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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딸 이민아 목사 먼저 보낸 초대 문화부장관 이어령이 딸에게 보내는 편지
얼마 전 딸 이민아 목사 먼저 보낸 초대 문화부장관 이어령이 딸에게 보내는 편지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12.07.13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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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었을 때는 별 소리 안 해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이더니 좀 별스러운 소리를 하게끔 되었더니 젊은이들이 안 온단 말이죠. 이게 아이러니죠.”

다양한 분야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이어령 박사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열정적인 일상을 보낸다. 이어령 박사에게 다양한 분야에서의 활동은 창조적인 욕망의 발로다. 그것에서 세속적인 결과물을 얻어내기보다 무엇인가를 탐구하는 과정을 더욱 중요시하게 생각한다는 이어령 박사. 한국사회를 움직이는 대표 석학으로 살아온 인생을 되돌아보기에도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이어령 박사는 지금 이 시간에도 누군가의 갈증을 해소해줄 물을 위해 황량한 사막과도 같은 지식의 땅에 우물을 파고 있다.

우물을 파는 것, 그것이 내 삶

이어령 박사는 지금까지 소설, 비평, 에세이, 시, 희곡 등 문학의 전 장르를 넘나들며 창작열을 불태운 인물이다. 다시 말하면, 이어령 박사는 한 우물만 판 사람이 아니라 그때그때 새로운 땅에 우물을 파서 그곳에서 물이 솟으면 마시지 않고, 다시 새로운 곳에 우물을 파는 사람인 것이다. 창조적인 욕망과 창작열을 통해 느끼는 ‘타는 목마름’은 단순히 물을 마심으로써 해결되지 않는다는 게 이어령 박사의 지론이다. 새롭게 무언가를 찾고 갈구하는 것이 문필가로서 살아가는 이어령 박사의 인생이다.


“창작의 욕망이 끊어지면 그 사람은 문필가로서 끝나는 겁니다. 끝없는 창조적인 욕망을 따라 여러 장르를 해왔기 때문에 우물에서 나오는 물이 아니라, 우물을 파는 동안 나오는 자갈, 찌꺼기들이 제 일생에 영혼의 흔적들인지도 모르죠. 그 자체는 값어치가 없을지 몰라도 그 흔적에서 애써 우물을 파고 아무것도 없었던 자갈땅, 바위틈에서 새로운 생명과 물이 솟아나는 일종의 영혼의 모험이랄까요. 그런 과정들이 읽는 아사람에게 전달되고 또 그것에서 공감을 느꼈을 때 그 사람도 저와 같이 우물 파기를 멈추지 않는 동행자가 될 것입니다.”
누군가 만들어놓은 우물을 마시는 사람이 독자라면, 우물을 파놓은 사람은 바로 작자, 즉 이어령 박사인 것이다. 이어령 박사는 창조의 과정이 창조로 얻어지는 것보다 더 귀하다고 말했다. 우물을 파는 것 자체가 삶의 큰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발표한 <우물을 파는 사람>은 저의 20대에서 80대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직접 쓴 글들이 함께 모여져 있는 책입니다. 그 책속의 여러 가지 말의 파편들을 모아보면 그러한 우물을 파고자 했던 갈증의 흔적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어령의 말 모음집인 <우물을 파는 사람>은 이어령 박사의 창조 과정에서 나온 여러 가지 것들을 우물파기의 동행자인 독자와의 유대감과 더불어, 공감과 같은 끈을 맺기 위해 출간된 책이다. 이어령 박사로부터 탄생된 창조적인 인생의 파편과도 같은 짧은 글귀들은 진실이 담겨 있어 더욱 명쾌할뿐더러, 보는 이들에게는 상상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자극제가 될 것이라는 게 이어령 박사의 설명이다.
“기승전결을 형식 논리로 맞추다 보면 밀도도 떨어지고, 안 해도 되는 말을 중언부언하게 됩니다. 진실이 담긴 짧은 글귀는 전후문맥이 없기 때문에 독자의 상상의 폭을 더 넓힐 수 있죠. 문맥에 따라 읽다보면 작가의 의도에 의해 ‘이렇게만 읽어라’가 되지만, 전체 본문에서 떼어낸 파편들은 자유로울 수 있다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기승전결이 확실한 논리구조 속에 갇힌 하나의 세포가 아니라, 마치 영화처럼 세포 하나를 길러서 그것들이 사라져 버린 전체의 모양을 상상할 수 있는 일종의 지적인 ‘쥬라기 공원’이 만들어진다는 거죠.”


그렇다면 이어령 박사는 왜 창작의 욕구를 우물 파는 행위에 비유한 것일까. 바로 우리의 인생이 끝없이 무엇인가를 하고 싶어 하는 갈증의 반복이기 때문이다. 이어령 박사는 그 갈증을 다른 사람이 채워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 바로 창작자라고 말한다.


“우물을 파는 사람은 창작 하는 사람을 비유한 것입니다. 글을 쓴다는 건 우물을 파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우리는 어느 글을 읽을 때 인생을 해결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 그런 글도 없죠. 단지 갈증을 채우면서 ‘이런 것이 인생이다’라고 하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Yes or No’의 문제가 아니고, ‘Maybe’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삶에 있어서 어느 노력이나 욕망의 끝에 우물물이 아마도 솟아날 것 같은 마음과 정신을 가지고 한 자 한 자 글을 써나가는 것이지만, 창조하는 사람은 우물에서 나온 물을 마시지 않고 또 다른 우물을 파는 사람입니다.”


평소 명상 외에는 특별한 건강관리법이 없다는 이어령 박사의 정력적 ‘삶의 근원’은 창조다. 이어령 박사는 돈이나 권력에 대한 욕심을 가졌다면 스스로 지금의 자신이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돈의 권력의 성취가 유한하다면, 창조 욕구는 끝없이 이어지는 끝을 알 수 없는 우주와 같은 무한함의 극치이기 때문이다.


“언어는 의미가 있는 호흡이기 때문에 호흡이 끊어지지 않는 한 끝없이 말합니다. 저에게 있어서 말은 그 자체가 창조이고, 사고의 영역을 넓히는 것입니다. 말을 다루는 즉, 인간에게 의미의 호흡을 부여하는 글쓰기를 택했기 때문에 살아 숨 쉬며 말을 할 수 있는 한 글쓰기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딸을 여읜 슬픔과 그리움을 시로 승화하다
이어령 박사는 스스로를 가족적인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도 주말에는 어떠한 스케줄도 잡지 않고 가족들과 밥을 먹을 정도로 가족을 극진히 챙긴다. 하지만 이어령 박사는 그간 공개적으로 남편이자 아버지로서 스스로에게 높은 점수를 줄 수 없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세속적인 의미에 있어서의 아버지 역할은 어느 아버지에게도 지지 않았는데, 글을 쓰다가도 아이들이 저를 찾으면 따뜻하게 안아주고 보듬어 주고 했어야 됐는데, 글을 쓴다는 이유로 그러지 못했어요. 그런 것이 아이들한테 상처가 되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죠. 아이들에게는 글을 쓰는 아버지보다도 따뜻하게 이야기하고 놀아주는 아버지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뭐 그리 대단치도 않은 글을 쓰기 위해서 아이들한테 좀 더 못해줬는지, 그런 것이 지금도 아쉬움으로 남아 있습니다. 즉, 물질적으로 아이들을 지원하는 사랑의 메커니즘이 아니고 사랑의 시를 주지 못한 점이 후회스럽다는 것이죠.”


특히 이어령 박사는 일찍이 유학생활을 하며 아버지의 사랑을 몸으로 실감하지 못한 딸을 이야기 할 때면 가족에게 충실하지 못했던 후회와 아쉬움을 이야기하곤 한다. 미국에서도 아버지의 든든한 지원을 받으며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았지만, 그것에서 행복의 조건을 찾지 않았던 故 이민아 목사는 항상 미국에서 고생한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물질적인 것은 아이에게도 안 남지만, 저에게도 남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물질을 초월한 사랑이 기준이 될 때 과연 아버지로서 아이들한테 잘 해줬는가 하고 돌아보게 되었고, 아이들은 물질을 기억하지 않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하기에 이어령 박사는 올해 3월 가족의 곁을 떠난 딸을 생각하면 그 그리움에 끝이 없다고 했다. 아직도 일상의 많은 부분에서 겹쳐지는 생전 딸의 모습을 떠올리면 그리움과 슬픔은 내면 깊숙이에 퍼진다.
“아버지로서 딸을 잃은 그리움은 말로 다 못합니다. 시도 때도 없이 칫솔질을 하다가, 구두를 신다가, 차를 타고 가다가, 혹은 딸아이가 앉았던 의자를 보면 ‘저기 앉아서 분명히 나를 보며 아빠라고 했었는데,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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