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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가 여인들③ 삼양식품 김정수 부회장 편 "주부 며느리에서 라면업계의 어머니로"
재벌가 여인들③ 삼양식품 김정수 부회장 편 "주부 며느리에서 라면업계의 어머니로"
  • 홍성추
  • 승인 2023.08.2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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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조명

 

최근 재벌가 여인 중 가장 주목을 받는 인물을 들라면 삼양식품의 김정수 부회장을 꼽지 않을 수 없다. 평범한 가정주부에서 그룹 경영을 총괄하는 CEO로 변신, 삼양식품을 제 2의 전성기로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반신반의하던 재계에서도 김정수 부회장의 경영성과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삼양식품의 맏며느리로 들어가 안방마님을 하다가 기업총수로 맹활약하는 여걸 중의 여걸 김정수 부회장의 성공스토리는 재벌가 여인들에게는 하나의 로망으로까지 자리 잡고 있다.

지난 6월 윤석열 대통령의 베트남 순방시 동행한 경제인 중 가장 눈에 띈 사람은 단연 삼양식품의 김정수 부회장이다. 윤 대통령은 삼양식품 홍보관을 직접 찾아 김 부회장으로부터 베트남 진출에 대한 설명을 듣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삼양식품으로서는 대단한 영광이 아닐 수 없고 김 부회장 역시 벅차 오르는 감격을 가눌 수 없었다는 후문이다. 김 부회장이 이러한 영광을 차지하기까지 엄청난 시련과 고초가 있었다는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재벌가 여인들의 로망, 삼양식품 김정수 부회장의 성공스토리

창업주 전중윤 회장

 

라면의 대명사로 불리는 삼양식품은 1961년 창업주 전중윤 회장이 남대문 시장에 꿀꿀이죽을 얻어먹기 위해 긴 줄을 서 있는 것을 보고 헐벗고 굶주린 국민들에게 뭔가 영양식을 보급해야겠다는 일념으로 창업한 회사이다. 전 회장은 식품과는 인연이 없는 잘나가는 금융업 CEO였다. 지금의 삼성생명 전신인 동방생명 부사장을 지낼 정도로 당시에는 꽤 이름 있는 금융맨이었다.

그런 그가 남대문 시장을 지나면서 꿀꿀이죽을 먹기 위해 긴 줄을 서있는 사람들을 보고 식품업으로 방향을 틀었던 것이다. 일본으로 건너가 우여곡절 끝에 라면기술을 습득하고 돌아와 1963년 라면을 생산했지만 처음에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의 얼큰한 맛을 가미해 보라는 조언을 듣고 개발한 ‘삼양라면’이 대 히트를 치면서 대표적인 식품회사로 자리메김하게된다.

이후 삼양라면은 라면의 대명사가 됐고 국내 라면 업계 1위 타이틀을 오랫동안 차지했다.그러나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의 동생인 신춘호 회장이 형으로부터 독립해 라면회사를 세우면서 판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농심라면을 들고 나온 신춘호 회장은 대대적인 마케팅으로 삼양라면의 아성을 허물어 버린 것이다.

이때 엎친데 덮친격으로 ‘우지파동’이 일어나면서 삼양식품은 기업의 존폐 위기로까지 몰리게 된다. 우지파동이란 1989년 공업용 우지 즉 쇠기름으로 면을 튀겼다는 익명의 투서로 시작돼 서울지방 검찰청에서 수사를 하고 온갖 언론에서 대서특필하면서 일파만파를 일으킨 사건이다. 특히 소비자단체와 언론에서 각종 괴담을 쏟아내며 우지를 사용하는 회사를 악덕기업을 만들고 말았다.

이 파동으로 삼양식품은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당시 삼양식품 측에선 20년 동안 사용해도 인체에 아무런 해가 없고 정부에서도 권장했었던 사안이라고 주장해도 누구하나 믿으려 하지 않았다. 마치 최근 일어난 광우병사태나 사드 전자파 공포와 비슷한 양상이었다. 정부에서 인체에 무해하다는 공식 발표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8년 뒤 모두 무죄가 나고 인체에 해가 없다는 판결이 났지만 회사는 만신창이가 된 뒤였다. 대법원 선고가 있은 후 전중윤 창업 회장이 기자 회견을 갖고 억울함을 토로 했지만 다 지나간 뒤였다. 당시 노 회장은 눈시울을 붉히며 누가 투서를 했는지, 투서와 동시에 바로 수사가 이뤄진 사실과 시민단체와 언론은 왜 한쪽 편만 들었는지 아직도 의문이 남는다고 했었다.

어쨌든 이 사태 이후 삼양식품은 급속하게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농심은 부동의 1위를 차지하며 현재까지 시장 점유율 선두를 고수하고 있다. 농심은 신제품 개발과 함께 대대적인 홍보전으로 절대 아성을 구축하게 된 것이다.

이후 삼양식품은 라면업계 3위 정도에 만족해야 할 정도로 초라해졌다. IMF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사세는 더욱 위축됐고 서울 종로구청 옆에 있던 사옥을 파는 등 자구노력을 했으나 부도라는 최악의 상태를 맞고 말았다. 2005년 삼양식품은 가까스로 법정관리를 종결했지만 예전의 영광을 찾을 수 없었고 2014년 전중윤 창업 회장은 타계하기에 이른다.

삼양식품이 이런 어려움을 겪는 과정에서 등장한 이가 바로 전중윤 회장의 맏며느리며 전인장 회장의 부인인 김정수 부회장이다.
 

김정수 부회장은…

전인장 회장은 창업주의 장남으로 1994년 김 부회장과 결혼했다. 김 부회장이 결혼 후 애를 낳고 집에만 있다가 회사로 나가게 된 것은 1998년 IMF여파로 회사가 부도가 나면서였다. 처음 회사 경영에 참여했을 때만 해도 남편을 돕는 단순한 역할에 그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김정수 부회장은 그야말로 평범한 재벌가 며느리였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이북 출신의 부모와의 사이에서 태어나 서울 예고와 이화여대를 졸업한 것이 전부였다. 그렇다고 집안이 유명하거나 외국 유학을 다녀온 유학파도 아니었다. 그저 평범한 집안의 규수였을 뿐이었다. 외부에서의 단순한 역할로 그칠 것이라는 평가는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시아버지인 전중윤 창업 회장은 달랐다. 살림만 하는 며느리의 디자인 감각과 경영인으로서의 자질인 두둑한 배짱 등을 눈여겨보고 적극 권유했었던 것이다.
 

김정수 부회장은 국내 최초로 라면회사로 시작해 침체기에 빠졌던 삼양식품을 구해낸<br>불닭볶음면을 탄생시킨 어머니나 다름없다. 평범한 재벌가 며느리에서 경영인으로 변신, 기업을 구해낸<br>최고 경영자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김 부회장은 재벌가 며느리들의 로망인지 모른다.
김정수 부회장은 국내 최초로 라면회사로 시작해 침체기에 빠졌던 삼양식품을 구해낸 불닭볶음면을 탄생시킨 어머니나 다름없다. 평범한 재벌가 며느리에서 경영인으로 변신, 기업을 구해낸 최고 경영자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김 부회장은 재벌가 며느리들의 로망인지 모른다.

 

살림만 하는 며느리에서 라면업계의 어머니로

시아버지의 권유에 김 부회장은 삼양식품 경영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녀가 처음 맡은 직책은 영업본부장이다. 평범한 주부였던 그가 영업본부장을 맡자 모두 의아해 했다. 그러나 그녀는 입사하자마자 삼양라면의 패키지 디자인을 도맡아 하고 ‘갓 짬뽕’ ‘맛있는 라면’ 같은 이름도 직접 지으며 회사의 분위기를 바꿔놓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개발해낸 작품이 그 유명한 ‘불닭볶음면’이다. 고등학생인 딸과 함께 서울 명동을 걷다가 매운 음식을 파는 매장에 긴 줄이 서 있는 것을 보고 착안해 만든 이 제품은 삼양식품을 제2의 전성기로 만드는 계기를 마련한다. 삼양식품의 효자 상품일뿐더러 그야말로 삼양식품을 구해낸 제품이다.

김 부회장은 이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직원들과 전국을 돌며 불닭, 불곱창, 닭발 맛집을 찾아다녔고 세계 여러나라의 고추와 페퍼소스를 연구한 끝에 강한 매운 맛을 라면에 적용할 수 있었다.

지난해까지 ‘불닭브랜드’의 누적 판매량이 50억 개에 이른다니 그 인기가 얼마인지는 가늠하고도 남는다고 하겠다. 불닭시리즈는 이제 단순한 국내 상품이 아니라 세계 라면시장을 주름잡는 대표상품으로까지 자리매김했다고 할 수 있다.

첫해인 2015년엔 수출이 300억 원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에는 6천억 원이 넘을 정도로 대 히트를 쳤다. 실적으로 봐도 삼양식품의 성장은 눈부시다. 올해 2분기 매출은 2854억 원에 영업이익은 440억원을 기록했다. 전년동기 대비 매출은 11.8%, 영업이익은 무려 61.2% 증가한 수치다. 놀라운 성장이 아닐 수 없다.
 

1 김정수 삼양식품 총괄사장(왼쪽)과 양승완 삼양식품 노조위원장이 ESG복지기금 출연식에서 기념사진 찍고 있다.
2 하병필 경남도지사 권한대행(왼쪽에서 다섯 번째)이 밀양나노융합국가산업단지 1호 투자기업인 삼양식품(주)의 밀양공장 준공식에 참석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김 부회장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불닭시리즈의 제품 라인업을 나라별 맞춤 전략을 통해 확대하고 있다. 흔히 얘기하는 K푸드의 대표 상품으로 불닭시리즈를 확고하게 자리매김하겠다는 야침찬 포부다.

김 부회장은 기업 경영만이 아니라 배짱도 두둑한 여걸로 통한다고 주변에선 얘기한다. 남편인 전인장 회장은 오히려 신중한 면이 있지만 김 부회장은 강단이 있다는 평가다. 시누이들과의 갈등을 조정한 일이나 남편이 관심을 보였던 외식사업을 과감하게 접고 라면 하나로 승부를 걸자는 뚝심에서 그의 강단을 엿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전 회장이 의욕적으로 투자했던 ‘호면당’이나 ‘라멘에스’를 과감히 포기하는 결단을 보여줬다. 남편은 일선에서 물러서 있고 본인이 대표이사를 직접 맡아 경영 최일선에서 진두지휘하는 모습에서 그의 일면이 잘 드러났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김 부회장은 2019년 남편인 전인장 회장과 함께 횡령 혐의로 전 회장은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복역했고 본인은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이 형 확정으로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났다가 경영공백으로 회사가 어렵다며 법무부에 취업승인을 요청했고 법무부가 받아들이면서 바로 경영에 복귀하게 된 것이다. 김 부회장의 경영복귀를 놓고 일부에선 도덕적 해이가 아니냐는 시각도 있었으나 그만한 경영인이 없기 때문에 수긍한다는 긍정론도 상존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어쩌면 김 부회장의 강단을 말해주는 대목인지 모른다.

아무튼 김 부회장은 경영에 복귀하자마자 조직개편을 단행하고 부회장으로 승진하며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자신의 책임 하에 경영을 총괄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조치가 아닐 수 없다. 김 부회장은 지난 .15특사로 사면 복권되는 영광을 안기도 했다.
 

명실상부한 기업 총수 역할

삼양식품 본사 전경.
삼양식품 본사 전경.

 

현재 김 부회장은 단순한 재벌가 며느리 대표이사가 아닌 주식 보유에서도 명실상부한 총수로 자리잡았다. 사실상 지주회사 격인 삼양 내추럴스 지분 33%를 소유한 최대 개인주주이기 때문이다. 창업주의 장남인 남편 전인장 회장보다 더 많은 주식을 갖고 있는 셈이다. 평범한 재벌가 안방마님에서 명실상부한 기업 총수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결과가 아닐 수 없다.

김 부회장이 재벌 총수 역할을 하며 승승장구하고 있지만 과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종합 식품 회사라지만 라면 의존도가 너무 높아 상품 다양화가 관건이라고 하겠다. 김 부회장도 이를 잘 인식하고 있다고 기업 관계자는 밝히고 있다. 그래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는 얘기다.

대표적인 신사업으로 식물성 단백질, 마이크로바이옴, 건강기능식품 등을 꼽고 있다. 불닭시리즈의 비중이 심한 것도 넘어야 할 산으로 평가받는다. 이 부분은 나라별 맞춤 전략을 통해 극복해 나가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각 나라별 정체성을 살리면서 색다른 매운맛을 세계인에게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다.

3세 경영인으로의 후계구도를 완성하는 것도 김 부회장이 안고 있는 과제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1994년생인 장남 전병우 이사는 전략운영 본부장직을 맡아 착실하게 경영 수업을 받고 있다. 지주회사 주식 지분도 김 부회장 다음으로 많이 갖고 있어 어느 정도 후계그림은 그려진 상태다.

김정수 부회장은 국내 최초로 라면회사로 시작해 침체기에 빠졌던 삼양식품을 구해낸 불닭볶음면을 탄생시킨 어머니나 다름없다. 평범한 재벌가 며느리에서 경영인으로 변신, 기업을 구해낸 최고 경영자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김 부회장은 재벌가 며느리들의 로망인지 모른다. ‘한국 라면이 세계인의 기호식품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앞으로도 계속해서 도전을 이어가겠다’고 밝힌 김 부회장의 도전 정신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재계는 계속해서 주시하고 있다.

글 홍성추(본지 회장) | 사진 퀸 DB

홍성추 언론인…
필자는 서울신문 기자 때부터 30년 넘게 재벌가를 취재해 온 재벌 전문기자. 서울신문 산업부장 때 기획 연재한 ‘재벌가 혼맥 인맥 대 탐구’는 재벌집안의 이면사를 다룬 최초의 기획이었다.이 기획은 나중에 ‘재벌가맥’으로 출간 되었으며 우리나라 최초로 재벌 3세를 정면으로 다룬 저서 ‘재벌3세’와 논문으로 ‘재벌가 분쟁 유형 연구’가 있다. 국내 최초로 재벌가 이야기를 다룬 유튜브 채널 ‘홍성추TV'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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