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9 13:55 (월)
 실시간뉴스
논산에서 아내에게 띄우는 연서, 청년작가 박범신
논산에서 아내에게 띄우는 연서, 청년작가 박범신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12.06.25 11: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페이스북에 일기를 쓰고 있는데, 사실 취해서 쓴 게 많아요. 그렇게 쓴 글들이지만 추상적인 고민이 상당히 구체화 되었고, 앞으로 가야 할 방향을 생각하는데도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눈물겹고 마음을 안도하게 하는 것들이 아내에게 담겨 있어요. 그건 한 존재가 마지막에 얻어 갈 수 있는 위로와 같은 거지요.
아내와 함께 살면서 괴롭고 위험한 순간들도 있었지만, 함께 해온 것에 대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아내에게 감사하는 마음이에요”


충남 논산의 탑정호 근처, 하늘과 호수가 만나는 곳에 붉은 벽돌로 지은 이층집이 있다. 그곳에는 찰나와 영원, 현실과 초월의 두 세계를 하나의 삶에 접붙여 사는 나이 든 청년작가가 살고 있다. 빛나는 소설, 역동적인 이야기, 지치지 않는 필력과 새롭고 다양한 시도로 주목받는 영원한 청년작가 박범신이 그 집의 주인이다.
박 작가는 80년대에서 90년대 전반까지 대중에게 영향력이 강한 대표적인 인기 작가였으며 여전히 그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불의 나라>와 <물의 나라>는 합쳐서 100만 부 이상이 팔렸고, <풀잎처럼 눕다>도 수십만 부가 팔린 스테디셀러다. 특히 최근에 화제를 모았던 <은교>를 포함하여 박 작가의 많은 소설이 영화와 드라마로 만들어지면서 그는 누구보다도 대중들과 가까운 작가로 현시대를 풍미하고 있다. 39년 동안 50여 권 이상의 책을 써낸 박 작가의 지칠 줄 모르는 창작력은 논산에서 새로운 문학적 지평을 예고하고 있다.

논산으로의 귀향
소설가 박범신은 지난해 7월 명지대 문예창작과 교수직을 정년퇴임한 뒤 초겨울이 시작된 11월에 자신의 고향 논산으로 홀연히 낙향했다. 논산은 박 작가의 문학적 감수성이 자란 문학의 본향이다. 39년 만에 귀향한 논산에서 박 작가는 자신의 지난 시기가 붉은 노을처럼 저물어가고 있음을 보았다. 그렇게 찾아온 고요한 어둠의 시간 속에서 박 작가는 <논산일기>라는 산문집을 펴냈다.
“논산에서 겨울을 보내며 논산에 대해서 많은 걸 알게 되었어요. 논산이 저에게 익숙한 땅이 아니더군요. 이곳은 완전히 낯선 땅이었어요. 제가 모르던 너무나 많은 이야기가 묻혀 있는 고장이었습니다. 동학란에 목숨을 잃은 이들과 백제의 계백과 조선의 예법을 완성한 사대부들의 회한이 혼령이 되어 저를 찾아오곤 했어요.”
<논산일기>는 박 작가가 페이스북에 쓴 일기를 모은 것이다. <논산일기>에는 그에게 문학적 감수성을 심어준 고향 이야기와 술잔을 기울이다가 찾아온 명상들 그리고 일상에서 찾아낸 삶의 단편들이 담겨있다. 박 작가는 이러한 이야기들을 스마트폰에 검지로 써내려갔다. 박 작가의 일기는 처음에 30명의 친구가 열람하다가 몇 달이 지나면서 천 명을 넘어섰다. 박 작가는 외로워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는 데 논산에 홀로 내려와 있는 노작가의 마음이 왜 외롭지 않았겠는가.
“제 외로움은 주변에 사람이 없어서 느끼는 외로움이 아니에요. 작년에 펴낸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 이후에 할 말이 없어졌어요. 그 소설을 쓰고 나니 삶의 유한성과 존재론적인 고민의 시기가 끝난 거 같더라고요. 그래서 새로운 창작의 고민을 안고 이곳에 내려왔어요. 문학적인 고민이 빠져나가고 남은 빈자리를 채우지 못한 것이 외로웠던 거지요.”
스마트폰으로 글을 쓰는 것은 박 작가에게 녹록지 않은 일이었다.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아 짧은 글 하나를 쓰는데도 두세 시간씩 걸렸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스마트폰으로 글을 쓰는 재미에 흠뻑 빠졌다. 언제 어디서나 편리하게 생각을 독자들과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취해서 쓴 게 많아요. 알고 보면 페이스북이 아니라 취북이에요. 어젯밤에도 술에 취해서 페이스북에 일기를 쓰고 잤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지우려고 했더니 벌써 150명이나 읽었더라고요(웃음). 그렇게 쓴 글들이지만 제 안의 추상적인 고민이 상당히 구체화 되었고, 앞으로 가야 할 방향을 생각하는데도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젊음과 나이듦
청년 작가라는 호칭이 누구보다 잘 어울리는 박 작가이지만, 어느덧 그도 환갑을 훌쩍 넘긴 노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박 작가에게 나이가 든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나이 드는 것은 말할 수 없이 슬프고 고통스러운 일이에요. 지난 15년 동안 갈망기 문학이라 불리던 제 소설들은 전부 나이 들어가는 자의식이 만들어낸 시간 너머의 욕망 같은 것이었어요. 자본주의가 주입한 세속적인 욕망을 초월하고자 하는 욕망. 영원히 살고 싶은 욕망. 그리고 존재의 근원을 통찰하고자 하는 욕망이었지요. 어떤 문학적 전략이 있었던 게 아니고, 내 몸이 늙어가고 있다는 자의식이 너무 고통스러웠던 거예요. 문학이라는 건 작가 자신을 반영하는 거니까요.”
그런 가운데 박 작가는 <은교>라는 소설을 통해 그런 갈망과 정면으로 부딪쳤다. <은교>는 17세 소녀에 대한 70세 노시인의 사랑이라는 파격적 소재에서 출발해 죽음과 욕망에 대한 깊은 사색을 담은 소설이다.
“<은교>를 쓰고 마음이 상당히 편해졌어요. 삶의 유한성이나 죽음이라는 문제를 조금은 친구처럼 대할 수 있게 된 거 같아요. 은교를 통해서 내 고통스러운 매듭이 홀연히 풀어지는 거 같은 느낌을 받았지요. 그런 의미에서 <은교>는 나에게도 상당히 도움이 되는 소설이에요.”
박 작가의 머리카락은 어떤 것은 희고 어떤 것은 검다. 그처럼 박 작가의 어느 부분은 나이 들었고, 어느 부분은 젊다. 박 작가는 향기롭게 나이 들어가려면 내부의 늙은 것과 젊은 것을 질 좋은 양념으로 잘 버무려 발효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그 경계의 날카로움은 허물고 고유성은 유지할 수 있도록.
“젊은이도 습관으로 자기 삶을 운영하면 노인이고, 노인이더라도 새 길을 가고자 하는 열망이 강하다면 청년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보면 저는 여전히 청년인 거 같아요. 향기롭게 늙어가고 싶어요. 그리움은 멀고 시간은 가깝네요.”

극적인 S라인의 여인
박 작가는 원광대학교 재학시절에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당시 박 작가는 전주교육대학을 다니다 원광대학교로 편입한 상태였고 생계가 어려워 돈벌이를 하느라 학교에 제대로 출석하지 못했다. 그러니 4학년이 되어서도 박 작가는 선·후배는커녕 동기들 얼굴조차 잘 모르는 상태였다. 그런 박 작가가 국문과 한 학년 후배인 아내를 처음 본 것은 문예사조라는 수업시간 때였다. 당시 문예사조를 가르치던 교수는 지각하는 학생들에게 무안을 주기 위해서 일부러 뒷문을 잠갔다. 지각한 박 작가의 아내는 어쩔 수 없이 앞문으로 들어왔고, 무심히 고개를 든 박 작가는 문을 닫고 들어오는 아내의 뒷모습을 보게 된다. 그 뒷모습만으로도 마음을 빼앗길 정도로 아내는 아름다웠다.
“늘씬한 몸에 잘록한 허리. 이른바 극적인 S라인이었어요. 그 관능적인 뒷모습이 마음에 남았지요. 그날 스쿨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오는데 우연히도 아내가 옆자리에 앉더군요. 두근대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따라 내려서는 커피 한잔하자고 했죠. 그래서 다방에서 한 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눴어요. 사실 이야기를 나눴다기보다는 저 혼자 떠들었지요. 아내는 한마디도 안 하고 가만히 듣고만 있었어요. 그런데 나중에 안 사실인데, 아내는 제 말을 들으며 ‘이 사람은 어떻게 내 마음을 이렇게 잘 이해하고 있나?’하고 생각했대요. 그래서 연애가 시작된 거예요. 참 아스라한 일이네요. 아내가 지금은 배도 나오고, 그 S라인은 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어요. 뒷모습이 정말 섹시했는데 말이죠(웃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