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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 장관 ‘백지화’ 전면전, 정쟁 한복판 선 ‘양평 고속도로’...내년 총선 전초전-여야의 이전투구
원희룡 장관 ‘백지화’ 전면전, 정쟁 한복판 선 ‘양평 고속도로’...내년 총선 전초전-여야의 이전투구
  • 오수연
  • 승인 2023.08.02 0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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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7월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서울~양평 고속도로 관련 긴급 당정협의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2023.7.6.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7월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서울~양평 고속도로 관련 긴급 당정협의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2023.7.6.

 

경부고속도로(416km)의 14분의 1 남짓인 소규모 고속도로가 정쟁의 한복판에 서 있다. 서울 송파구 오금동에서 경기 하남시, 양평군을 잇는 서울-양평고속도로다. ‘김건희 여사 일가를 위해 노선을 변경했다’는 야당의 의혹 제기에 원희룡 국토부장관이 ‘전면 백지화’ 카드로 맞서면서 전면전으로 번지는 중이다. 20년 숙원사업의 성공을 손꼽아 기다리던 양평 군민은 물론 교통난 해소를 기대했던 수도권 시민들마저 민생을 팽개친 정치권 행태에 대해 불만이 고조되는 양상이다.

 

정치권 특혜 의혹 vs 백지화 전면전 돌입

논란의 발단은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의혹 제기 였다. 이 전 대표는 지난달 당원 행사 중 “윤석열 대통령이 김건희 여사 일가가 땅 투기를 해 놓은 곳(양평군 강상면 일대)으로 서울-양평고속도로 노선을 변경해 부당한 이득을 취하도록 했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은 즉각 이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했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방류’ 저지 투쟁에 집중하던 민주당은 서울-양평고속도로 문제를 본격 공론화하진 않은 상태였다.

특혜 의혹을 놓고 여야의 입씨름 와중에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고속도로 사업의 ‘전면 백지화’ 선언으로 맞대응하면서 판을 키웠다는 분석이다. 원 장관은 지난 6일 당정협의회를 가진 뒤 “서울-양평 고속도로에 대해선 노선 검토뿐 아니라 도로개설사업 추진 자체를 이 시점에서 전면 중단하고 이 정부에서 추진됐던 모든 사항을 백지화 하겠다”고 선언했다. 야권이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 일가에 특혜를 주기 위해 ‘서울~양평 고속도로’ 노선 변경을 시도했다는 의혹을 제기하자 사업 백지화라는 초강수를 던진 것이다.

원 장관은 민주당의 정치 공세로 이번 사업이 ‘정쟁’으로 변하면서 정상적 진행이 어려워졌다는 판단을 내렸다는 주장이다. 민주당은 즉각 ‘서울~양평 고속도로 특혜 의혹 진상규명 TF(태스크포스)’를 구성하는 등 연일 공세수위를 높이는 중이다.

원 장관은 브리핑에서 “아무리 팩트를 얘기하고 아무리 노선을 설명해도 이 정부 내내 김건희 여사를 악마로 만들기 위한 민주당의 가짜뉴스 프레임(틀)을 우리가 말릴 방법이 없다”고 비난했다.

원 장관은 민주당을 향해 자신을 고발하라며, 만약 문제가 있다면 자신의 장관직뿐만 아니라 정치생명을 걸겠다고 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즉각 “국민 삶을 놓고 도박하느냐”며 민주당에 ‘원안 재추진’을 지시했다.

이번 논란은 2년 전인 2021년 4월 예비타당성(예타) 조사를 통과한 서울-양평 고속도로 노선(원안)이 지난 5월 갑자기 변경됐고, 변경된 노선의 종점인 경기도 양평군 강상면에 윤석열 대통령 부인인 김건희 여사 일가의 땅이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민주당은 노선 변경 과정에서 윗선의 부당한 압력이 작용했을 것이란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여권에선 문재인 정부에서 예타를 통과한 ‘원안’ 노선 주변에 민주당 인사 부지가 있다는 역공을 폈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원안 추진 발언(지난 7일 당 최고위 회의)에 대해 “민주당 인사들의 땅이 원안 노선 주변에 다수 몰려 있다”며 “이 대표가 주장하는 원안대로 되면, 그에 따른 개발이익이 민주당 인사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20년 숙원 사업… 군민들 불만 고조
 

지난 7월 13일 경기 양평군 양서면서울-양평고속도로 예타 노선(원안) 종점 JC인근에 고속도로 건설 관련 주민 입장이 담긴현수막이 걸려 있다.
지난 7월 13일 경기 양평군 양서면서울-양평고속도로 예타 노선(원안) 종점 JC인근에 고속도로 건설 관련 주민 입장이 담긴현수막이 걸려 있다.

 

양평군의 오랜 숙원인 서울∼양평 고속도로 사업을 전면 중단하면서 여야 간 갈등과 반목이 지속되면서 양평 군민들의 속만 타들어 가고 있다. 정치권의 견해차가 커지면서 한없는 진실게임 양상으로 흘러가는 형국이다.

서울∼양평 고속도로는 20년 전부터 서울∼양평 고속도로 는 정병국 전 국회의원이 시작하고 김선교·정동균 전 군수가 기틀을 마련했다. 이를 전진선 군수와 김선교 전 국회의원이 발전시켜 더 나은 방향으로 추진했다. 게다가 2개 노선에 대한 논쟁은 처음이 아니다. 지금 야당이 여당 시절이던 2017년에도 현재 예타안, 변경안과 흡사한 2가지 노선을 논의했지만 민자사업, 정부사업으로 천당과 지옥을 오가며 추진이 쉽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열망은 컸지만 추진은 답보 상태라 정치인 노력에 주민들은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가 다행히 2021년 4월 예비타당성(예타) 조사를 통과하면서 작은 불씨를 살리면서 군민들은 희망을 갖게 됐다.

한 달 뒤인 5월에는 민주당 소속 양평군수가 강하IC 설치를 요구했다. 이후 국토부에서는 예타안과 지역 의견을 받아들여서 본 타당성 조사 용역을 줬다. 2022년 1월 당시 국토부는 용역 과업 지침을 세워서 용역 지시서를 작성하는데, 이 지침에 ‘노선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라’는 명분 규정이 포함됐다.

이후 입찰이 진행됐고 민간 용역사가 2022년 3월 용역에 돌입해 5월 원안의 문제점과 대안안을 중간보고했다는 설명이다. 엎치락뒤치락 20년 숙원 사업이 다시 ‘전면 백지화’라는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면서 양평 군민들이 정쟁의 최대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원희룡 승부수… 독배로 변할까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9일 ‘서울-양평 고속도로’ 사업 백지화를 돌발적으로 선언한 이후 정쟁의 한복판에 서게 됐다. 경기도와 야권 등의 주장을 ‘가짜뉴스’라고 콕 집어 비판하는 등 강경 대응도 서슴지 않는 모습이다.

최근 정국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이번 이슈에서 원 장관과 국토부가 최전선에 선 듯한 모양새다. 원희룡 장관이 ‘일타강사’로 나서 서울~양평 고속도로 사업이 김건희 여사 특혜라고 주장하는 더불어민주당의 주장을 요목조목 반박했다. 그는 4년 후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이후에 재추진하자고 제안했다.

다만 민주당이 의혹 제기를 중단할 경우 사업을 재추진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 지난 12일 자신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인 원희룡TV를 통해 서울~양평 고속도로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직접 설명했다.

그는 “소고기, 사드, 천안함 등 민주당은 과거 여러 번 거짓선동으로 정치적 재미를 봤지만 이러한 괴담에 이제 국민들도 질릴 만큼 질렸다”며 윤 대통령의 취임 이후 김건희 여사에게 특혜를 주기 위해 노선이 바뀌었다는 민주당 주장을 반박했다.

그는 설명 중 칠판에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써가면 서 의혹을 해명·반박했다. 국토부는 최근 들어 ‘서울-양평고속도로’ 사업과 관련한 입장을 보도자료 등을 통해 연일 내놓으며 총력전에 돌입한 모양새다.

지난 8일에는 국토부도로국 내에 20여 명의 직원으로 구성한 현안 대응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정부 부처 직원만으로 이 정도 규모의 TF가 꾸려진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여야가 지난 7월 10일부터 7월 임시국회 회기를 시작한다. 일본정부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와 서울-양평 고속도로 전면백지화, 대법관 인사청문회 등 각종 현안이 기다리고 있어 7월국회에서도 여야 갈등은 격화될 전망이다. 사진은 이날 서울여의도 국회의사당 모습. 2023.7.10
여야가 지난 7월 10일부터 7월 임시국회 회기를 시작한다. 일본정부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와 서울-양평 고속도로 전면백지화, 대법관 인사청문회 등 각종 현안이 기다리고 있어 7월국회에서도 여야 갈등은 격화될 전망이다. 사진은 이날 서울여의도 국회의사당 모습. 2023.7.10

 

내년 총선 전초전… 양평 블랙홀

하지만 원 장관과 국토부의 공세적 해명에도 불구하고 점점 ‘양평 블랙홀’로 빠져드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대통령실조차 이번 사업 백지화 논란에 대해 “기본적으로 국토부가 알아서 해야 할 문제”라며 선을 그은 만큼 국토부가 최전선에서 스스로 헤쳐나가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국토부 안팎에서는 벌써 이번 이슈로 다른 주요 현안들이 뒷전으로 밀릴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이번 이슈가 올해 하반기 국감은 물론 내년 총선까지 이어질수 있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주요 현안과 관련한 법안이 양평 고속도로 이슈에 밀려 국회에서 논의조차 어렵게 된 것이다.

여권 안팎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원장관의 백지화 발언이 다소 성급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여야가 첨예하게 맞선 정쟁에 정부 부처가 직접 나서는 것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시각도 상존한다. 도로나 철도, 공항 등 대규모 기반 사업을 추진할 경우 곳곳에서 이해관계에 따른 잡음이 나타나는 일이 드물지 않다. 하지만 이처럼 정치적 공세가 있을 때마다 사업을 중단할 거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정치권에서 여당이나 야당이 백지화 등을 주장하며 정쟁에 나서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정부 부처가 정쟁에 직접 참여하는 듯한 모습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적어도 정부 부처라면 해당 고속도로의 결정 과정 등을 투명하게 보여주고 설명하면서 국민들을 설득하려는 자세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잠룡의 꿈… 한동훈 따라잡기 지적도

원희룡 국토교통부장관이 민주당식 괴담정치로 규정하면서 ‘백지화’로 맞섬으로써 판을 키웠다는 평가다. 원희룡 장관의 승부수가 현정권 지지세력들에게 시원한 한방을 안겼지만, 전체적으로 잘한 선택인지 여부를 평가하기는 이르다. 오히려 벌집을 건드리는 상황이라는 시각도 있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국정수행 긍평평가)이 하락하고, 수도권에서 국민의힘 정당 지지율도 동시에 하락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는 대다수 국민들이 민주당의 괴담에 넘어가지도 않을 뿐 아니라, 동시에 국가의 중심을 잡아야 할 정부의 즉흥적인 대응방식에도 실망감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인다.

원희룡 장관은 3선 국회의원에 제주도지사를 역임한 여권의 중진 정치인이자 차기 대권후보군으로 거론되는 인물이다. 지난 대선 당시 당내 대선후보 경선 본선까지 진출했지만 윤석열 후보에 패배하자 정책본부장을 맡아 윤 후보의 각종 공약을 만들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그를 국토교통부 장관으로 기용한 것은 이에 대한 포상의 성격과 더불어 차기 대선주자로 스스로를 부각시킬 기회를 만들어준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1982년 서울대 수석입학에 사시 수석합격, 학생운동으로 감옥까지 다녀온 검사출신 원희룡이 1999년 이회창 총재의 한나라당에 입당, 정치를 시작했을 때 큰 주목을 받았다.

서울 양천갑 지역구에서 내리 3선을 하면서 최고위원이 되는 등 대권주자로서 몸집을 키워갔다. 당시 남경필 정병국 의원과 함께 이른바 ‘남원정’ 그룹을 만들어 보수 정당내 소수 개혁파의 노선을 걸었던 정치 전력도 있다.

여권에서는 양평고속도로 백지화라는 원희룡 장관의 초강수를 둘러싸고 “차기주자로서 존재감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라는 평가가 적지 않다. 차기 대선은 한참 남았지만 최근 1년여간 여권의 차기 대선주자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는 한동훈 법무부장관이 압도적 1위, 홍준표 대구시장이 2위를 달리고 있는 상황이다.

원 장관의 양평고속도로 백지화 선언이 잠재적 대권 경쟁자인 한동훈 법무부장관을 의식한 것이라는 분석도 이런 맥락이다. 한동훈 장관은 야당이 윤석열 정권을 ‘검사 독재’로 규정하고 법무부장관인 그에게 윤 대통령의 아바타 등 온갖 공세를 집중함으로써 오히려 정치적 위상을 강화시켰다는 지적이 많다.

원희룡 장관 또한 민주당의 상습적인 괴담정치에 대해 양평고속도로 백지화 선언이라는 초강수로 맞섬으로써 한동훈식 ‘사이다 펀치’를 벤치마킹한 것이 아니냐는 합리적 추론도 가능하다.

서울-양평 고속도로 사업 백지화를 선언한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을 응원하는문구가 적힌 화환이 지난 7월 11일 세종시정부세종청사 국토교통부 입구를 가득 채우고있다.
서울-양평 고속도로 사업 백지화를 선언한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을 응원하는문구가 적힌 화환이 지난 7월 11일 세종시정부세종청사 국토교통부 입구를 가득 채우고있다.

 

원 장관이 내년 4월 총선 전 자신의 존재감을 키우는 동시 야당을 압박하는 의도로 ‘서울-양평 고속도로 사업 백지화’카드를 꺼낸 것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백지화 깜짝 발언’ 이후 원 장관 지지자들은 앞다투어 원 장관 응원에 나서기도 했다. 정부세종청사 6동 국토부 앞에는 원 장관을 응원하는 내용이 담긴 수십 개의 화환과 화분이 놓였다.

화환에는 서울-양평 고속도로 백지화를 밝힌 원 장관을 지지하는 내용이 담겼다. 화환에 달린 리본에는 ‘굳세어라 원희룡’ ‘원희룡 장관님 힘내세요’ ‘원희룡 장관님 우리가 함께 합니다’ 등의 문구가 적혔다.

원 장관은 당과 사전 상의 없이 깜짝 발언으로 이목을 끌었지만 민심이 동요하는 분위기가 감지되면서 국민의힘 수도권 의원들을 중심으로는 ‘민심 달래기’에 나서는 형국이다. 국민의힘 한 지도부 관계자는 “원 장관의 백지화 발언은 다소 놀랄 만한 발언이었다. 오버한 것 같다”는 평가를 내놨다.

여당 수도권 전·현직 의원들을 중심으로 원 장관이 다소 성급하게 발언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수도권 민심 달래기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인천 동구 미추홀구을이 지역구인 윤상현 의원은 지난 10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원 장관의 ‘백지화 발언’에 대해 “너무 성급하게 결론을 내렸다”고 지적했다. 윤 의원은 “양평군민들이 얼마나 이 사업을 오랫동안 기다려 왔느냐”며 “현재 중단된 것이고, 사업의 적정성을 다시 검증한 다음 재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 오수연(자유기고가) | 사진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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