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9 18:05 (월)
 실시간뉴스
오늘, 83년 만에 문 닫는 백병원… 두 달간의 상황 
오늘, 83년 만에 문 닫는 백병원… 두 달간의 상황 
  • 이주영 기자
  • 승인 2023.08.31 09: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진 - © News1 
사진 - © News1 

83년 동안 서울 중심부를 지켜온 인제대학교 서울백병원이 진료를 중단한다. 병원은 31일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환자를 받지 않으며 향후 폐원 절차를 위해 일부 행정 기능만 유지하게 된다.

뉴스1은 언론보도 등을 통해 서울백병원의 폐원 소식이 알려진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두달까지의 상황을 기록했다.

진료 종료일을 맞았지만 서울백병원 폐원 문제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폐원 결정을 시작으로 병원을 운영하는 재단인 인제학원과 교직원들 사이에 갈등의 골이 생겼다. 일부 직원들은 진료 종료가 되더라고 재단의 전보 조치 등에 불응하고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예고하기도 했다. 

◇ D-89(6월5일) 직원들 "뉴스 통해 폐원 소식 접해"

6월5일 오전 7시 서울백병원이 83년의 역사를 뒤로하고 문을 닫는다는 기사가 처음 보도됐다. 인제학원은 7년 동안 경영정상화 TF(태스크포스)를 통해 병원의 회생 방법을 논의해 왔으나 결론은 '의료 관련 사업은 추진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재단 측은 계속된 적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외부 경영자문도 했지만 경영난 극복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나왔다고 밝혔다. 재단 측에 따르면 서울백병원은 2004년부터 2023년까지 20여년간 약 1745억원의 경영 적자를 냈다. 

서울백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직원들은 대부분 이날 뉴스를 통해서 병원이 폐원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다. 후에 당일 폐원 소식을 듣게 됐을 때의 심정을 묻자 직원들은 '당혹스러웠다'는 반응을 보였다.

직원들은 "아무 상의 없이 뉴스로 폐원한다는 소식을 들었다"라며 "가족 같은 직원들을 이렇게 버릴 수 있다는 데 배신감이 들었다"라고 밝혔다. 다만 이때까지만 해도 "폐원이 되더라도 병원에서 직원들을 어떻게든 책임져줄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희망을 가진 직원들도 있었다.

폐원과 관련된 보도가 사실로 밝혀지고 재단도 이를 부인하지 않자 병원 내부에서 반발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서울백병원 교수협의회는 3일 뒤인 6월8일 '서울백병원 폐원 결정을 철회를 요구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재단 측은 교수진과 직원들을 대상으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고 했지만 갈등은 고조되고 있었다.

◇ D-72(6월20일) 이사회 "경영상 폐원은 어쩔 수 없는 선택"

6월20일 오후 3시 서울 중구 서울백병원 내 학교법인 인제학원 재단본부 회의실. 이사회 전원이 참석한 가운데 2023년도 3차 이사회 회의가 열렸다. 회의 안건으로 올라온 7개 의안 중에는 제5호 의안인 '서울백병원 폐원(안)'이 포함돼 있었다.

바로 전날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은 병원 정문에서 폐원 반대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백병원 폐원 저지 공동대책위'를 발족했다. 대책위 관계자와 직원들은 이날 이사회 개최 전에도 폐원 계획 철회를 요구하는 피케팅을 이어갔다.

앞에 4개 안건이 30여분 만에 신속하게 처리된 이후 폐원안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이사회 이사들은 병원의 '폐원이 어쩔 수 없는 결정'이라는 것에 입을 모았다.

서울백병원장을 지냈던 최석구 이사는 '예전에는 서울백병원이 전국구 병원이었으나 이제는 서울 외곽이나 지방에 그에 못지않은 병원들이 많이 생겨 환자들이 도심까지 오지 않는 상황'이라며 '서울백병원이 그에 맞춰 제때 탈바꿈하지 못한 것 같아 무척 아쉽고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어 이세중 이사(이세중벌률사무소 대표)도 병원의 적자구조를 거론하며 경영상의 이유로 폐원을 미룰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계속 적자가 누적된다면 법인 전체에 심각한 결손을 초래할 수 있다'며 '대안 없이 무조건 폐원을 반대한다면 결국 공멸하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사들은 서울백병원을 폐원하더라도 재직 교직원들은 타지역의 형제 백병원으로 보내 고용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에 합의했다. 서울백병원 안건을 다루는 데 전체 2시간30분의 회의 시간 중 1시간30여분이 소요됐다.

이사회에서 폐원안이 의결되자 병원 노조는 즉각 반발했다. 보건의료노조는 보도자료를 통해 "일방적인 폐원 결정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 D-52 (7월10일) 직원들 "우리는 이삿짐 아냐. 재단 소통 나서야"

7월10일 오후 4시30분 서울백병원 입구에는 '오늘도 내일도 정상진료'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지만 바로 그 아래 안내판에는 '서울백병원 진료 종료 안내'라는 안내문이 붙었다. 안내문에는 병원은 8월31일 오후 5시를 기점으로 병원의 모든 진료행위가 중단된다는 내용이 담겼다.

재단은 7월7일 병원의 진료 종료 일정을 8월31일로 못 박았다. 직원들의 반발에도 재단이 병원 폐원 결정을 고수하자 백병원 노조는 이날 오후 6시 폐원 결정 철폐를 위한 촛불집회를 진행했다. 집회에 참석한 100여명의 직원들은 하얀색 옷을 맞춰 입고 나왔다.

참석한 직원들의 목소리에서는 분노가 어려 있었다. 앞으로 두달여 만에 병원이 문을 닫는다고 하는데 직원들에 대한 고용승계 방식은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었다.

마이크를 잡은 한 조합원은 "우리 교직원들은 정리되어야 할 쓰레기가 아닙니다. 어딘가로 옮겨져야할 이삿짐이 아닙니다"라며 재단이 일방적인 의사결정을 멈추고 직원들과 소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노조는 성명서와 결의문도 발표했다. 결의문에서 "재단본부와 이사회의 소통 없는 일방적 폐원 결정과 진료 종료 통보에 우리는 분노한다"라며 "일방적 졸속행정, 무능한 재단본부에 우리는 더욱 강력하고 단단하게 맞설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날 이후로 병원 내부 곳곳에는 재단을 규탄하는 내용의 대자보가 본격적으로 붙기 시작했다.

◇ D-52(7월18일) 전원 부산 전보 조치 논란…"사실상 해고"

7월18일 오후 2시 병원 어딜 가든 쉽게 재단의 폐원 결정을 비판하는 대자보와 홍보물을 찾아볼 수 있었다. 앞서 7월11일 재단이 병원이 의사들을 제외한 간호사와 일반 직원 전원을 부산 지역의 형제 병원으로 발령하겠다는 계획을 밝히면서 병원의 분위기는 어두웠다.

직원들은 서울에 기반이 있는 직원들을 전원 부산으로 발령에 낸 것에 반발하며 "사실상의 해고조치"라고 항변했다. 사측이 제시한 전보 지원안도 터무니없이 미비하다는 불만이 나오기도 했다.

재단은 전보 발령에 대한 지원 대책으로 4.5% 임금 인상, 월세 30만원 지원(최대 2년) 교통비 월 50만원 보조(최대 3개월) 이사비 140만원 지급(2년 이내) 등을 제시했다.

재단의 지원안에 대해 20년 이상 병원에서 근무해온 한 간호사 "맞벌이하고 결혼해서 아이가 있는 가정도 많은데 갑자기 부산으로 가라는 것은 직원들에 대한 배려가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재단이 서울 상계동과 고양시 일산에도 병원을 가지고 있음에도 직원 전원을 부산으로 보낸다는 계획을 세운 것을 납득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단 측은 "제시한 안건에 대해 계속해서 논의를 하고 있다"라며 "진료 종료 이외에 전보 일정과 지원안은 확정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지만 직원들은 병원에 대한 불신을 거두지 않았다.

◇ D-27(8월4일), "최초의 순수 민족자본 병원, 역사적 자산 지켜야"

지난 4일 오후 5시 서울백병원 직원들은 ‘서울백병원 폐원 저지를 위한 백인제 가옥 걷기대회’를 진행했다. 병원 입구부터 병원 창립자인 백인제 선생의 옛 가옥까지 약 2㎞를 걷는 행사에 60여명의 직원들이 함께했다.

장여구 인제대의대 교수노조 서울백병원 지부장은 “서울백병원은 대한민국 최초의 순수 민족자본으로 설립된 병원으로 한 사립학교 법인의 역사가 아닌 서울의 역사 아니 더 나아가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역사라고 생각한다”라며 창립자를 비롯해 후손들이 일궈 놓은 역사적 자산을 지켜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교수는 백 병원의 설립자인 백인제 박사의 수제자로 이후 부산백병원 명예원장을 지낸 장기려 박사의 손자다.  

진료 종료 일정이 다가오면서 의료진들도 하나둘 병원을 떠나기 시작했다. 이날 이진효 서울백병원 성형외과 교수는 "지난주에 사직서를 냈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적자 경영 및 불투명한 지속 가능성 등 불가피한 측면을 백번 양보하더라도 진통이 있더라도 환자의 불편 및 교직원들의 고통 최소화를 위한 소통을 통한 질서 있는 폐원이 순리"라며 재단의 소통 부재를 꼬집었다.

이날 직원들은 재단의 병원 폐원 결정을 막을 마지막 수단으로 법원에 '서울백병원 폐원 결의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 D-15(8월16일) 가처분 신청 공방…일부 직원 수도권으로 발령

16일 오후 3시45분 서울중앙지법 동관 466호에서 서울백병원 교직원들이 제기한 가처분 신청'의 심문기일이 열렸다. 

심문기일은 당사자만 참석한 채 비공개로 진행이 됐지만 쟁점은 사립학교법과 위반 여부였다. 직원들은 서울백병원이 교육용 재산이기에 이를 용도 변경하거나 권리를 포기할 경우 법에 따라 교육부에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직원들을 부산으로 전보 발령하는 것 역시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재단 측은 폐원 결정은 20여년간 이어진 적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랫동안 논의된 것이며 갑자기 결정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또 교직원들이 가처분 신청의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며 가처분 기각의 필요성 제기했다.

조영규 서울백병원 교수협의회장은 가처분 소송의 결과를 어떻게 예상하는지를 묻는 질문에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다"라며 "법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라서 정말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노조에서는 가처분 신청을 제기한 이후에 재단이 최초 '전원 부산발령'이라는 기조를 철회하고 일부 직원들에게 수도권의 상계·일산백병원으로의 전보를 제안하면서 '갈라치기'를 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김동민 보건의료노조 서울백병원 지부장은 "직원들 중에 사직하거나 재단의 압박에 버티지 못하고 전보 발령 동의서에 서명한 사람들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재단 측은 "재단이 입장을 바꾼 건 아니다"라며 "폐원 결정 이후 각 백병원 원장들이 논의하면서 수도권 티오(규정인원)를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라고 밝혔다.

◇ D-1(8월30일), 여전히 혼란스러운 병원…진료 종료 후에도 갈등 예정

30일 오전 10시 진료 중단을 하루 앞둔 병원에는 여전히 환자들이 줄을 이었다. 병원이 7월 중순부터 신규 환자를 받지는 않았지만 기존 환자들이 자신의 의무기록과 진료의뢰서를 발급받기 위해 병원을 계속 찾고 있었다.

마지막 진료를 받으러 온 환자 중에는 자신을 담당 의료진들의 향후 거취를 묻는 이들도 있었다. "○○○ 선생님은 어디로 가는 거야"라는 물음에 "저희도 잘 몰라요. 아직 정해진 게 없어요"라는 답이 몇차례 오갔다.

폐원 사실을 모르고 병원을 찾아온 환자도 있었다. 배가 아파서 진료를 받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는 네팔 국적의 환자는 "병원이 문을 닫아요. 더 이상 진료를 하지 않아요"라는 직원의 한국어를 이해하지 못했다. 결국 직원이 휴대전화의 번역 기능으로 상황을 설명하자 환자는 자신의 휴대전화로 인근 병원을 검색해 보다 신촌세브란스병원으로 향했다.

재단이 전체 직원 중 약 30%를 수도권 병원으로 발령을 내기로 했지만 직원들 사이에서는 이런 조치 또한 투명하지 않게 되고 있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주차관리를 하는 한 직원은 "직원 중에 홀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직원은 부산 발령으로 결국 사직서를 썼다"라며 "암에 걸려 치료를 받고 있는 직원도 부산 발령이 났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당장 다음주 부산으로 가야 하는데 거처도 마련 못 했고, 근무지에 대한 정보도 없다고 덧붙였다.

그나마 정규직 직원들은 부산으로 자리를 옮길 수 있었지만 용역계약을 맺고 있는 비정규직 직원들은 계약이 종료될 처지였다. 한 청소노동자는 "30여명의 직원이 있는데 5~6명만 남고 그만두게 됐다"라며 "병원이 문을 닫는다는데 어쩔 수 없다. 다른 일을 찾아봐야지"라고 밝혔다.

한편, 재단은 진료가 종료되더라도 일부 필수 인력을 배치해 서류 발급 등 행정 업무를 담당할 예정이다. 수도권으로 발령을 받은 직원은 9월1일부터, 부산 발령 직원은 9월4일부터 해당 병원에 출근해야 한다. 

직원들 중 일부는 재단의 전보 조치에 불응해 서울백병원으로 계속 출근하며 '투쟁'을 이어 나가겠다고 밝혀 갈등은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또 9월 중순쯤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정되는 가처분 결과도 향후 폐원 과정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병원이 본격적인 폐원 절차에 돌입하더라도 현재 서울백병원 부지를 매각하거나 용도를 변경해 수익성 사업을 하는 것도 요원해 보인다. 서울시와 중구청은 서울백병원 부지를 도시계획상 종합의료시설 용도로 지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지정이 확정되면 해당 용지는 병원 등 의료시설로만 사용할 수 있다.

[퀸 이주영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