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7 21:25 (토)
 실시간뉴스
재벌가의 여인들⑤-오리온 이화경 부회장 편 “화통하고 화려한 성격의 이화경 부회장이 은둔형 CEO로 전락한 까닭”
재벌가의 여인들⑤-오리온 이화경 부회장 편 “화통하고 화려한 성격의 이화경 부회장이 은둔형 CEO로 전락한 까닭”
  • 홍성추
  • 승인 2023.11.06 08: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재계 분석

 

초코파이로 유명한 오리온 그룹은 ‘K푸드’업계를 선도하는 기업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이 그룹을 이끌고 있는 사람은 화교인 담철곤 회장이지만 사실상 내막을 들여다보면 그의 부인인 이화경 부회장이 막후 실력자임을 알 수 있다. 창업 회장의 차녀로 태어나 직접 경영에 참여해 한때 경영계의 ‘미다스 손’이라고 불릴 만큼 활발하게 활동했던 그녀가 최근 몇 년 동안 조용한 행보를 보내고 있다. 자매간 불화와 온갖 사법 구설수 등으로 이 부회장의 활동 반경이 좁아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화통한 성격만큼이나 화려한 이력을 자랑하는 그녀의 칩거는 머지않아 다시 경영 전면에 나설 것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이화경 부회장의 재등장 시점과 오리온 그룹의 영화가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가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이화경 부회장

 

초코파이를 생산해서 유명해진 오리온 그룹은 1955년 이양구 창업주가 귀속재산인 풍국제과를 불하받아 ‘동양제과’로 개명한 게 효시라고 할 수 있다. 이양구 창업회장은 함경남도 함주군 출신의 실향민이다. 그 시대 사람들이 대부분 그랬듯이 창업회장은 일제 강점기시절 상급학교도 진학하지 못하고 일본인이 운영하는 식료품 도매상에 취업해 생업을 이어가야 했다. 여기서 상술을 익힌 그는 식품도매상을 설립해 북한에서 떼돈을 벌었지만 분단과 6.25전쟁으로 전 재산을 잃고 부산에서 설탕도매업으로 재기하게 된다. 당시 유일하게 설탕을 생산했던 삼성그룹 창업주인 이병철회장과 효성그룹 조홍제 회장(당시 조 회장은 이병철 회장과 동업관계였다)과의 교분을 쌓으며 ‘설탕왕’으로 불리게 되었다. 사업 수완이 뛰어났던 그는 설탕 판매로 번 돈으로 삼척시멘트를 인수해 동양시멘트로 사명을 바꿔 한때 시멘트 왕국을 건설하기도 했다.

슬하에 딸만 둘이었던 이양구 회장은 사위에게 경영권을 물려준 최초의 재벌 총수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 당시만 해도 재벌 총수가 딸에게 경영권을 물려주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 지금은 딸들이 부친의 회사를 물려받는 일이 다반사이지만 당시로서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비슷한 케이스가 매경미디어 그룹 장대환 회장이라고 할 수 있다. 매일경제 창업주 역시 아들이 없어 맏사위인 장대환 회장에게 경영권을 이양했다. 이양구 창업 회장은 사위에게 혹독한 후계자 수업을 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사위라고 특혜를 준 것이 아니라 더 철저하고 더 강하게 키우기 위해 밑바닥부터 훈련을 시켰던 것이다.

첫 사위는 경기고와 서울대를 나와 사법고시를 패스한 검사 출신의 현재현 회장이다. 현직 검사였던 현재현 회장은 장인의 뜻에 따라 검사직을 사임하고 미국 스탠포드 대학에서 국제 금융을 공부하고 돌아와 후계 수업을 받게 된다. 사실상 모기업인 동양시멘트와 금융 쪽 회사를 맡아 이양구 회장의 후계자 역할을 했다. 둘째 사위가 이화경 부회장의 남편인 담철곤 회장이다. 그가 오늘의 오리온 그룹을 성장시킨 장본인이다.

화교인 담철곤 회장과의 러브스토리는 재벌가 연애사의 한 페이지 장식
 

오리온 담철곤 회장

 

담철곤 회장과 이화경 부회장의 러브스토리는 한때 재벌가에 화제가 될 정도로 유명했다. 담 회장의 부친은 대만에서 한국으로 이주한 화교로 알려졌다. 대구에서 한의원을 경영했던 그의 부친은 서울 외국인학교에 담회장을 유학시켰다. 이때 이 학교에 다니던 이화경 부회장을 만나면서 러브스토리가 시작된 것이다. 두 사람의 연애 사실이 알려지자 이 부회장 집안에서 엄청나게 반대했다. 그 당시만 해도 재벌 딸이 화교와 결혼 한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사랑이 너무 깊어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결국 두 사람은 결혼으로 이어졌고 담 회장은 장인의 부름을 받고 동양그룹 경영에 나서게 된다. 동양시멘트로 입사했다가 오리온의 전신인 동양제과로 옮겨 식품업 경영을 맡아 운영하게 된 것이다. 1989년 이양구 창업 회장이 타계한 뒤 가족간 회의를 거쳐 맏사위인 현재현 회장은 시멘트와 금융이 중심인 동양의 경영권을, 둘째 사위인 담철곤 회장은 제과와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각각 맡아 독립했다.

분리 당시 동양그룹과 동양제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현격한 차이가 있었다. 이양구 창업 회장이 맏사위에게 큰 기업을, 둘째 사위에겐 작지만 ‘초코파이’란 먹거리가 있는 알짜 회사를 맡겼던 것이다. 현재현 회장이 맡은 동양 그룹은 한때 국내 재계 랭킹 15위를 기록할 정도로 대기업 집단을 형성했다. 현 회장은 시멘트 중심의 제조업 군에서 금융업 중심의 그룹으로 재편하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다 1998년 IMF 구제금융 여파와 글로벌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그룹이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결국 그 파고를 못 넘고 2013년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각 계열사들은 다른 곳으로 매각되거나 파산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만다.

이때 현재현 회장은 불법 기업어음 즉 CP를 발행해 그 유명한 ‘동양사태’를 일으킨 주범으로 낙인되고 말았다. 결국 이 혐의로 2015년 구속돼 7년 형기를 마치고 2021년 만기 출소했다. 재벌 총수가 이렇게 장기 형을 복역한 예는 없을 정도로 현 회장은 인고의 세월을 보낸 불운한 재벌 총수가 되고 말았다.

이화경 부회장, 말단사원으로 입사해 경영수업

반면에 담철곤 회장은 동양제과를 중심으로 엔터 사업과 외식업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하며 확장 일로를 걸었다. 2001년엔 동양그룹과 완전한 분가를 이루면서 독자 영업을 확대할 수가 있었다. 계열분리하자 동양제과란 명칭을 버리고 ‘오리온’으로 개명해 동양과는 완전 별개 회사임을 천명하게 된다.

이화경 부회장은 말단사원으로 입사해 각 부서를 두루 거치며 경영수업을 받는다. 이화여대 미대를 나온 언니인 이혜경 씨는 애들 교육 바라지 등 가정주부 역할에 충실한 반면 이화여대 사회학과 출신인 이화경 부회장은 직접 경영 일선에 나서며 여성 경영인으로서의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성격도 화통하고 화려한 것을 좋아해 언니와는 대조적이었다.

그녀는 2000년대 초반 입사 26년 만에 오리온 그룹의 외식과 엔터 사업을 담당하는 CEO로 등극해 재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했다. 그녀가 진두지휘하며 만들었다는 초코파이 ‘정(情)시리즈’ 광고는 지금도 광고계에선 전설로 통하고 있다. 그녀는 국내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평정할 정도로 사업 수완을 발휘해 여성 CEO의 대명사로까지 칭송 받았다. 케이블 방송과 많은 엔터사업을 지금은 접었지만 그가 만든 영화투자 배급사인 쇼박스는 지금도 업계에서 선두주자를 달리고 있다. 1995년 베니건스를 들여와 2010년 바른손에 엄청난 차익을 남기고 매각하기도 했다. 모두 2000년대 초반의 일들이다. 이때가 그녀의 전성기였다고 할 수 있다.

두 자매의 갈등, 돌아오지 못할 강 건너

이화경 부회장은 이렇게 승승장구했지만 한편으론 부정적인 이미지로 그룹에 ‘오너리스크’를 몰고 오기도 했다. 첫 번째가 자매간 불화이다. 현재현 회장이 운영하던 동양그룹이 어려워지자 언니인 이혜경 씨는 동생에게 SOS를 요청하기에 이른다. 2013년 그룹이 파산직전에 이를 정도로 극심한 자금난에 시달리자 오리온 측에 지급보증을 요청했지만 거절한 것이다. 이를 두고 재계에선 좀 도와줘도 괜찮은 것 아닌가하는 여론도 있었지만 그랬을 경우 오리온도 수렁에 빠질 수밖에 없어 도울 수가 없을 것이란 현실론도 팽팽했었다.

결국 동양그룹은 몰락의 길을 걸었고 오리온은 때마침 불어온 초코파이의 중국과 러시아 특수로 대박이 터지게 된다. 완전히 극과 극을 걷게 된 것이다. 회사가 잘 나가는 한편으로 이화경 부부를 둘러싼 온갖 좋지 않은 얘기들이 터져 나오면서 검찰 수사와 국세청 조사 등이 이어지게 됐다. 언니인 이혜경 씨와의 갈등은 여러 건의 고소 고발로 이어지며 많은 생채기를 안겼다. 심지어 모친이 살던 자택을 놓고도 소송전을 벌이기도 했다. 두 자매의 갈등은 결국은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고 말았다.

언니와의 갈등 때문인지 이화경 부부를 둘러싼 또 다른 폭로도 잇따라 일어났다. 최측근이었던 전문경영인과 송사를 벌이면서 집안의 치부가 고스란히 외부로 노출되는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회삿돈 약 200억원으로 개인 별장을 지은 혐의로 피소되었는가 하면 회사 소유의 미술품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되기도 했다. 이러한 소송 등으로 이화경 부회장은 거의 외부 노출을 하지 않고 있다. 1998년 스위스 경제포럼에서 미래의 세계지도자로 선정되기도 했고 신세대 여비서들이 모시고 싶은 CEO로 선정될 만큼 국내외에서 인정받던 그였기에 더욱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세계적인 종합 식품회사로 성장

담철곤 오리온 회장의 장남인 담서원 상무. 22년 12월 상무로 초고속 승진을 하며 오리온 그룹은 3세 승계 작업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담철곤 오리온 회장의 장남인 담서원 상무. 22년 12월 상무로 초고속 승진을 하며 오리온 그룹은 3세 승계 작업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현재 오리온 그룹은 글로벌 제과산업 전문지인 캔디인더스트리가 선정하는 제과업계 글로벌 톱 15위에 선정될 정도로 세계가 인정하는 종합 식품회사로 성장했다. 화교인 담철곤 회장이 중국 특수를 잘 이용한 측면도 있지만 이화경 부회장이 사업 다각화 등으로 그룹을 성장시킨 공로도 크다고 하겠다. 언니와의 갈등을 안고 기업을 지킨 그녀의 뚝심 경영 역시 또 다른 평가를 받고 있다. 지금은 언론 노출을 꺼리며 은둔형 CEO로 전락하고 말았지만 언제든지 예전의 활발한 대외 활동을 보여줄 것으로 재계에선 기대하고 있다. 재벌가 딸로 태어나 뚝심의 경영을 보여주는 오리온 이화경 부회장의 또 다른 변신이 주목되는 순간이다.

글 홍성추(본지 회장) 사진 Queen DB, 뉴스1

홍성추 언론인

필자는 서울신문 기자 때부터 30년 넘게 재벌가를 취재해 온 재벌 전문기자. 서울신문 산업부장 때 기획 연재한 ‘재벌가 혼맥 인맥 대 탐구’는 재벌집안의 이면사를 다룬 최초의 기획이었다.이 기획은 나중에 ‘재벌가맥’으로 출간 되었으며 우리나라 최초로 재벌 3세를 정면으로 다룬 저서 ‘재벌3세’와 논문으로 ‘재벌가 분쟁 유형 연구’가 있다. 국내 최초로 재벌가 이야기를 다룬 유튜브 채널 ‘홍성추TV'를 운영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