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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칼럼] ESG 중심에 여성이 있다
[여성 칼럼] ESG 중심에 여성이 있다
  • 이복실
  • 승인 2023.09.09 0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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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국제 금융시장의 화두는 단연 ESG이다. ESG란 투자 대상의 재무적 요소 외에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기업 지배구조(Governance) 등 비재무적 요소를 고려하는 사회책임 투자의 하나다. 그런데, ESG 중심에 여성이 있다고 하면 모두 갸우뚱한다. 아니, 아무 곳이나 여성을 갖다 붙이는 것 아냐? 라고 의심의 눈길을 보낸다. 그러나 ESG와 여성의 관계는 매우 밀접하다. ESG 중 G(기업지배구조)의 중요한 부분은 이사회의 다양성이기 때문이다. 이사회의 여성 이사 비율은 ESG의 중요한 평가지표이다.

그러면 우리나라 기업 이사회에 여성의 비율은 얼마나 될까? 통계에 의하면, 2019년 3%, 2022년 5.6%, 2023년 8.8%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콘크리트같이 2~3%에서 머물던 여성 비율이 조금씩이나마 움직이고 있는 것은 작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여성이사 의무화제도 덕분이다. 2019년 개정된 자본시장법은 자산총액이 2조 원 이상인 상장사의 이사회를 특정 성(性)으로만 구성할 수 없도록 규정해 사실상 1명 이상의 여성 이사 선임을 의무화했다. 이 법은 세계여성이사협회 한국지부가 주도하여 만든 법이다. 세계여성이사협회는 2017년부터 법 개정안과 설명자료를 만들어서 국회를 찾아다니며, 소관 상임위 국회의원에게 설명하고, 국회에서 통과되도록 노력하였다. 이런 성과를 인정받아 지난 6월 ICGN(국제기업지배구조 네트워크)에서 수여하는 기업지배구조 대상을 받았다.

여성 이사의무화제도로 국제적인 상을 받다

지난 3월의 일이다. 세계여성이사협회 한국지부 회원이 이메일을 보냈다. “회장님, 국제기업지배구조 네트워크(ICGN)에서 매년 기업지배구조 우수상을 선정하여 시상하고 있는데, 우리 단체가 지원하면 좋겠어요.”라고 제안했다. 필자는 당시 한국지부 회장을 맡고 있었다. ICGN은 1995년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통한 지속 가능한 경제 환경 구현’을 목표로 북미ㆍ유럽의 기관투자자들을 중심으로 설립된 비영리 기구이다. 50개국 600곳 이상의 기관과 전문가들이 회원으로 참여하여 기업지배구조와 관련한 글로벌 기준 확립, 회원간 공동연구 등을 수행하고 있다. 또한, 매년 기업지배구조개선에 기여한 개인 또는 기관을 선정하여 상을 수여하고 있는데, 기업지배구조 분야의 최고 권위 있는 상으로 평가받고 있다. 받고 싶다고 해서 받는 상이 아니었다. 뚜렷한 성과가 있어야 했다. 전에 수상한 분들의 성과도 어마어마했다. ICGN 지배구조부문 대상 역대 수상자로는 유럽기업지배구조원(ECGI), 캘리포니아 공무원 연기금 (CalPERS)의 리처드 콥스(Richard Koppes), 미국기관투자자협회(CII)의 앤 여거(Ann Yerger) 등이 있다. 서류를 내고는 “우리가 상을 받으면 좋겠다.”라며 막연하게 기대는 했지만, 잊고 있었다.

그런데 6월 초 갑자기 이메일이 왔다. 발신인은 ICGN. 우리 단체가 최종 후보에 올랐으니 6월 중순 캐나다 토론토에서 개최하는 연례총회에 참석하라는 내용이었다. “어머나. 우리가 국제적인 상을 받다니! 소식을 들은 우리 회원들 모두 기뻐했다. 법 통과를 위해 애쓰던 일이 생각나서 울먹이던 회원도 있었다. 부랴부랴 비행기 표를 사서 토론토에 갔다. ICGN 대표인 캐리 워링(Kerrie Waring)은 수상식 직후 면담에서 정부도 아니고 여성단체가 나서서 지배구조개선을 선도한 것은 선례가 없는 일이라며, “It is incredible.”(믿을 수가 없어요)이라고 말했다. 시상식 날 단상에 서니, 떠오르는 분이 있었다. 여성 이사 의무화 법안을 최초 발의한 최운열 전 국회의원이다. 최 의원님의 헌신과 노력이 없었다면 이 법은 국회를 통과하기 어려웠다. 수상소감으로 나는 ”Without a visionary man like him, I don’t think I’ll be standing here today. (그가 없었다면 나는 이 자리에 오늘 없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상을 받고 보니, 7년 전 세계여성이사협회 한국지부를 창립할 때 일이 생각이 난다. 협회 창립준비 모임에 참석한 나는 회원들의 헌신, 열정과 진정성에 크게 감명받았다. 자기 생업이 있는 분들이 우리 사회를 바꾸기 위해, 또 우리 딸들에게 좋은 세상을 물려주기 위해 함께 힘을 뭉치자고 이야기하는데 진정성에 감동이 되어 눈물이 핑 돌았다. 우리는 그날 처음 만났지만, 사회를 바꾸기 위해 동참하겠다는 의지는 모두 똑같았다. 여성들의 인적 네트워크 형성은 모두에게 힘과 용기, 그리고 실행 가능한 조언을 얻게 해준다. 창립준비모임에서부터 우리는 여성 이사 의무화에 대한 법제화에 대한 의지를 다졌다. “우리 후배들을 위해서 여성 경영 참여 확대를 위한 법제화는 꼭 필요해요.”

그러나, 우리나라 여성 이사 비율은 늘었다고는 하지만 겨우 8%이다. 이사회의 다양성 통계로 순위를 매긴다면 우리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거의 최하위 수준이다. 노르웨이나 스웨덴 등 앞서가는 나라들은 여성 이사 비율이 50%를 넘었다. 그런데도 우리에게 상을 주는 이유는 그동안 3%에 머물러있던 문턱을 어렵게 넘은 것에 대한 인정과 향후 더 발전하라는 격려도 포함되었을 것이다.

다양성이 중요한 이유

그러면 왜 다양성이 이렇게 중요한 키워드로 떠오른 것일까? 세계 1위 자산운용사인 블랙 록의 래리 핑크 대표는 2018년 신년 뉴스레터에서 다양성에 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다양한 젠더, 민족, 경험, 사고방식을 가진 이사회는 수준 높은 의식을 갖게 된다. 새로운 위협을 간과할 가능성이 작고, 성장 기회를 더 잘 포착할 수 있다. 여성 이사 의무화제도를 발의한 최운열 전 국회의원도 ”여성 임원을 늘리는 것은 다양성 확보와 독립성 강화 차원에서 중요하다.“라며 “이사회의 다양성을 갖추면 여러 의견이 나올 수 있게 되어, 이사회 전문성과 독립성이 강화되어 합리적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ICGN 총회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세션은 캐나다 은행 이사회 의장의 강연이었다. “캐나다 기업 이사회에 여성이 늘고 있지만, 아직 30%대예요. 50%로 가기 위해서 우리는 더 노력해야 해요.” 글로벌에서는 이렇게 앞서가고 있었다. 다양성의 의미를 30%도 아니고, 남녀 동수인 50%로 보고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회의장에서 만난 홍콩 투자회사 대표의 질문도 인상적이었다. 그녀는 수상 직후 내게 물었다. “한국 기업들을 보면 여성 임원이나 이사가 현저히 적어요. 그래서 왜 이리 적냐고 물어보면 할 만한 사람이 없다고 답변해요.” 그녀는 내게 묻는다. “한국에는 이사회에 참가할 만한 여성이 그렇게 없나요?”나는 이렇게 답했다. “아니에요. 많이 있지만, 굳이 찾지를 않는 거지요. 혹시 인재 풀이 필요하면 우리 단체에 연락해주세요.”

이렇듯, 우리나라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이사회의 다양성에 관해 아무런 정책도, 관심도 없었다. 이사회의 여성의무화제도를 도입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이 오히려 민간 기업에 부담을 주지 않을까 우려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ESG 가치로 다양성이 중요하기도 하고, 이사회의 다양성을 갖추지 않고서는 글로벌 투자를 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여성 이사 의무화제도 도입으로 국제적인 상을 받게 되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자산총액 2조 이상 기업만 대상인 점이나 최소 1인으로 한 점은 구색 갖추기가 아니냐는 우려가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앞으로, 이런 문제들이 점차 개선되어 우리 기업들이 다양성을 담보한 ESG 경영을 실천함으로써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루기를 기대한다.

글 이복실(전 여가부 차관)

 

이복실은…
전 여성가족부 차관, 세계여성이사협회 한국지부 회장.
서울 시립대 도시행정학과를 졸업,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USC 에서 교육학으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1985년 여성으로서 네 번째 행정고시 합격자이다. 30년간 중앙부처에 재직했으며,
2013년 여성가족부가 설립된 이래 최초 여성 차관으로 임명됐다.
저서로는 <여자의자리 엄마의 자리>, <나는 죽을 때까지 성장하고 싶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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