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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가의 자녀 교육] 점점 잊혀 가는 한국의 효(孝)
[명가의 자녀 교육] 점점 잊혀 가는 한국의 효(孝)
  • 목남희
  • 승인 2023.12.03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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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졸업식에 아들과 아들친구들
고등학교 졸업식에서 아들과 아들친구들.

 

“만약 지구가 멸망해 다른 곳으로 이주해야 한다면 인류가 꼭 가지고 가야 할 문화는 바로 ‘한국의 효’다.” 영국의 역사가 토인비(Arnold J.Toynbee, 1889~1975)가 생을 마감하기 2년 전에 남긴 말이다. 노인이 마치 더러운 세탁물처럼 취급받는 서양 문화와 달리 나이 든 어른을 공경할 뿐 아니라 부모에 대한 효를 제일의 덕목으로 삼는 한국의 전통과 관습을 높이 평가한 것이다.

1970년대 중반, 필자가 미국에 처음 도착했을 땐 새로운 세상에 대한 두려움보다 무사히 도착했다는 안도감이 더 컸다. 필자가 첫발을 디딘 미국 땅은 피츠버그시로, 펜실베이니아주에서 두 번째로 큰 동부의 철강 도시였다. 세계에서 가장 큰 철강회사 US STEEL과 가전제품 제조 회사 Westinghouse의 본사가 있는, 그야말로 보수적 색채가 매우 강한 곳이다.

영어가 능숙하지 않았던 시절, 앞방 미국 여자와 대화가 되는 게 마냥 신기했던 필자는 엄마에게 편지를 썼다. “옆 방 여자가 내 말을 거의 알아듣고 나와 이야기하는 것이 재미있다고 차를 같이 마시자고 초대했어요. 아마 한국에서 가져간 보석함 선물 덕분인가 봐요.” 물론 어머니 걱정을 덜어 드리려고 한 말이었지만, 피츠버그에는 인종 차별이 적고 특히 동양인에 대해 얕보기보다는 호기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처음 만나는 미국인들은 늘 “Are you Japanese?”라고 물었고, 필자는 매번 “I am Korean”이라고 대답해야 했다. 당시 일본은 미국에 이어 세계 제2위의 경제 규모를 가진 국가로 아시아 최초 경제개발기구(OECD), 국제 통화기금(IMF) 가입 국가였다. 사람들이 일본에서 왔느냐고 물을 때마다 일본의 경제성장을 말없이 부러워하며 언젠가는 한국을 뽐내며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소원했다. 옛날 서울 대학 친구들에게 진주에서 왔다고 대답할 때와 비슷한 기분이었다. 마음속에 은근히 심통이 나기도 했다.

효란 구식의 낡은 개념이 아니다

필자는 턱없이 큰 대학 캠퍼스를 걸을 때마다 부푼 꿈을 꾸느라 타국에서의 외로움을 덜 느꼈다. 매시간 녹음한 강의 내용을 다시 정리하느라 정신없이 바빴다. 공부에 푹 빠져 있던 나날이었다. 캠퍼스 푸른 잔디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이것이 정말 현실인가 싶어 볼을 꼬집을 정도로 새로운 세계에 대한 환상과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1990년대 한국의 눈부신 발전에 힘입어 남편이 일하던 정유회사가 한국의 대기업과 합작회사를 만들기 위해 우리 부부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두 아들은 매사추세츠주에 기숙사가 달린 학교로 진학했다. 오하이오주의 클리블랜드 근교 공립 중학교에서 동부의 사립 기숙사 학교로 옮긴 아이들이 느낀 문화적 쇼크는 아마도 내가 진주에서 서울의 대학에 왔을 때 느낀 쇼크보다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인연이 있으면 넘어지면서도 만나듯 우리 가족은 그렇게 닥친 일을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네 식구 모두 그동안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은 생소한 삶에 적응해야 했다. 특히 필자와 남편은 각자의 직장생활로 가족을 챙길 여유가 없었다.

우리 부부가 이룬 가정은 어릴 적 시끌벅적했던 필자의 집안과는 분명 거리가 먼 풍경이었다. 시골에서 끊이지 않고 오는 손님과 아침 밥상머리에서 우리는 어른 공경과 더불어 사는 삶의 지혜, 인내, 배려 등 기초적인 사회성을 배웠다.

세계화와 디지털 시대가 된 지금은? 사회는 더 많은 실적을 요구하고 개인은 나날이 달라지는 글로벌 기술 전쟁에서 뉴테크놀로지를 배우고 익히느라 가족을 이루는 일조차 뒤로 미루며 세계에서 가장 출산율이 낮은 나라로 되어버렸다.

뿐만 아니라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던 전쟁 폐허 국, 세계 109등 최 극빈 국가에서 근래의 영향력 있는 나라 세계 6위가 되었다. 이러한 한강의 기적을 이루며 더 나은 미래를 후세에게 물려주기 위해 우리 민족은 조국을 가슴에 안고, 보릿고개를 얼마나 넘어야만 했던가? 그 삶 속에도 미래에 대한 꿈이 있었기에 고난과 고통도 가족의 힘으로 버티며 포기하지 않고 몸부림치며 일하지 않았던가! 디지털의 급진적 발전으로 젊은 세대들은 이제 왜 어른을 존중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는 모양새가 되었다.

필자의 인생도 아놀드 토인비가 저서 <도전과 응전>에서 밝혔듯 ‘인간은 역경 속에서 발전하는 존재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제 우리는 후세에게 무엇을 물려줄 것인가?

효(孝)란 거창하거나 낡은 개념이 아니라 가족을 진정으로 사랑하며 아끼는 마음과 실천하는 실제 행동이다.

글·사진 목남희(전 단국대 교수)
 

 

목남희는…
<평범한 가정의 특별한 자녀 교육>의 저자로 지난 10년간 단국대학교 상경대 경영학부 교수로 몸담았다. 의사, 판사, 교수, 변호사, 서울대, 하버드대 외 콜롬비아 대학 졸업생 5명을 배출하고 일곱 자녀 중 5명이 박사인 부모님의 교육 비결로 부유한 환경, 부모님의 좋은 학벌, 재능이 아닌 부모님이 몸소 보여준 ‘효의 실천’을 꼽는다. 성적보다 인간성, 출세보다 행복을 강조한 그녀 부모의 이야기는 현대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 사이에서 널리 귀감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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