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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가리 막걸리 살인사건' 피고인 백씨부녀 '재심 청구’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사건' 피고인 백씨부녀 '재심 청구’
  • 이주영 기자
  • 승인 2023.08.17 10: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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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자 4명 마을의 참극, 범인은 누구?… 박준영 변호사 '범인 지목 후 수사 시작'
박준영 재심전문 변호사 2021.2.4/뉴스1
박준영 재심전문 변호사 2021.2.4/뉴스1

"정말 제가 엄마를 절대 죽이지 않았다는 것만 밝히고 싶습니다."

이른바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사건'의 피고인 중 한명인 백모씨가 재심 준비기일 최종 진술에서 한 말이다.

그는 27세에 어머니와 마을 주민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돼 현재는 40대가 됐다.

14년 전 국민들을 충격에 몰아넣었던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사건'이 다시 세상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사건의 피고인인 백씨 부녀는 '억울하다'며 재심을 신청했고, 재심 전문인 박준영 변호사도 이 사건이 위법 수사로 꾸며진 '날조 사건'이라는 주장을 펴면서다.

광주지검 순천지청은 별도의 TF팀을 구성해 다시 사건을 들여다본 뒤 '당시 수사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 첨예한 법정공방을 예고하고 있다.

17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아버지 백모씨(74)와 딸 백모씨(40)는 존속살해, 살인, 살인미수 등의 혐의에 대한 형을 2012년 대법원에서 확정 받아 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무죄를 선고한 1심과 달리, 2심과 대법원은 이들에게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검찰은 사형과 무기징역을 구형했었다.

백씨 부녀는 지난 2009년 7월6일 전남 순천 황전면의 한 마을에서 막걸리에 청산가리를 타 백씨의 아내인 최모씨(사망 당시 59세) 등 2명을 살해하고 주민 2명에 중상을 입힌 혐의로 기소됐다.

이들 부녀가 15년간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고 이를 숨기기 위한 범행이었다는 검찰의 발표로 국민 공분을 받으면서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사건'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이 사건은 발생 초기부터 미궁이었다.

범죄 용의자는 20일 넘게 특정되지 않았다. 다방면에서 이어지던 경찰 수사는 딸 백씨의 '성폭행 피해 진술'을 기점으로 급격히 진행됐다.

백씨는 "마을 주민인 A씨로부터 수차례에 걸쳐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며 경찰에 진술했다. 경찰은 A씨를 긴급체포한 뒤 성범죄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살인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를 벌였다.

그러던 중 A씨는 풀려나고 딸 백씨가 어머니를 죽인 용의선상에 올랐다.

여기에서부터 검찰과 변호사 측의 주장은 뚜렷이 갈린다.

박준영 변호사는 "당시 이 사건에 대한 어떤 단서도 없는 답답한 상황에서 경찰은 딸 백씨를 포함한 피해자 가족들에게 '원한 관계 등 의심되는 사람이 없냐'고 물어봤고 백씨는 '엄마의 원한을 풀어야 될 것 아니냐'는 가족들의 설득에 성폭행 당한 사실을 폭로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A씨를 고소한 것도 백씨가 아닌 경찰이다. 그런데 수사기관은 살인사건 가해자가 필요한 백씨가 A씨를 무고했다며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해 수사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성범죄 사건을 조사하던 과정에서 딸 백씨가 어머니 살해에 대한 진술을 했다. 이는 살인사건과 별개의 사건을 수사하던 중 등장한 자백으로, 검찰에서는 무리하게 추궁할 필요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결국 2심과 대법원은 '백씨 부녀의 자백'을 핵심 증거로 유죄 판결을 내렸다.

백씨 부녀는 1심 재판부터 '가족을 살해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2심 재판부는 검찰의 진술 조사 내용을 토대로 '백씨부녀가 청산가리를 탄 막걸리를 아내(엄마)에게 줬고, 이를 나눠마신 아내와 마을 주민들이 죽거나 다쳤다'고 결론냈다.

'이들 부녀의 자백에 조사관·검사의 허위, 강압수사가 있었는지'가 재심 준비 재판의 핵심 쟁점이 된 이유다.

양 측이 법원에 제출한 당시 검찰 수사 영상을 보면 '죽이지 않았다'는 부녀의 자백이 포함돼 있다. 어느 부분에서는 범행을 인정하는 자백도 나온다.

실제 딸 백씨는 범행도구인 청산가리와 막걸리 구입처, 범행 방법 등에 대한 진술을 수차례 번복했고, 수사관이 청산가리의 생김새를 설명하지 못하는 백씨에게 답변을 알려주거나 청산가리 구매과정에 대한 진술을 강요하는 영상도 재심준비 증거물로 제출됐다.

영상 속 수사관은 "신문지에다가 가루를 포장하면 안 되지. 청산가루는 비닐에다 싸야지. 신문지에 쌓인 채 검정 비닐에 담긴 청간가리를 샀다. 이게 맞지?"라고 물어봤고 백씨는 "네"라는 말만 반복했다.

특히 수사관은 "아버지가 지금 너한테 다 뒤집어씌우려고 한다. 아빠한테 넌 사건의 도구일 뿐이다. 내가 아빠라면 딸을 감싸면서 내가 했다고 했을 거다. 네가 말을 안 하더라도 조사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등의 발언도 했다.

박 변호사는 "검찰은 허위 자백을 강요해 이 사건을 살인 사건으로 위장시켰다. 수사관이 머릿 속으로 꾸민 시나리오를 백씨에게 강요하는 영상만 10시간이 넘는다. 수사기관은 부녀 사이를 기망, 이간질해 조서를 꾸몄다"고 주장했다.

반면 검찰은 "만약 수사관이 허위 자백을 강요하는 상황이면 긴박감이 느껴져야 하나, 영상에서 그런 긴박한 사정은 느껴지지 않는다. 검찰은 허위 자백을 강요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검찰이 피고인들의 무죄를 증명할 증거물도 고의로 제출하지 않았다는 정황도 나왔다.

2심 재판부는 아버지 백씨가 제출한 '자필 진술서' 등을 토대로 피고인들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봤으나 아버지 백씨는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해 '예, 아니오' 조차 쓸 줄 몰랐다. 딸 백씨도 발달장애 의심 소견을 받았으나 검찰은 이와 관련된 증거 제출을 누락했다.

검찰은 "딸 백씨는 계좌번호를 외워서 쓸 수 있고, 피해자로 경찰 조사를 받을 당시 홀로 출석해 구체적인 피해 진술을 한 점 등을 감안하면 지적능력이나 사회연령이 낮지 않다"고 강조했다.

박 변호사는 "정신감정 결과 딸 백씨는 지적 능력이 평균 '하 수준'으로 판단되며 질문에 쉽게 포기하는 모습을 보이고 순응하는 모습을 보인다"면서 "검찰은 이를 알고도 재판 증거로 제출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검찰이 앞선 재판들에 제출하지 않았던 증거자료들은 재심 여부 결정의 주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압수수색 과정에서 발견된 플라스틱 스푼은 청산가리를 막걸리에 넣는 도구로 지목됐는데, 국과수 감정 결과상 스푼에서는 청산염이 검출되지 않았다. 해당 자료는 재판 증거로 제출되지 않았다.

막걸리 구입 경로와 관련된 증거도 '기술적 한계'와 '은폐'를 둔 공방 대상이 됐다.

검찰은 "당시 수사검사는 막걸리 구입 경로를 특정, CCTV 영상을 확인했지만 화질이 좋지 않아 차량번호 식별이 되지 않는다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며 "기술적 한계로 법원에 제출되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변호사는 "막걸리의 생산일자는 7월2일, 사건 발생 날짜는 7월6일이다. 당시 막걸리를 구매하기 위해선 시내로 나가야 했다. 그 길은 단 1개로 수십대의 CCTV가 있다. 경찰은 버스와 도로 CCTV 전체를 조사해 증거를 확보했지만 재판부에는 제출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범행 도구인 청산가리의 출처도 공방 대상이 됐다.

2심에서 검찰 측은 '백씨가 오이농사를 위해 청산가리를 보관했고, 이를 범행에 이용했다'고 공소했고 재판부도 이를 전제로 사건을 판단했다.

반면 박 변호사는 "오이농사에는 청산가리가 아닌 유황이 사용된다. 검사는 '수십년 넘게 오이농사를 했는데 청산가리는 전혀 사용되지 않는다'는 농부 50여명의 진술을 전혀 제출하지 않았다"면서 "이밖에도 백씨 부녀의 무죄를 뒷받침할 증거 수백장이 누락된 상태에서 유죄 판결이 내려졌다. 재심을 통해 백씨 부녀의 억울함과 검찰의 허위 수사를 밝혀내야 한다"고 요청했다.

검찰 측은 "재심을 위해선 직무상의 과실에 의한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적어도 미필적으로나마 어떤 의도가 있어야 한다. 검찰은 피고인들에게 누명을 씌울 어떠한 이유나 동기가 없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재심 청구를 기각해달라"고 요청했다.

모든 심문 기일을 마친 광주고법은 조만간 이들 부녀에 대한 재심 여부를 결정한다.

[퀸 이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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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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