명은 아침을 안 먹었다고 답할 것이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우리 국민 3명 중 1명이 아침을 거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이별로 살펴보면 20대(19~29세)의 아침 식사 결식률이 53%로 가장 높다. 못 먹는 건지 안 먹는 건지 아침밥을 거르는 이유는 수십 가지다. 최근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천원의 아침밥’은 아침 식사 결식률이 높은 대학생에게 아침밥을 1000원에 제공하는 사업이다. 학생이 1000원을 내면 정부도 1000원을 내고 나머지는 학교가 금액을 부담하는 방식이다. 농림부가 남아도는 쌀소비를 촉진하기 위하여 추진하였다고 한다. 단돈 천 원으로 아침을 먹으니 경제적인 부담도 없고, 건강과 영양학적으로도 도움이 될 것이다.

‘천원의 아침밥’ 정책 소식을 들으니 아침밥에 관한 여러 가지 추억과 단상들이 떠오른다. 어릴 때 아침밥은 잠 많은 우리 형제들을 깨우는 엄마의 전략이었다. “얘들아! 밥 맛있게 해놓았다. 얼른 일어나.” 방금 지은 따끈따끈한 밥과 김치찌개, 된장찌개의 구수한 냄새는 철부지 우리들의 잠을 흔들어 놓기 충분했다. 그렇게 엉거주춤 일어나 엄마가 해준 아침밥을 먹고 학교에 갔다. 결혼하여 직장 다니면서 아이들을 키울 동안 나는 미안하게도 엄마가 해준 것만큼 정성스러운 아침밥을 아이들에게 해주지를 못했다. 아침에 너무 바빴기 때문이다. 30년 동안 거의 전쟁 같은 아침을 치렀다.

워킹맘의 고달픈 아침 출근 시간은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안다. 워킹맘에게 아침의 1분은 너무 소중하다. 평소 시간의 10배 이상 빠르게 지나간다. 아침 식사 준비하랴, 나도 출근 준비하랴, 아이들 깨워서 밥 먹이고 등교 준비시키랴 정말 몸이 열이라도 모자란다. 허겁지겁 정신없이 출근하는 워킹맘의 아침 풍경은 어느 집이나 다 비슷할 것이다.

그까짓 아침 식사 갖고 무엇을 그러냐고 하겠지만 출근 준비와 아침 식사를 한꺼번에 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그 고충을 모른다. 그런데도 가족들은 바쁜 나에게 아침밥을 달라고 요구한다. 서로 바쁘고 힘든데 조금씩 도와주며 살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아침밥은 당연한 나의 의무였다. 남편이 아내와 가족을 위해 요리한다면 대단한 사람으로 칭송받고, 아내가 조금이라도 소홀하다면 불량주부, 불량 엄마가 되어버린다. 우리 세대의 대부분은 그렇게 살았다. 워킹맘으로 산 30년 동안 아침밥이 주는 스트레스와 죄의식은 불량주부라는 딱지와 함께 내게 아직도 상처로 남아있다.

‘아내가 아침밥을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일본 TV 프로그램 중에 ‘세계의 아침밥’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세계 여러 도시를 돌면서 신혼부부의 집을 방문하여 집에서 먹는 아침 식단을 소개하는 해외 여행기 같은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채널에서 방영되었다. 몇 년 전 필자도 한 케이블 TV에서 방영하는 것을 우연히 시청한 적이 있었는데, 가보지 못한 곳과 먹어보지 못한 음식을 소개하니 나름 흥미로웠다. 그런데 내용을 보고 놀랐다. 아내는 일찍 일어나 화장하고 출근 준비하면서 요리도 한다. 너무 바쁘다. 그런데 남편은 정신없이 쿨쿨 잔다. 아내가 아침밥을 맛있게 차려서 준비하여 상차림까지 끝낸 후 남편을 깨운다. 아내는 요리를 잘하고, 출근 준비도 완벽하게 하는 슈퍼우먼이었다. 프로그램 댓글에 이런 글이 달렸다. ‘남편은 손이 없나?’

우리나라 주부들이 더 힘든 것은 한식 아침을 고집하는 데도 원인이 있다. 한식은 초보자가 만들기도 어렵지만 시간도 많이 걸린다. 유치하게도 쉽게 아침을 해결하고 있는 다른 나라의 아침 식사가 부러웠던 적이 있었다. 미국이나 유럽의 아침은 거의 빵과 계란, 조금 더하면 치즈나 소시지가 전부다. 아시아권도 마찬가지이다. 홍콩을 가니 이른 아침에 따끈따끈한 찐빵과 만두를 파는 가게에 줄 서서 아침밥을 산다. 너무 날씨가 더워서 집에서 요리하는 것보다 밖에서 사 먹는 문화가 발달하였다고 한다. 미국에는 주말에 아침밥을 밖에서 외식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침만 제공하는 식당도 있다. 밖에서 아침을 사 먹는 문화가 형성된 것은 아마도 주중에는 서로 바빠 각각 식사하지만, 주말에는 가족이 함께 식사하고 싶거나 아내를 일주일에 한 번쯤은 부엌에서 해방해주고 싶은 배려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식문화가 서양식으로 바뀌면서, 또 젊은 세대가 아빠가 되면서 조금씩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 점은 반가운 일이다.

아침밥 먹기 어려운 사람이 어찌 대학생뿐이랴. 워킹맘, 어르신 등 밥 한 끼 하는 것, 먹는 것이 힘든 사람들이 많다. 아침밥 정책을 보고 ‘나도 아침밥 수혜대상이 되었으면’ 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식사를 해결하기 어려운 계층들에게는 밥 한 끼 쉽게 사 먹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지난달 포항 장애인복지관을 방문하였는데 필자의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었다. 그 기관은 포스코 1% 나눔재단의 지원을 받아 VR (가상) 직업훈련프로그램을 수행하고 있었다. 포스코 1% 나눔재단은 포스코 임직원들이 월급의 1% 내에서 자율적으로 기부하면 회사가 이에 매칭하여 기부금을 조성하여 사회공헌사업을 하고 있다. 그룹사 직원까지 동참하여 연인원 34,000명이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가상 직업훈련프로그램도 흥미로웠지만, 이용자들에게 점심 식사를 2,000원에 제공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띄었다. 관장은 “우리 복지관에서 이용자들을 위하여 점심 식사를 저렴하게 제공하고 있어요. 예산이 편성되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사업비를 여기저기 모았어요.”라고 말했다. 요즘 천원, 이천 원으로 어떻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나. 천원의 아침밥, 이천 원의 점심밥. 말만 들어도 따뜻하다. 이렇게 식사 한 끼가 주는 의미와 시사점은 크다. 국민의 건강과 생존과도 직결되지만, 복지관의 이천 원의 점심밥처럼, 이웃과 함께하는 식탁은 정서적 안정을 주고 사회와의 끈을 이어준다.

워킹맘들에게도 ‘천원의 아침밥’ 같은 정책이 실현되는 날이 올까. 아파트에 공동부엌을 만들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느 세월에. 그것을 기다리느니, 남편에게 가족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편이 빠를 것이다. 아침밥 때문에 주부들이 더 이상 죄의식을 갖지 않는 사회, 워킹맘의 아침 시간이 편해지는 날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 가득하다. 그러려면 남녀의 성 역할을 규정하지 말고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새로운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글 이복실(전 여가부 차관)
 

 

이복실은…
전 여성가족부 차관, 세계여성이사협회 한국지부 회장.
서울 시립대 도시행정학과를 졸업,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USC 에서 교육학으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1985년 여성으로서 네 번째 행정고시 합격자이다. 30년간 중앙부처에 재직했으며,
2013년 여성가족부가 설립된 이래 최초 여성 차관으로 임명됐다.
저서로는 <여자의자리 엄마의 자리>, <나는 죽을 때까지 성장하고 싶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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