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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조명] 재벌가 여인들② LG그룹 김영식 여사 편
[재계조명] 재벌가 여인들② LG그룹 김영식 여사 편
  • 홍성추
  • 승인 2023.07.24 15:47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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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家 여인들의 반란 “조용한 내조로 유명한 김영식 여사는 왜 소송을 주도했을까”
구자경 명예회장 미수연

 

지난 2월 28일 LG그룹 구본무 회장의 부인인 김영식씨와 구연경, 연수 두 자매 등 세 모녀가 구 전 회장의 유산을 다시 나누자는 취지의 소송 제기 소식이 알려지자 많은 재계 인사나 언론에선 ‘그럴 리가 있나’라는 반응이 나왔다. 그만큼 LG그룹은 그동안 가족간 화목과 우애로 다른 재벌 집안으로부터 부러움을 사왔기 때문이다.

한편에선 ‘드디어 터졌다’는 반응도 있었다. 구본무 회장이 타계한 지 4년 만에 양자인 구광모 회장을 상대로 ‘상속회복청구권소송’을 제기한 김영식 여사는 누구이며 그 배경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LG그룹은 1947년 구인회 창업 회장이 화장품을 생산 판매하는 ‘락희화학 공업사’로 출발해 전자 화학 통신을 아우르는 대기업 집단이다. 지난 2004년 동업자인 허만정씨 집안에 정유 건설 유통 등 알토란 같은 회사를 떼어주고도 자산총액 재계 4위, 시가 총액은 약 250조원으로 재계 서열 2위에 올라 있다.

거대 기업군에 진입해 현 회장인 구광모 4대 회장이 등극할 때까지 가족간 잡음이나 동업자간 분쟁 등 아무런 얘기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최근 전 회장의 부인이며 현 회장의 호적상 모친이 두 딸과 함께 소송을 제기해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이다. 사실상 이번 소송을 주도하고 있는 이가 김영식 여사로 알려져 더 주목받고 있다. 김 여사는 LG그룹 경영이나 외부 활동을 하지 않아 외부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재벌가 안방마님이었다. 그러나 국내 여성 부호 순위를 집계하면 5위권에 들 만큼 막대한 재력을 갖추고 있다.

김 여사는 LG그룹의 지주 회사 격인 (주)LG의 지분 4.2%를 소유하고 있다. 이는 최근 주가 기준으로 볼 때 약 6천억 원에 달하는 금액이다. 개인 보유 현황으로 봐도 회장인 구광모 회장이 15.95%, 4.8%를 소유한 구본무 회장의 막내동생인 구본식 LT그룹 회장에 이어 3번째 많은 액수로 알려졌다.

다른 계열사의 주식과 달리 (주)LG의 지분은 경영재산, 즉 경영권이나 다름없다고 할 수 있다. 지주회사의 지분은 LG가(家)의 승계원칙과 LG의 기업성장 역사를 살펴보면 그 중요성과 상징성은 무엇보다 크다고 하겠다.

김 여사의 지주회사 지분 보유는 LG가의 다른 여인들과는 사뭇 다르고 그 의미 또한 남다르다고 주변에선 평가하고 있다. 구자경 명예 회장과 구본무 회장의 특별 배려로 주식을 취득했을 것으로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영식 여사는…
 

2013 오송화장품뷰티세계박람회장에 방문한 김영식 여사

 

이렇게 중요한 지주회사 주식을 보유한 김영식 여사는 1952년 생으로 박정희 정부 시절 체신부 장관과 보사부 장관을 지낸 김태동 씨의 딸로 관료집안 출신이다. 김 여사는 이화여고를 졸업하고 이화여대 영어영문학과 재학 중인 1972년 20살의 나이로 구본무 회장과 결혼했다.

당시 구본무 회장은 미국 오하이오 주에 있는 클리브랜드 주립대학교에 유학중이어서 결혼과 함께 미국 유학을 떠나게 된다. 김 여사는 미국에서 미술 공부를 하게 되는데 특히 한국 민화에 심취해 이 분야에 상당한 실력을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계속 민화작가로 조용히 활동하다 2013년엔 막내딸인 연수 씨와 함께 서울 경인미술관에서 전시회를 열 정도였다. 올 초에는 롯데칠성음료가 와인 라벨에 김 여사의 민화작품을 적용하겠다고 밝힐 만큼 수준급의 민화 실력을 갖췄다고 주변에선 평가하고 있다.

김 여사는 남편인 구본무 회장과 비슷한 성품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녀 역시 구 회장처럼 소탈하고 온화한 성격으로 의전이나 격식을 멀리해 수행 인원 없이 홀로 외출을 나가는 일도 많았다고 한다.

김 여사는 1남2녀의 자녀를 뒀지만 외아들이 불의의 사고로 숨지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1996년 태어난 막내딸 연수 씨는 외아들이 숨진 뒤 얻은 늦둥이 딸이다. 장녀인 연경 씨는 연세대 사회복지학과를 나와 현재 LG복지재단 대표를 맡고 있다. 그녀의 남편인 윤관 씨는 미국 스탠포드대학을 나와 현재 벤처 캐피탈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왼쪽)LG가 운영하고 있는 미국 뉴욕 타임스스퀘어 전광판에 '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를 위한 홍보영상이 송출되고 있는 모습. (오른쪽)구연경 씨 결혼식 사진(왼쪽 윤관 대표)<br>
(왼쪽)LG가 운영하고 있는 미국 뉴욕 타임스스퀘어 전광판에 '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를 위한 홍보영상이 송출되고 있는 모습. (오른쪽)구연경 씨 결혼식 사진(왼쪽 윤관 대표)


외아들을 잃은 뒤 구 회장 부부는 구 회장의 동생인 구본능 현 희성그룹 회장의 아들 ‘구광모’를 양자로 들이게 된다. 이 구광모 씨가 LG가의 가족회의를 통해 그룹 후계자로 낙점된 것이다. 김 여사는 이 과정을 지켜봤고 사실상 승낙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시아버지와 남편이 생존해 있는 상태에서 김 여사의 선택은 어쩌면 숙명이었는지 모른다.

그만큼 김 여사는 LG가의 며느리가 된 뒤 조용한 내조를 해 왔다는 방증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50여년간 구씨 집안의 맏며느리가 된 김 여사는 민화작가로 활동하는 외에는 뚜렷한 대외 행보는 없었다. 외부에서도 재벌가 안방마님으로서 조용한 내조를 하는 것으로 비쳐졌을 뿐이다.

LG그룹 2대 회장인 구자경 명예회장을 시아버지로 모셨고, 3대인 구본무 회장의 모든 승계 과정을 지켜봤고, 2018년엔 양자인 구광모 회장이 4대 회장으로 취임하는 과정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장본인이다. 때문에 김 여사는 LG가문의 승계 역사의 산증인이나 다름없다고 보는 것이다.
 

LG그룹의 경영승계 원칙
 

구본무 선대회장(왼쪽) 구광모 회장
구본무 선대회장(왼쪽) 구광모 회장

LG그룹은 다른 재벌 그룹과는 출발부터 다른 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구인회 창업 회장이 동향인 허만정 씨와 동업으로 출발한 것이 다르다고 볼 수 있다. 2004년 허씨 집안과 결별할 때까지 57년간 잡음 없이 동업 관계를 유지했었다.

허씨 집안이 GS그룹으로 분할하기 전 재계에선 어떻게 동업을 청산할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어느 한쪽에서 욕심을 내면 청산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씨와 허씨 집안은 철저한 가족회의를 통해 기업을 분할해 재계의 우려를 말끔히 해소하고 ‘아름다운 이별’을 이루게 된다.

창업 회장의 동생들 집안도 LG그룹 경영에 참여하고 있어 쉽지 않은 결단이었다. 그러나 구씨 집안은 가족간 회의를 통해 잡음을 없앴고, LS와 LIG, LX 그룹 등 구씨 형제들 집안과의 결별도 철저한 가족회의를 통해 분가, 다른 재벌집안으로부터 ‘역시 구씨 집안은 다르다’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는 경영권과 일반 재산을 엄격히 구분해 경영권은 장자승계의 원칙에 따라 행하며 그 외 가족들에겐 일반 재산을 분배해 불만을 없애는 나름 ‘경영승계 원칙’을 갖고 있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구광모 4대 회장을 양자로 들여 그룹 경영권을 잇게 한 것도 그러한 경영권 세습의 원칙에 따라 행했다고 할 수 있다. 형제 자매가 많고 오랜 기간 동업을 해온 터라 이러한 확실한 경영권 승계원칙이 필요했을 것으로 재계에선 해석하고 있다.

창업 동지들인 기라성 같은 숙부들을 제치고 구자경 회장이 2대 회장으로 취임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경영승계 원칙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재벌가 맏며느리로 그룹 총수 부인으로 살아온 
김영식 여사가 상속회복 소송 낸 사정은…

 

김영식 여사가 이번에 구광모 회장을 상대로 ‘상속회복 소송’을 청구한 것을 놓고 주변에서 의외라고 하는 것도 이러한 저간의 사정이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김 여사가 주장하는 것은 남편인 구본무 회장이 갖고 있던 (주)LG의 지분 11.3%를 상속법에 따라 분배하라는 것이다.

구 회장의 주식은 양자인 구광모 회장이 지분 11.3% 중 8.8%를 받고 장녀인 연경씨가 2%, 연수씨가 0.5%를 물려받았다. 김여사는 이미 4.2%를 소유하고 있어 상속분에선 제외한 것이다.

그룹 측은 4년 전 구본무 회장이 타계했을 때 10차례 가족간 회의를 통해 재산분할을 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래서 이번 소송에 대해 이해를 못하겠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사 측은 구본무 회장의 유언장이 있는 줄 알고 합의했는데 작년에 유언장이 없는 것을 알고 소를 제기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룹 측은 유언장은 처음부터 없었는데 이제 와서 유언장 문제를 꺼내는 것이 이해가 안 된다고 얘기하고 있다. 이 부분은 법정에서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

가족간 인화(人和)와 우애를 자랑으로 여기는 LG그룹 여인들의 소송제기가 앞으로 어떤 결말을 가져올지 재계와 일반인들의 시선이 집중돼 있다. 단순한 상속 재산을 둘러싼 갈등인지, 남녀 차별 프레임으로까지 확대될지 아직은 예단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단 이 갈등의 해결의 키는 김영식 여사가 갖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지금껏 이어온 LG 가풍을 이어받아 화해의 길을 걸을지 여느 재벌 집안과 마찬가지로 갈등을 겪을 것인지 역시 김 여사의 행보에 달려있다 하겠다.

글 홍성추(본지 회장) 사진 Queen DB

홍성추 언론인
필자는 서울신문 기자 때부터 30년 넘게 재벌가를 취재해 온 재벌 전문기자. 서울신문 산업부장 때 기획 연재한 ‘재벌가 혼맥 인맥 대 탐구’는 재벌집안의 이면사를 다룬 최초의 기획이었다.이 기획은 나중에 ‘재벌가맥’으로 출간 되었으며 우리나라 최초로 재벌 3세를 정면으로 다룬 저서 ‘재벌3세’와 논문으로 ‘재벌가 분쟁 유형 연구’가 있다. 국내 최초로 재벌가 이야기를 다룬 유튜브 채널 ‘홍성추TV'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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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은 2023-07-25 06:24:48
'유교적 전통의 장자승계' 는..사실 여자로 태어났으니 무조건 희생하라고 강요하는 가스라이팅 아닌가?

구본승 2023-07-25 06:15:29
법보다 가슴으로 판단할수 있고 그게 정확하다고 본다. 그동안 믿어왔기에 충격도 컸을듯. 오죽했으면 지금이라도 바로잡고 싶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