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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K-트로트 융합, 세대간 경계를 넘다
[특별기획] K-트로트 융합, 세대간 경계를 넘다
  • 김다은
  • 승인 2023.05.27 09: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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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다은의 문화 PBL
임영웅과 함께한 수만 관중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거의 2019년부터 2023년 현재까지 트로트 파도에 휩싸여 살았다. 밀물처럼 밀려든 트로트의 물결은 초기 <미스 트롯>, <미스터 트롯>에서 <미스 트롯2>, <미스터 트롯2>로, 그리고 <나는 트로트 가수다>, <내일은 미스터 트롯>, <트로트퀸>, <트롯신이 떳다>로 계속 이어졌다. 게다가 트로트 경연 후의 후속 프로그램인 <뽕숭아 학당>이나 <사랑의 콜센터> 등도 속속 생겨났다. 트로트의 파고가 워낙 높아서 여러 세대와 여러 장르를 모두 휩쓸어 삼켰는데, 그래서 트로트에 조금 지친 사람들과 여전히 그것을 즐기려는 사람들 사이에 긴장감이 생기는 시기이다. 트로트가 우리 사회를 덮치면서 일어난 여러 가지 변화가 긍정적인 융합인지 우리 문화의 블랙홀이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트로트 열풍을 가능케 한 가장 큰 원인을 들라면?

트로트는 영어로 trot인데 ‘빨리 걷다’를 의미하지만, 독일어 trott는 말의 느린 걸음과 승마의 빠른 걸음 속보를 동시에 의미한다. 프랑스어 trotte은 쓸쓸하고 단순한 리듬을 가진 음악으로 되어 있다. 한국 ‘트로트(트롯)’이라는 단어는 미국의 춤곡인 폭스트로트(fox-trot)에서 유래했지만, 일제강점기에 한국의 민요풍과 일본의 엔카가 접목된 노래가 나오게 된 것이라 한다. 그래서 4분의 2박자나 4분의 4박자와 같은 단순한 리듬에 엔카풍이 들어간 트로트는 ‘뽕짝’이라는 이름으로 소위 2류 음악이라는 인식이 생겼다. 유명 가수나 젊은 세대들은 트로트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어 부르는 경우가 거의 없었고, 트로트 음악공연을 보러 가는 일도 드물었다. 국민가수 장윤정이 처음 트로트를 부르기 시작했을 때, ‘하다하다 안 되니까’라는 표현을 들었다고 심정을 토로하는 것을 오래 전에 TV에서 본 적이 있다. 트로트 가수가 부끄러워 복면을 쓰고 나온 영화 <복면달호>도 있었다.

그런데 많이 변해도 너무 변했다. 요즘 우리 사회는 트로트 신드롬을 앓을 정도였다. 2019년 TV조선에서 <미스 트롯> 오디션 프로그램을 필두로, MBC의 <놀면 뭐하니>의 유재석이 유산슬이라는 이름으로 트로트 가수에 도전하면서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2020년 TV조선의 <미스터 트롯>이 기름을 부은 듯 타오르게 했다는 것이 알려진 여정이다. 그런데 트로트 열풍이 불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환경적인 요인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우리 사회에 숨죽이고 있던 트로트라는 장르가 살아난 것은 듣도 보도 못한 코로나라는 바이러스의 출현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트로트가 시작된 2019년과 코로나19 펜데믹이 공교롭게도 맞물리는 시기라는 점이 시사적이다.

펜데믹이 우리 사회와 가정에 가져온 변화는 비대면 사회로의 전환이었다. 누구나 방콕 혹은 집콕을 강요받았다. 1인 가족은 대부분 종일 좁은 거주지에서 밥 먹고 잠도 자고 일해야 했고, 가족 구성원들도 기상천외한 생존방식이 요구되었다. 세대를 막론하고 한두 달도 아니고 해를 거듭하며 함께 버텨내야 했다. 각자가 자기 방에서 공부하거나 일한다고 해도, 휴식이나 즐거움은 거실의 TV 앞일 수밖에 없었다. 대가족은 조부모나 부모 그리고 아이들까지 모두 함께 한 집에서 견뎌야 하는 시기였다. 흔히 아내가 드라마 시청을 원할 때 남편은 축구를 보자고 부부간에도 리모콘을 두고 싸웠는데, 팝송이나 힙합을 좋아하는 아들이나 민요를 원하는 노부모와의 간극은 누구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모든 가족 구성원이 집에서 함께 보내야 하는 고난의 시기에 어떤 방식으로나 함께 볼 수밖에 없는 프로그램이 필요했다. 온 가족이 동시에 볼 수 있도록 양보 혹은 타협이 가능한 프로그램! 한 프로그램에 모든 세대의 시선을 맞출 수 있어야만 했던 것이다. 그것이 소위 트로트였다.

트로트는 어떻게 융합을 가능케 했을까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엔카풍의 트로트가 우리나라 대중음악으로 특히 5080의 음악으로 정착한 이유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가락의 특성상, 역사적으로 불운한 수많은 사건을 겪으면서 힘든 시기를 견딜 때 들을 수밖에 없었던 노래였기에 그러했을 것이다. 일제강점기의 억압과 설움, 광복에 이어 한국전쟁의 폭격 속의 혼돈과 충격, 전쟁 후의 지극한 궁핍과 가난에서 혼신으로 생계를 이어가야 할 때 위로를 주었던 가락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트로트는 현대음악에 밀려 젊은 세대와의 교감이 어려웠고, 장년과 노인세대는 자식에게 부탁해서 따로 녹음해서 듣거나 실버 학당의 ‘노래교실’에서 배우거나, 늦은 시간대의 TV에서 방영되는 노래를 듣는 식이었다.

그런데 코로나19 펜데믹을 미리 대비라도 한 듯 소위 트로트가 젊은 세대에게도 각광받을 수 있게 만든 사건이 있었다. 유재석 씨가 <놀면 뭐하니>에서 트로트 신인가수로 도전하면서, 트로트라는 장르의 특성을 다른 세대들도 이해하는 출발점이 되었다. 전통 트로트를 소화(?)하기 어려웠던 유재석에게 보다 발랄한 작곡과 편곡이 제공되었고, 이를 통해 트로트가 고리타분하고 노인들의 음악이라는 고정관념이 깨졌던 것이다. 젊은 세대를 새롭게 합류시키게 되었는데, 이는 단순히 트로트를 듣는 시청자의 숫자를 늘린 것이 아니라, 모든 가족이 TV 앞에 앉아서 모두 흡족하게 트로트를 즐길 수 있게 만든 것이다.

더구나 트로트는 시청자들만이 아니라 트로트 가수들의 세대 간의 경계도 깨뜨렸다. <미스터 트롯2>에서 볼 수 있듯이 ‘유소년부’와 ‘직장부’와 ‘대디부’ 그리고 ‘나이야 가라부’까지 있어서 모든 나이대가 총망라되었다. 그래서 10대의 어린이 가수들이 어른들의 경험이나 영역에 속하는 가사들을 거침없이 부르는 세대 간의 융합이 일어난 것이다. 그래서 모든 세대가 모든 세대의 트로트 노래를 같이 보며 듣게 된 것이다.

한편, 트로트 열풍은 음악 장르 간의 경계도 깨고 융합하는 양상을 보였다. 성악가 김호중이 먼저 등장했고, 이어서 클래식을 전공하고 로열 오페라하우스에서 활동했던 서울대 수석 졸업자 성악가 길병민도 출연해서 시청자들을 놀라게 했다. 트로트 프로그램이 많아지면서 타장르의 누가 어디서 출연했는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인데, ‘타장르부’가 따로 있기도 했다. 판소리 가수 강태관, 락커 고재근, 뮤지컬 배우 에녹, 남성 4중창 그룹 ‘포르테 디 콰도로’의 성악가 손태진, 뮤지컬 가수 조혜영, 발라드 가수 송하예나 은가은 등도 장르 간 크로스오버로 대중에게 어필했다.

대면의 시대에서 트로트의 미래는 어떨까

 

 

트로트 열풍을 거치면서 트로트가 가져온 세대 간 혹은 장르 간 융합의 명암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시기가 오고 있다. 삶이 비대면에서 대면으로 전환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세대가 함께 어우러져 노래하고 함께 시청하며, 정말 꿈도 꾸지 못할 만큼 가족 간의 돈독한 시간을 가질 수 있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하늘이 주신 선물 같은 노래 장르였다. 한국처럼 바쁘게 그리고 세대별로 따로 노는 문화에서는 다시 주어지지 않을 시간이기도 하다. 그런데 세대 간의 융합이 모두 긍정적으로만 작용한 것은 아니다. 우리가 세대와 장르를 구분하는 것은 분명 이유가 있기 때문인데, 그것들의 탈경계가 대비없이 일어났을 때 맞닥뜨린 부분도 있었다.

우선, 트로트 경연 대회에 참가한 어린이 트로트 가수들이 부르는 어른들의 노래 가사에 작가로서 불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정동원이 부른 노래 제목만 보아도, 보릿고개, 네 박자, 사랑은 눈물의 씨앗, 백세인생, 청춘, 고장난 시계, 다함께 차차차, 젊은 그대, 희망가, 우수, 파트너, 여백, 누가 울어 등이다. 어린 가수가 노래를 부를 때마다 심사위원들은 보릿고개가 무슨 뜻인지 아느냐, 사랑이 왜 눈물의 씨앗인지 아느냐, 혹은 형수와의 불륜을 다룬 영화 <형수>의 주제곡으로 사용된 ‘우수’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는 가수를 앞에 두고 난감해서 언어 선택에 주의를 기울이는 모습이 연출되었다. 어린 트로트 가수들이 ‘웃음을 던지면서 술잔을 부딪히며 찬찬한’ 혹은 ‘얼굴은 브이라인, 몸매는 에스라인, 아주 그냥 죽여줘요’ 등 어른들의 문화와 언어에 무방비로 노출되었다.

필자가 어릴 때 가장 신선하게 들었던 노래가 박혜령이 불렀던 ‘검은 고양이 네로(1965)’였는데, 1995년 터보가 리메이크해서 어른들의 노래로 변모하는 과정에 그 곡이 이탈리아의 창작동화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980년대 앤서니 퀸과 찰 리가 불렀던 팝송 ‘Life itself will let you know’을 번안해서 배우 최불암과 어린 정여진이 아빠와 딸의 대화 형식으로 한 ‘아빠의 말씀(1981)’도 멜로디나 가사가 선연하게 남아 있다. 어린 시절 접하게 되는 언어는 바로 그 언어가 보여주는 세상이기도 하지만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일러주는 미래의 언어이기도 하다. 그런데 어린 트로트 가수들은 어른들이 주는 언어로 ‘빨간 립스틱이 묻은 차디찬 그라스’나 ‘사랑이란 한 잔 술이던가’ 하는 가사를 여과없이 따라 부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편, 타장르부에 참가했던 어른 트로트 가수들의 성적표도 썩 좋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심사위원들의 평가에서 잘 드러났다. 서로 다른 장르적 장점을 살리려는 시도가 도리어 산만했다거나, 트로트의 이해가 부족해서 그 노래의 정서에 가닿는데 부족했다거나, 과유불급이었다는 것이다. 노래할 무대를 얻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사람도 있고, 진정 새로운 예술 장르를 개척하기 위해 과감하게 시도한 사람도 있어 보인다. 그래서 여러 성과가 있었다. 하지만 트로트 쪽이나 타장르 쪽이나 음악의 영역을 확장했다고 결론짓기에는 아직 일러 보인다. 트로트가 타장르들을 블랙홀처럼 흡수하던 시기가 끝나고 서로 대등하게 만날 기회가 앞으로 있게 될 때, 그동안의 융합이 어떤 것이었는지 제대로 평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방송사나 연예 기획사들은 트로트 가수들의 세계 진출을 시도하고 있을 것이다. 아직 그렇다 할 열매는 없는 상황인데, 위축될 필요가 없다. 단지 악랄했던 전염병의 위기 속에서도 우리의 한(恨) 어린 정서를 즐길 수 있게 해준 음악이지만, 외국에 가닿으려면 중간 단계가 필요해 보이기도 한다. 한국에서도 한쪽에 밀려있던 트로트가 다시 살아나는 데는 <놀면 뭐하니>의 유재석이 세대 간의 음악-다리 역할을 했던 것처럼, 한국의 트로트가 국제적인 노래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도 외국인들의 정서와 감정을 설득할 중간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이태리 창작동화나 미국의 앤소니 퀸의 나레이션이 담긴 노래가 어린 시절 혹은 젊은 시절 감동적인 노래로 남아 있는 필자의 경험으로 보면, 진정한 세대 간의 탈경계는 같은 무대에서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노래로 서로 세대 간의 소통을 열어가는 과정이어야 할 것이다. 1980년대 초 들었던 ‘아빠의 말씀’을 2022년 KBS2 ‘불후의 명곡’에서 다시 최불암의 목소리로 듣게 되었을 때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어떤 언어를 선사해야 하는지를, 그리고 진정 세대 간의 탈경계와 융합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아이가 인생을 궁금해하며 묻는 질문에 앤소니 퀸 특유의 중후한 목소리가 일러주는 언어가 전 세계 국경을 넘어 감동을 준 이유도 알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작가로서 트로트 가사 중에 가장 눈여겨본 것을 들라면, 정동원이 작사 작곡하고 노래한 소박한 ‘짜장면집 통큰 아저씨’이다. 다른 노래에 비해 많은 관심을 받거나 회자되지 않은 듯하다.

내가 자주 가던 짜장면집에/통 큰 아저씨가 한 분 계셨지.(반복)/
그 아저씨는 내가 갈 때마다/서비스를 아낌없이 나눠주셨지/
써~비쓰~/ 군만두 군만두 군만두/
써~비쓰~/ 탕수육 탕수육 탕수육…. //

무엇보다 어린 나이와 정서에서만 나올 수 있는 자신만의 언어여서 설득력이 있다. 써~비쓰~라는 영어 단어의 새로운 의미와 운율을 즐기고, 반복되는 ‘군만두’나 ‘탕수육’이 어린 시절 미각의 기쁨을 표현하고, 아이들에게 더 ‘통 큰’ 모습을 보여준 짜장면집 아저씨의 모습이 저절로 연상되어 흐뭇하기까지 하다. 어른의 노래건 아이의 노래건, 세대 간의 경계를 넘어서야 국경도 넘을 수 있을 것이다.

글 김다은(추계예술대 문창과 교수) | 사진 뉴스1
 

 

김다은…
이화여자대학교 불어교육과와 불어불문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제8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첫 소설 「당신을 닮은 나라」가 1995년 국민일보 ‘제3회
1억 고료 국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장편소설 「손의 왕관」, 「소통 말통」, 「바르샤바의 열한 번째 의자」, 「금지된 정원」, 「모반의 연애편지」, 「훈민정음의 비밀」, 「이상한 연애편지」, 「러브버그」, 창작집 「쥐식인 블루스」, 「위험한 상상」, 문화 칼럼집 「발칙한 신조어와 문화현상」, 「너는 무엇을 하면 가장 행복하니?」, 서간집 「작가들의 연애편지」, 「작가들의 우정편지」을 출간했다. 「금
지된 정원」등 다수가 번역되어 해외에 소개되었다. 현재 추계예술대학교 문예창작
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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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옥 2023-05-27 10:19:52
트롯을 싫어하던 내가 코로나로 인해 보게되었던 미스트트롯
나이든 옛 트롯가수가 아닌 젊고 어린 가수들이 심금을 울리고 실력도 뛰어나 계속 보게 되고 그중 까만 눈동자 하동소년 정동원 보릿고개는 지금까지 정동원 기수를 응원하게 되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