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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파 세모녀' 사망 9년 지났지만… 여전한 사회안전망 사각지대 
'송파 세모녀' 사망 9년 지났지만… 여전한 사회안전망 사각지대 
  • 이주영 기자
  • 승인 2023.09.26 10: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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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생활고를 겪다 자살한 것으로 추정되는 세모녀가 2014년 2월26일 오후 9시 20분께 서울 송파구 석촌동의 한 단독주택 지하1층에서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이라는 메모와 함께 70만원이 든 현금봉투를 남겼다. (서울지방경찰청 제공) 
사진 - 생활고를 겪다 자살한 것으로 추정되는 세모녀가 2014년 2월26일 오후 9시 20분께 서울 송파구 석촌동의 한 단독주택 지하1층에서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이라는 메모와 함께 70만원이 든 현금봉투를 남겼다. (서울지방경찰청 제공) 

최근 서울과 경기 일대에서 일가족 5명이 사망한 사건은 또 한번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를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송파 세모녀 사건'과 여러 면에서 닮은꼴이어서 9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달라진 게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이들 가족 중 1명은 이번달 송파구 빌라로 이사 온 후 주민센터에서 전입신고를 하면서 국민기초생활보장급여를 받을 수 있는지 상담한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가구 재산 기준'을 초과했다는 이유로 '최후 안전망'의 보호를 받지 못한 셈이다.

2000년부터 시행된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송파 세모녀 사건 이후 더 촘촘히 개정됐다. 이들은 서울 송파구 석촌동의 한 단독주택 지하에 살던 지난 2014년 2월 숨진 채 발견됐다. 지하 월세방에서 살던 세 모녀는 질병을 앓고 있는 데다 수입도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구축한 어떤 사회보장체계의 도움도 받지 못했던 것으로 확인돼 사회안전망 재구축 화두를 던졌다.  

◇ "위기 상황 가구들, 소득자산 인정기준 걸려 지원 못받는 경우 많아"

이봉주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난 25일 뉴스1과 통화에서 "우리나라는 소득인정액이 소득과 재산을 모두 소득으로 환산한 금액으로 보는데, 지금 당장 소득이 없고 빚이 많은데 처분할 수 없는 자산이 있으면 소득자산 인정기준에 걸려서 지원을 못 받게 되는 경우가 많다"며 "위기 상황에 처한 가구들을 재산으로만 판단하는 제도는 매우 위험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내년부터 생계급여 수급자 선정 기준을 넓힌다는 계획이다. 복지의 외형은 꾸준히 확대되고 있지만 세밀한 지원은 부족하다는 우려가 여전히 남아 있다.

지난 19일 보건복지부는 중앙생활보장위원회 심의를 거쳐 생계급여 수급자 선정 기준을 현행 중위소득 30%(1인 가구 월 최대 62만3368원)에서 35%까지 단계적으로 완화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재 생계급여를 받으려면, 가구의 소득인정액(소득과 재산을 소득으로 환산한 금액의 합)이 기준 중위소득의 30%보다 낮아야 할 뿐만 아니라 부양 능력이 있다고 판정받은 부양의무자가 없어야 한다.

A씨 친가 소유인 송파동 빌라에는 추락사한 40대 여성 A씨와 남편 그리고 딸 세식구가 거주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남편의 가족이 최근 살던 집 보증금을 빼 A씨에게 건네고 시어머니와 시누이가 이 빌라로 이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생계급여의 경우 2021년 10월부터 부양의무자 기준이 폐지됐다. 하지만 부모 또는 자녀 가구의 연 소득이 1억원을 넘거나 재산 9억원을 초과하면 생계급여를 주지 않는 예외 조항이 존재한다. 서울에 집 한채만 갖고 있더라도 이 기준을 넘어설 수 있어 오히려 복지 사각지대를 유발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송파 세모녀 사건 이후 긴급 복지 지원 차원에서 저소득 집단으로는 제도가 많이 확대됐지만 이번 사건은 자산 요건 기준을 초과해 (지원 대상이)될 수 없었다"며 "위기 상황에선 중산층도 도움받는 체계로 들어올 수 있도록 자산소득 환산 기준을 융통성 있게 적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 교수는 "독일이나 영국은 부채 등 채무 상황과도 연결을 시켜서 금융 상담 등 도움을 받게 했을 것"이라며 "단순히 '아니다' 통보로 끝나지 않고 다른 프로그램과 연계를 시켜줬어야 했다"고 강조했다.

◇ 1년2개월 동안 도시가스요금 체납했지만…'찾아가는 복지' 멈춤

이번 사건은 발굴관리 시스템의 허점도 여실히 드러난다. 일가족이 거주했던 서울 송파구 송파동 소재 빌라의 현관문 앞에는 채권 추심 전문업체의 '도시가스 장기체납 사태 외부 배관 절단·마감 사례'라는 안내문도 놓여 있었다. 도시가스 요금은 지난해 7월26일부터 지난달 28일까지 1년 2개월 동안 총 187만원이 밀려있었다. 

신용카드 대금 미납으로 채권추심 독촉장도 우편함에 가득했지만 누구도 '왜' 못 냈는지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았다.

'찾아가는 복지'는 복지부의 사업으로 출발해 2017년부터 행정안전부도 참여하고 있다. 보건·복지와 지방자치행정을 연결해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겠다는 취지지만 이번 사건에서 제대로 작동했는지는 의문이다. 

발굴관리 시스템은 단전, 단수, 단가스, 건보료 체납, 기초생활수급 탈락·중지, 복지시설 퇴소, 금융 연체, 통신비 체납 정보, 국민연금 보험료 체납 등 18개 기관에서 34종의 취약계층 관련 빅데이터를 수집해 위기가구를 선정하는 방식으로 시작한다.
 
이들의 집 앞에는 카드 미납대금 총 97만5000여원을 납부하라는 추심 방문록도 함께 발견됐다. 방문록에는 "부재중인 관계로 메모를 남긴다"며 "미 연락 시 향후 재차 방문을 드릴 수 있음을 양해 바랍니다"라고 친절히 적혀 있었다.

특수청소업체 대표 A씨는 "청소하는 사례 중에서 생활고로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례가 40%정도 되는 것 같다"며 "나이가 많은 사람일수록 우울감을 겪는 시기는 지나가고 월세를 1년 이상 못 내거나 전기하고 물이 끊겨 있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까지만 해고 긴급 생계비 지원이나 이런 부분들이 대체적으로 실효성이 떨어졌다"며 "이미 고독사로 돌아가셔도 보건복지 서비스 팸플릿이 현관문에 붙어 있는 경우도 있고, 상황이 안 좋은 사람들이 대체로 도움을 거부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덧붙였다. 또 A씨는 "어려운 분들은 당장 긴급 생계비가 문제가 아니라 상황이 우선 해결되고 희망이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봉주 교수도 "단순히 재산이 있다는 것으로 지원 서비스를 받지 못하게 했을 때 비극적인 일들이 발생한다"며 "가족간의 불화나 위기 상황 등 이런 사실도 지역사회에 일찍 발굴돼서 금전적인 문제와 더불어 복합적인 지원책이 있어야 했다"고 조언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자살예방 핫라인 1577-0199,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퀸 이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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