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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가의 자녀교육법] 부모의 생활 철학, 고스란히 자녀에게로
[명가의 자녀교육법] 부모의 생활 철학, 고스란히 자녀에게로
  • 목남희
  • 승인 2023.11.05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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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식날 : 부모님과 여동생과 막내동생
필자 졸업식날 : 부모님과 여동생과 막내동생, 오빠.

 

“열 자식이 있더라도, 자식에 대한 어버이 한 사람의 마음은 어버이에 대한 열 자식의 마음을 훨씬 능가한다.” 장 파울(Jean Paul, 1763~1825, 독일)의 <꽃과 실 가시>에 나오는 이야기다. 누구나 부모는 될 수 있지만 좋은 부모가 되는 일은 결코 쉬운 과업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인생이 다르듯 자녀교육에도 하나의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필자의 아버지는 명가도 부자도 아닌, 정말 한마디로 가난하고 볼품없는 시골 농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전신이 굳어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할아버지를 10년 동안 병시중하면서도 짜증 한번 낸 적이 없다. 그러면서도 아버지는 면사무소에서 준 효자 상패를 꼭꼭 숨겼다. 혹시나 남들이 ‘효자상 받은 이가 이 모양이냐!’ 하고 비웃을까 봐 수상을 사양하다가 마지못해 받는 바람에 절대 자랑으로 여기지 않았다.

우리 자식들도 모르고 있다가 경남 진주 향교 전교 취임 때 알게 되었다. 고향에 가면 동네 어른들께서 우리 남매를 만나면 ‘너희들 아버지께 잘해야 한다. 참 너희 아버지 고생 많이 했다. 너희들 아니?’ 하면서 칭찬과 존경을 아끼지 않았다. 우리는 “예”라고 대답했지만, 부모님의 효도가 그렇게 대단한 줄 모르고 그냥 일상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할아버지, 할머니를 지극히 모시는 모습으로 자식들에게 ‘효(孝)’가 인간의 도리이자 기본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셨기 때문이다.

눈물의 약속 

필자가 대학교 2학년 때 겪은 일이다. 그때는 등록금을 학교 수납처에 현금으로 직접 내던 시대였다. 한번은 아버지가 소를 팔아 마련해준 등록금을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이야기하던 중 소매치기당한 적이 있다. 경찰에 신고하고 주변을 조사해 보았으나 찾을 길이 없었다. 아버지의 정성이 담긴 등록금을 잃어버렸으니 하늘이 무너지는 듯 가슴이 먹먹했다. 그 이야기를 차마 부모님께 할 수도 없었다. 학교에 사정을 말했더니 다행히 납부 기한을 한두 달 연기해 줬다. 그리고 필자는 그 돈을 마련하기 위해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했다. 집집이 다니면서 호구조사를 하는 동사무소 일이었다. 

거의 한 달 가까이 되어서 등록금 일부를 마련했는데, 이번에는 더 난감한 일이 생겼다. 부모님이 준 옷값을 양장점에서 디자인을 살펴보느라 정신이 팔린 사이 또 소매치기당한 것이다. 아무리 하느님을 원망하고 자신의 어리석음을 후회해도 막막할 뿐이었다. 

후회와 분노 속에서 몸부림치다가 눈물도 말라버린 어느 날, 결국 아버지에게 편지를 썼다. 죄송스러운 마음을 전함과 동시에 누구보다 속상해 할 어머니에게는 비밀로 해달라는 부탁의 편지였다. 편지는 아버지가 직접 받을 수 있도록 회사로 보냈다. 이에 아버지는 더 이상 걱정하지 말라는 위로와 함께 등록금과 옷값을 다시 보내줬다. 그 돈을 받고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사랑의 고통을 안고 얼마나 감동의 눈물을 흘렸는지 눈두덩이가 퉁퉁 부었었다. 이 일을 절대 잊지 말고 아버지를 위해서라도 열심히 공부해서 자랑스러운 딸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후에도 아버지는 딸에게 등록금을 왜 잃어버렸는지 묻지 않고, 꾸중도 하지 않은 채 말없이 지나갔다. 

효도교육이 곧 미래 교육

부모님은 우리에게 단 한 번도 효도를 강요한 적이 없다. 오로지 ‘충효(忠孝)’ 정신을 인간의 기본 소양으로 여기며 여식은 남편 뒷바라지, 아들은 가장으로 가족을 책임지며 나라에 충성하는 삶을 살기를 바라셨다. 아버지가 자식에게 기대하는 인생은 호의호식도 아니고 빛나는 명예도 아니었다. 이러한 부모님의 생활 철학에서 자신보다는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일을 더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하게 되었고, 부모가 원하는 나의 인생을 깊이 성찰하게 되었다. 이러한 가풍은 자연스럽게 아래로 이어졌고, 위기마다 부모님이 우리에게 보여준 성실한 삶이 가치의 선택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효도는 지식이나 강요로 실천되는 교훈이 아니고, 태어날 때부터 보고 느끼는 인생철학의 가장 기본적인 배려로 시작되어야 한다. 결국 효도 교육보다 더 나은 미래 교육이 없다. 

글·사진 목남희(전 단국대 교수)
 

 

목남희는…
<평범한 가정의 특별한 자녀교육>의 저자로 지난 10년간 단국대학교 상경대 경영학부 교수로 몸담았다. 의사, 판사, 교수, 변호사, 서울대, 하버드대 외 콜롬비아 대학 졸업생 5명을 배출하고 일곱 자녀 중 5명이 박사인 부모님의 교육 비결로 부유한 환경, 부모님의 좋은 학벌, 재능이 아닌 부모님이 몸소 보여준 ‘효의 실천’을 꼽는다. 성적보다 인간성, 출세보다 행복을 강조한 그녀 부모의 이야기는 현대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 사이에서 널리 귀감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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