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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미래-‘나의 문화유산답사기’ 300만 부 돌파 유홍준 교수의 세상을 보는 법
인문학의 미래-‘나의 문화유산답사기’ 300만 부 돌파 유홍준 교수의 세상을 보는 법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12.05.14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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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입니다. 그리고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을 것입니다”

답사객이 밀어닥쳐도 눈 하나 꿈쩍 않고 낮잠을 즐기는 무위사의 누렁이.

비가 오면 근정전 앞마당의 박석 이음새를 따라 빗물이 제 길을 찾아가는데,
그 모습이 무척 아름답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는 1993년에 <남도답사 일번지로> 시작해서 작년 5월에 출간된 <인생도처유상수>에 이르기까지 20여 년에 이르는 세월 동안 총 6권이 출간되었다. 그리고 올해에는 7권 ‘제주도’ 편이 출간될 예정이다. 그렇게 꾸준히 새로운 답사기가 출간되면서, 독자들의 가슴에도 차곡차곡 추억이 쌓여갔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국민들의 놀이문화와 여행문화를 바꾼 것이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 수록된 문구 중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라는 문구가 있다. 원문은 정조 때 문장가인 유한준에게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출처가 어찌 됐든 많은 이들이 이 아름다운 문장을 가슴에 품고 답사여행에 올랐다.

세상을 보는 깊은 안목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300만 부를 돌파할 수 있었던 것은 유 교수만의 깊고 독특한 안목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유 교수는 문화유산만이 아니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그리고 정형화된 틀에 갇혀 보이지 않던 것들을 넉살 좋게 펼쳐 보였다. 절집을 찾아가서 절의 역사와 노승의 철학만을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게으르고 늙은 개의 모습을 잡아냈다. 경복궁에 가서는 근정전의 웅장함과 품격을 말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 않던 근정전의 박석에 주목한다. 청도 운문사에서 찾아낸 비구니들의 양치 컵과 고무신 이야기는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거룩한 문화유산을 이야기하면서 개 이야기를 함께하는 것은 능청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실제로 절집에 갔을 때 저를 맞아준 것은 개였지, 스님이나 다른 사람이 아니었어요. 있는 그대로의 채취와 역사를 전했을 뿐이지요. 그런데 독자분들에게는 그런 점이 신선하게 느껴졌던 거 같습니다. ‘저렇게 이야기해도 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신 거지요.”

사람이 최고의 문화유산
유홍준 교수는 각기 다른 등장인물과 함께 문화유산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를 소설처럼 전개한다. 그러한 전개방식을 통해 독자는 자신이 직접 참여하는 듯한 느낌으로 문화유산과 접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역사적 지식을 체득한다. 그리고 인생이나 여행은 장소보다 누구와 함께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그래서 유홍준 교수는 답사기를 통해 만난 이들과의 인연을 소중히 기록한다.
“다양한 부류의 많은 분과 답사를 떠났습니다. 그중에서도 시각장애인협회 분들과 갔던 답사가 유독 기억에 남아요. 앞이 보이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지팡이를 짚고 산 정상의 전망대까지 올라가시더군요. 그러시고는 ‘저기에 산이 있고, 저기에 강이 흐른단 말이지요?’ 하면서 열심히 보시는 거예요. 촉각, 청각 그리고 후각을 통해서 사물을 파악해내시더군요. 시각장애인도 답사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유 교수는 문화유산을 지키고 있는 이들에 대해서도 깊은 고마움을 표한다. 그중에 종갓집 맏며느리를 빼놓을 수 없다. 종갓집 맏며느리들은 자부심으로, 사명감으로 또는 운명적으로 종가의 전통을 지키고 있다.
“우리나라 문화유산을 지켜주신 분들이 종갓집 맏며느리들입니다. 고택에서 사는 불편을 감수하고 매일 같이 쓸고 닦아가며 문화유산을 지켜왔죠. 문화재청장으로 재직할 당시 가장 잘한 일 중의 하나가 이분들을 모시고 함께 식사를 한 일입니다.”

인문학의 미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인문서 대중화의 문을 열어젖히며, 인문서도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동시에 예술과 문화를 대중적으로 설명해주는 책들을 출판계의 새로운 흐름으로 만들었다. 또한, 전 국토가 박물관이라는 생각을 대중에게 심어줌으로써 문화유산을 찾아 떠나는 전국적인 답사 붐을 일으켰다. 그럼에도 유 교수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앞으로 가야 할 길은 아직 멀다고 말한다. 앞으로도 써야 할 답사기가 수두룩하다는 것이다. 7권은 제주도와 해녀들의 이야기, 8권은 충북과 경기지역의 문화유산, 9권은 유네스코 세계유산과 유서 깊은 고을 이야기, 10권에서는 중국과 일본 속의 한국문화를 다룰 예정이라고 한다.
“열심히 쓴다고 썼는데 아직 반밖에 못 썼어요. 특히 조선왕조 왕릉 42곳 중 40곳이 서울과 경기지역에 있는데 아직 소개를 하나도 못했지요. 소개해야 할 북한의 문화유산도 아직 많고, 독도에 관한 이야기도 써야 합니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멀어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처음 출간되고 20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우리나라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세계무역기구에 정식으로 가입하고, 대기업들은 세계시장을 주도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한류는 어느덧 세계로 뻗어 가고, 케이팝은 유럽과 미국까지 진출했다. 우리나라는 문화를 수입하는 나라에서 문화를 생산하고 수출하는 나라로 바뀌었다.
“한류와 케이팝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이 놀랍습니다. 이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만으로는 우리 문화에 대한 사랑과 관심을 모두 이야기할 수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디지털세대의 감각으로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명저를 써내는 학자가 나오기를 고대합니다. 저는 초심을 잃지 않고 저만의 방식대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를 완결시키겠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세상을 살아갈 젊은이들은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줄 때가 되었음을 자각해주기 바랍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밟고 올라설 책이 나오기를 진심으로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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