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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신경척수염 1년 약값만 4억… “신약, 죽기 전에 볼 수 있을까”
시신경척수염 1년 약값만 4억… “신약, 죽기 전에 볼 수 있을까”
  • 이주영 기자
  • 승인 2023.08.16 10: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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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인구 10만명당 3.6명 앓는 시신경 척수염 범주질환 환자 남편이 나서 다른 환자들과 경험 나눌 환우회 발족
한국시신경척수염환우회를 최근 만든 박홍규씨(44). 박씨의 동갑내기 아내는 오랜 기간(20여년 가량 추정) 시신경 척수염 범주질환을 앓고 있다/뉴스1
한국시신경척수염환우회를 최근 만든 박홍규씨(44). 박씨의 동갑내기 아내는 오랜 기간(20여년 가량 추정) 시신경 척수염 범주질환을 앓고 있다/뉴스1

그동안 미지의 영역에 있던 희귀질환이 과학의 발달로 점차 규명돼 새로운 이름을 얻고 진단과 치료법까지 마련되고 있다. 그러나 환자 입장에서는 "언젠가는 낫겠지"라는 희망만을 품기 어려워 매일 좌절하기 십상이다.

박홍규씨(44)도 그랬다. 동갑내기인 박씨의 아내는 뇌, 시신경 또는 척수 등 중추신경계에 염증이 발생해 하반신 감각 저하나 시력상실, 운동장애 등을 초래하는 시신경 척수염 범주질환(시신경 척수염)을 오랜 기간 앓고 있다. 그러나 전문 지식은 없어도 경험은 나눌 수 있단 생각을 가졌다.

그래서 시신경 척수염 범주질환의 환우회(한국시신경척수염환우회)를 지난 6월에 만들었다. 현재 혼자 운영 중이지만 앞으로 환자가 사회복지사, 간호사에게 상담받고 정보도 얻을 수 있는 환우회를 갖추겠다는 구상이다.

박씨는 최근 뉴스1과의 인터뷰에서 "다른 환자들에게 우리 경험을 공유하고 싶다. 병은 알려야 낫는다는 말이 있듯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도록 치료제가 필요하다는 점을 알리겠다"며 "환우회 대표들의 공통된 꿈은 치료 환경이 좋아져 단체를 해산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환우회장인 박씨와 신경과 전문의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시신경 척수염 범주질환은 내 몸의 정상세포가 이유 없이 나를 공격하는 자가면역질환이다. 눈이 좀 침침하거나, 무리를 해 다리가 뻣뻣한 것 같다는 증상으로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

인터뷰에 동참한 박씨 아내도 "중학교 3학년에서 고등학교 입학할 무렵, 한쪽 눈이 뿌옇게 보이고 두통이 심해 안과를 찾았다. 병명을 찾지 못해 검사만 받다가 그 과정에서 한쪽 눈 시력을 잃었다. 큰 병원까지 갔지만 이미 시신경이 말라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박씨 아내는 여러 병원에서 수많은 검사를 받았지만, 병명을 못 찾았다. 강직, 배뇨 문제를 겪으며 다발성 경화증까지 진단받고 치료를 위해 국내 최초로 '림프종 전용 조혈모세포이식'(BMT)도 해보면서 1년가량 완치 판정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를 가진 뒤 질환이 재발하는 바람에 출산 후 5년 정도 하반신 마비로 휠체어 생활을 했다. 현재 걸을 수는 있지만 두 눈의 시력은 회복하지 못했다. 10여년 전 적십자를 통해 미국에 혈액 샘플을 보낸 뒤 항체 검사도 진행하고 나서야 시신경 척수염을 진단받았다.

박씨 아내의 경험대로 시신경 척수염은 다발성 경화증과 증상이 유사해 다발성 경화증의 한 유형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환자 혈청에서 특이 항체(항 아쿠아포린-4)가 발견되면서 별도 질환으로 분류됐다.

유병률은 전 세계적으로 10만명당 0.5~10명에 불과하다. 아시아인의 유병률이 상대적으로 높은데 국내 유병률은 인구 10만명당 3.6명에 그친다. 평균 발병 연령은 43.08세로 전체 환자 중 여성 환자가 4.7배 더 많다고 알려졌다.

특히 재발 위험이 높다. 발병 5년 이내 90% 이상의 환자가 재발을 경험했다. 문제는 재발로 인해 나타난 증상들은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환자 5명 중 2명은 진단 5년 안에 실명을, 환자 34%는 약 6년 이내에 영구적인 운동 장애로 이어진다.

박씨는 "언제 재발할지 모르는 데서 오는 공포심이 컸다. 어떻게든 살아보겠다는 의지로 노력했지만, 데미지가 계속 쌓이니 스스로 지쳐갔다"고 털어놨다. 그의 아내도 반복된 재발에 자신감이 사라졌다고 전했다.

박씨 아내는 건강보험 적용이 되고 다발성 경화증이나 시신경 척수염에 현재 써볼 수 있는 약은 다 사용해 봤고 지금은 항암제(면역억제제)로 치료받고 있다. 환자들에게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치료제 중 시신경 척수염 범주질환으로 식품의약품안전처에 허가받은 약은 없다.

장기간 재발 예방 효과를 입증한 신약이 국내에 총 3개가 허가돼 있긴 하다. 그러나 아직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솔리리스(성분명 에쿨리주맙)라는 약은 외국에서는 바이알(0.3g/30mL)당 표시가격이 513만원, 성인 환자 기준 1년에 4억원이 든다.

이에 대해 박씨는 "신약을 가진 외국 제약사들과 정부가 중증 환자의 건강보험 적용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들었다. 환자는 재발 위험을 낮추면서 빨리 회복하고 싶은데, 중증이 돼야 사용할 수 있다면 환자에게 이미 장애가 생겼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박씨는 "중증에 쓰일 좋은 신약을 죽기 전에야 사용할 수 있을까"라며 "환자에게 맞는 약, 걱정 없이 쓸 수 있는 약을 권하고 싶다. 정부가 신약을 더 빨리 허가해 주고 보험 적용을 전향적으로 검토해 줬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박씨 부부는 투병 과정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오래전임에도 자녀의 탄생으로 꼽았다. 환자로서 몸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무사히 출산했고, 이를 현재 임신 중인 다른 여성 환자들에게도 조언해줄 수 있어서다.

박씨 아내는 힘듦을 알기에 공감을 표하지만 극복해야 하는 일인 만큼 다른 환자들에게 있는 그대로 경험을 전하고 있다. 박씨는 "정부가 건강보험 적용에 속도를 낼 수 있게 소통할 생각이다. 또 대중교통 이용 등 사회적 시선에 힘들어하는 환자도 많다. 인식 개선에도 힘쓰겠다"고 다짐했다.

[퀸 이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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