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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인터넷산업 1세대 문효은 ATC 파트너스 대표의 이유 있는 변신
한국 인터넷산업 1세대 문효은 ATC 파트너스 대표의 이유 있는 변신
  • 신민섭 기자
  • 승인 2023.05.31 09: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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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세대 키워드는 Art, Tech, Climate!”
한국 인터넷산업 1세대인 문효은 ATC 파트너스 대표.
한국 인터넷산업 1세대인 문효은 ATC 파트너스 대표.

 

카카오(전 다음커뮤니케이션) 부사장을 지낸 문효은 대표의 현 직함은 ATC 파트너스 대표다. 이와 함께 교보생명과 지주사 GS의 사외이사를 맡고 있다. 마침 교보생명 사외이사회가 있던 날 그녀와 만났다. 
교보생명 광화문 재무설계센터에서 만난 그녀는 “거수기 역할을 하던 예전과 달리 사외이사의 역할이 점점 커지고 있다”며 이사회 분위기를 전했다. 그녀의 설명처럼 많은 기업들이 투명성과 다양성 확보, 그리고 ESG 경영의 일환으로 사외이사의 역할을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다. 
교보생명도 지난 3월 이사회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 여성 사외이사 2명을 신규 선임했다. 문효은 대표와 이영주 서울대 인권센터 인권상담소장이 그들이다. 이로써 교보생명은 KB생명과 함께 생보사 중 최다 여성 사외이사를 보유하게 됐다. 
“다음커뮤니케이션을 나온 후 여성창업가 모임, 여성임원 모임 등 다양한 여성모임을 만들었어요. 자본시장법이 개정된 후에는 여성 사외이사들도 점점 늘고 있는 추세고요. 기업들도 이제는 여성의 사외이사 참여, ESG 경영 등을 중요하게 인식하는 분위기예요.”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번역이 IT의 신세계로 인도
시대가 바뀌면서 여성의 사회 참여는 큰 폭으로 넓어졌다. 문 대표가 사회생활을 시작하던 때와는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다. 이화여대 불문학과 85학번인 그녀는 1990년 대학을 졸업했다. 지금과 달리 그때는 여성들의 취업 기회가 많지 않았다. 졸업 후 취업을 고심하던 그녀가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일이 번역, 그것도 1980년대와 1990년대 미국 온라인 시장을 석권했던 컴퓨서브(Compuserve)의 매뉴얼을 한국어로 옮기는 작업이었다. 
번역을 위해 당시에는 귀하던 컴퓨터를 사고, 매뉴얼대로 모뎀을 전화기에 연결했다. 국내 통신을 통해 해외 통신과 연결한 것도 매뉴얼대로였다. 그리자 신세계가 펼쳐졌다. 컴퓨터를 통해 꽃도 사고 파는 세상이 열린 것이다. 신선했다. 그때 마음을 정했다. 이 길로 가야겠다고. 그렇게 인터넷과 인연을 맺었다. 
그 과정에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있다. 통신이 워낙 느릴 때라 전화료가 엄청나게 나온 것. 그 덕에 ‘전화기를 잘못 내려놓은 것 같다’, ‘무역 하냐?’는 오해를 샀다. 아르바이트로 받은 돈을 전부 통신비로 낼 정도였지만 그래도 재밌었다. 한국 인터넷 1세대의 시작이었다.
인터넷이라는 신세계를 접한 그녀에게 취직은 이미 다른 이들의 세상이었다. 이후 번역하는 사람들이 모여 여러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1990년대 중반 불기 시작한 닷컴 열풍은 그녀를 창업의 길로 들어서게 했다.   
그때 창업한 회사가 아이비즈넷이었다. 삼성SDS 출신의 동업자들과 함께 ‘인터넷 비즈니스의 모든 것’을 모토로 회사를 창업했다. 아이비즈넷은 미국 닷컴 기업들의 새로운 서비스를 주로 소개했다. 다행히 닷컴 붐을 타고 아이비즈넷은 승승장구했고, 성공적으로 코스닥기업에 매각했다. 

엑시트로 적지 않은 돈을 벌었겠습니다. 
“그때는 엑시트라는 개념이 희박할 때라, ‘먹튀’라는 오해도 받았어요. 하지만 처음부터 엑시트를 전제로 창업한 거라 망설임은 없었어요. 성공적으로 매각한 덕에 돈은 좀 벌었어요. 당시 직원이 20여명이었는데, 인턴사원한테도 주식을 줬어요. 회사가 코스닥시장에 곧장 상장되면서 하루 사이에 자기 월급이 왔다갔다 걸 경험했으니까요. 흔하지 않은 경험이었을 거예요.”

엑시트 이후에 투자자로 나서는 분들이 많던데요. 대표님은 어땠습니까?    
“조금은요. 직원 중에 온라인 교육서비스를 시작한 친구가 있었어요. 그때가 닷컴 열풍이 꺼지기 시작할 때였는데, 거기 투자했다 큰 손해를 봤어요. 그때 알았어요. ‘창업은 자아를 실현하기도 하지만, 자학도 실현한다’는 사실을요.(웃음)

낙심이 컸겠습니다. 
“그럴 여유도 없이 바빴어요. 이화여대 이화리더십개발원 원장님께서 비즈니스 자문을 구하셨거든요. IT 컨설팅으로 바쁠 때였는데, 여성 리더십에 관한 내용을 1페이지로 정리해서 보여드렸죠. 총장님께서 그걸 보시곤 그대로 해달라고 하셨어요. 자연스럽게 제가 있던 회사에서  프로젝트를 맡았죠. 그 직후에 다음커뮤니케이션 부사장 제의를 받았고요. 2004년부터 다음커뮤니케이션 부사장으로, 또 다음세대재단 대표도 겸직하게 됐습니다.”

문효은 대표는 다음 세대를 이끌 키워드로 '아트, 테크, 기후'를 꼽다.
문효은 대표는 다음 세대를 이끌 키워드로 '아트, 테크, 기후'를 꼽다.

 

다음커뮤니케이션에서는 원없이 일하셨겠습니다. 
“네(웃음). 다음커뮤니케이션은 2011년, 다음세대재단은 2013년까지 대표를 했어요. 다음에선 안 해 본 일이 없어요. 마케팅, 서비스, 투자…, 거기다 자회사 사외이사까지요. 매주 이틀은 본사가 있는 제주도로 가서 일을 했고요. 경영 전반에 관한 모든 일을 경험했어요. 바쁘게 지내다 어느 날 돌아보니 10년이 지났더라고요.(웃음)” 

다음이 카카오와 합병할 즈음이었네요. 
“모바일이 부상한 게 2011년이었어요. 그때는 다음과 네이버의 인터넷 경쟁이 치열했는데, 저처럼 IT를 일찍 경험한 사람들은 디지털에 캐즘(chasm,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깊은 틈에 빠지는 것)이 어떻다는 걸 잘 알거든요. PC로 많은 것이 옮겨간 것처럼, 이제는 모바일로 옮겨가겠다는 걸 직감한 거죠. 무조건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카카오가 모바일을 선점한 거군요. 
“PC통신을 경험한 분들은 모바일이 기회라는 걸 알았어요. 시장이 성장하려면 리더, 준비된 사람, 그리고 자본이 갖춰져야 하는데, 모바일 시장은 3가지 조건을 모두 갖췄거든요. 카카오를 보면서 모바일 시장은 빼앗겼다고 판단했어요.”

PC 기반의 인터넷을 경험한 분들이라 모바일의 위력도 일찍 깨달은 거네요. 
“IT 분야에서 PC는 85·86학번이 많습니다. 네이버, 다음, 넷마블 등 다 그래요. 사회경험도 있고 새로움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열려 있는 분들이죠. 모바일은 85·86년생이 많아요. 어렸을 때부터 이런 기기들에 친숙한 이들이죠. 이들의 특징은 열정적이고 사회적 경험도 조금 있으면서 무서움이 없어요. 거기에 자본이 들어오니까 모바일 혁명이 가능해진 거죠.” 

지금의 모바일 시장은 얼마나 갈까요?   
“앞으로 10년은 모바일 시대가 될 거라고 봅니다. 하지만 엔지니어를 데리고 하는 플랫폼 비즈니스에는 크게 관심이 없어요. 플랫폼 비즈니스는 자본, 인재 등이 필요하거든요. 대신 플랫폼이 아니면서 플랫폼과 비슷한 게 있어요. 콘텐츠 사업이 그렇습니다. 콘텐츠 중에서도 가장 잘 맞는 게 ‘아트(Art)’입니다.” 

아트와는 거리가 있는, 다른 길을 걸어오셨는데요. 
“알게 모르게 예술과 관련된 일을 많이 했습니다. 다음커뮤니케이션에서 예술의 전당 등에 후원도 했고, 후원하면서 사내복지 차원에서 갤러리도 운영했고요. 제주도에 있는 젊은 직원들을 위해 여러 가지 복지를 혜택을 줬는데 그 중 아트 페어 참관도 있었고요.”

한예종 예술경영학과에서 석사를 하신 건 거기에 깊이를 더하기 위해서였나요?
“이화여대 교수가 됐을 때 경영학 박사 학위를 따라고 조언하는 선배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학교 안에서는 경영학 박사가 의미가 있겠지만, 밖에서는 큰 의미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경영학을 하려면 과거를 돌아보고 경영전략들을 고민해야 하는데, 한 번도 과거를 살아본 적이 없잖아요. 저한테는 익숙하지 않은 일이었어요.”

조금은 전략적(?)으로 예술을 선택한 거군요.  
“그런 셈이죠.(웃음) 아트라는 새로운 분야에 흥미가 생겼고, 그래서 한예종 예술경영학과를 선택하게 된 거죠. 갤러리는 아직 산업화 전이라 도전해볼만 하다고 판단했는데, 실제 한예종에서 아트 비즈니스를 공부하면서 아트 토큰, NFT 등 산업화된 아트를 경험하게 됐어요.”

인터넷에는 아트벤처스 대표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아트벤처스는 2015년 창업했는데, 초기 이름은 아트토이컬쳐였습니다. 창업 이후 코엑스에서 전시를 주로 했어요. 캐릭터형 전시였는데 잘 됐어요. 전시 때마다 10만명 이상 찾았으니까요. NFT로 전시 영역을 확대하고, 젊은 작가들도 많이 참여했어요. 지금은 코로나19로 전시를 잠정 중단한 상태입니다. 

전시와 관련된 많은 분들이 코로나19를 계기로 ‘오프라인 전시는 자연재해를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 듯합니다. 
“맞아요. 전시가 어려워지면서 돌파구를 찾게 됐어요. 그중 하나가 기후였어요. 대기업 이사회에서도 기후에 대한 관심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었고요. 아트벤처스에서 ATC 파트너스로 이름을 바꾼 계기이기도 하고요. Art, Tech, Climate의 이니셜을 따서 ATC 파트너스가 된 거죠.”  

기후에 대한 관심이 꽤 깊은 것 같습니다. 
“기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건 사실이에요. ‘기후 테크’에 관심을 갖는 사람도 많고요. 저는 ‘우수한 인재가 있으면 시장을 개척하는 힘이 생긴다’고 믿어요. 기후 분야도 스마트한 인재와 자본이 결집되면 문제해결이 가능할 거라는 믿음이 있어요.”

기본적으로 낙천적인 분 같습니다. 
“그런 편이에요. 저는 아트가 기후라는 문제에 대해 보다 즐거운 메시지를 던지기를 바랍니다. 기후로 인해 디스토피아적인 경향도 생기겠지만, 다른 한편에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을 테니까요. 그걸 만들고 싶어요. 아티스트들을 지원하면서 유토피아적인 새로운 메시지를 던지고 싶습니다. 우선 환경은 갖춰졌다고 봐요. 콘텐츠를 가진 크리에이터들이 굉장히 많거든요. 그걸 산업화하고 대중화하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신민섭 기자 사진 엄효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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