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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과 법] 제사 풍속의 변화와 유해의 귀속
[여성과 법] 제사 풍속의 변화와 유해의 귀속
  • 전현정
  • 승인 2023.10.14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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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에 따라 풍속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제사를 지내는 모습을 보면 우리 사회가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제사를 지내야 한다는 의식이 약해지면서 간소하게 제사를 지내기도 하고 아예 제사를 지내지 않는 가정도 늘고 있다. 설날과 추석에 지내는 차례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법원의 판결에서 후손들이 제사를 서로 지내겠다고 다투는 사건도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최근 제사를 주재하는 사람, 즉 제사주재자에 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다. 장례 이후에 유골함에 담겨 봉안된 고인의 유해가 누구에게 귀속되는지가 쟁점이었다. 아버지인 고인이 배우자와 사이에 딸 둘을 둔 다음, 다른 여성과 사이에 아들을 낳았다. 아버지가 사망하자 장남은 화장을 한 다음 그 유해를 납골당에 봉안하였다. 고인의 처와 딸들은 장남을 상대로 고인의 유해를 인도해달라고 청구하였다. 원심법원은 제사주재자인 장남에게 유해에 대한 권리가 있다고 보아 장남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판단과 달리 원고의 손을 들어주었다. 공동상속인들 사이에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 장남을 제사주재자라고 해서는 안 되고, 피상속인의 직계비속 중 남녀, 적서를 불문하고 최근친의 연장자가 제사주재자로 우선한다는 이유를 들었다.

이 사건에서 원고들은 유해 인도를 청구하고 있는데, 원심법원과 대법원은 제사주재자가 누구인지를 판단하고 있다. 그 이유는 유해가 제사주재자에게 귀속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실 민법에는 유체나 유해가 누구에게 귀속되는지에 관하여 아무런 정함이 없다. 민법 제1008조의 3은 ‘분묘 등의 승계’라는 제목으로“분묘에 속한 1정보 이내의 금양임야와 600평 이내의 묘토인 농지, 족보와 제구의 소유권은 제사를 주재하는 자가 이를 승계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판례는 유해나 유체가 분묘에 묻혀있으니, 위 규정에 따라 분묘를 승계하게 되는 사람에게 유해도 귀속된다고 보고 있다. 이러한 논리를 전제로 대법원은 유해 인도 사건에서 제사주재자가 누구인지를 판단하고 있다.

15년 전인 2008년에 나온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는 고인의 공동상속인들 사이의 협의에 따라 장남 내지 장손자가 제사주재자가 되고, 공동상속인 가운데 아들이 없으면 장녀가 제사주재자가 된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반하여 2023년 5월에 선고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공동상속인들 사이에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 피상속인의 직계비속 중 남녀, 적서를 묻지 않고 최근친의 연장자가 제사주재자로 우선한다고 하여 판례를 변경하였다. 후손들이 제사주재자를 협의로 정해야 한다는 원칙은 그대로 유지하되,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에 대해서만 장녀가 나이가 많으면 장남보다 제사주재자로서 우선한다고 보아 성별에 따른 차별을 없앤 것이다. 다만 피상속인의 직계비속 중 최근친의 연장자라고 하더라도 정상적으로 제사를 주재할 의사나 능력이 없다고 인정되면 제사주재자의 지위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러나 사람이 죽은 다음 유해나 유체가 누구에게 귀속되는지를 제사나 제사주재자와 연결시켜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제사를 지내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 되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제사를 지내지 않는 경우에도 고인의 유해 등은 유족 중 누구에게 귀속되는지, 유해 등의 관리는 누가 해야 하는지 문제될 수 있다. 200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당시에도 고인의 유해 등을 제사와 연결시킬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제시되기도 했다. 제사를 누가 지내든, 제사주재자가 누구이든, 신체의 사후처리에 관한 고인의 의사가 유해 등의 귀속을 정하는 데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다.

고인이 자신의 유해 등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관하여 생전에 명확하게 의사를 밝혔다면, 고인의 의사를 따르기 곤란한 사정이 없는 한 공동상속인들이 고인의 의사를 존중하여야 할 것이다. 공동상속인들 사이에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에도 고인의 의사를 존중하여 유해 등을 처리해야 한다. 제사를 누가 지내는지, 아니면 누가 지내야 하는지를 기준으로 유해 등의 귀속을 결정하는 방식은 현대 사회의 제사 풍속에 맞지 않는다. 제사를 지내지 않는 가정에서 제사주재자를 정한다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다.

위에서 소개한 두 사례는 후손들이 서로 제사를 지내겠다고 한 사건이다. 이와 반대로 후손 가운데 아무도 제사를 지내지 않겠다고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고 고인의 유해 등의 관리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겠다고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이러한 경우에는 제사주재자를 정하기도 어렵고 유해 등의 귀속자를 정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분묘 등의 승계’에 관한 민법 규정은 제사를 지내는 전통풍습을 전제로 만들어진 것이다. 또한 대법원 판례는 유해 등의 귀속에 관한 명문의 규정이 없는 상태에서 현재의 법률을 전제로 판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제사를 지내지 않는 가정이 늘어나면서 법률이 현실에 맞지 않게 되었다. 새로운 입법을 통하여 유체 등의 귀속에 관하여 명확한 규정을 두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글 전현정 변호사 (법무법인 케이씨엘)

 

전현정 변호사는...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1990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23년간 판사로 일하다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를 끝으로 2016년 법원을 떠났다.
현재는 법무법인 KCL 파트너 변호사다.
한국여성변호사회 부회장, 법제처 법령해석심의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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