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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해서 더 아름다운 삶 대권도전 선언한 국회의원 이재오․추영례 부부
소박해서 더 아름다운 삶 대권도전 선언한 국회의원 이재오․추영례 부부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12.07.13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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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 곁에서 아무것도 도와주지 못했던
처지에서도 마음만은 절절하게 가족 곁에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줬던 남편”

작은 단독 주택과 소규모 빌라가 빽빽이 들어찬 서울 은평구 구산동에 위치한 이재오 의원의 자택을 찾아 가는 데는 꽤나 애를 먹어야 했다. 주소가 적힌 종이를 들고도 동네 골목골목을 샅샅이 뒤지다시피 해야 했고, 결국은 동네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5층짜리 빌라 사이 샛길 막다른 곳까지 걸어가니 작은 단독주택 문패에 ‘이재오’라는 이름이 보였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다닐 수 있을 정도의 좁은 마당길을 가로질러 집 안에 들어가니, 실평수 23평의 좁은 공간에 TV며, 소파며 낡은 살림살이들이 눈에 띈다. 정말 이곳이 5선 의원에 장관까지 지냈던 이른바 ‘정권 실세의 집’이 맞을까라고 고개를 갸우뚱할 정도다.


기자를 보자마자 날씨가 더운데 찾아오시느라 고생했다며 시원한 토마토주스부터 얼른 내어오는 이재오 의원의 아내 추영례 씨 역시 어려운 ‘사모님’ 보다는 인정 많은 ‘옆집 어머니’에 가까운 분위기다. 곧이어 잠시 바깥으로 산책을 다녀온 이재오 의원도 너털웃음을 지어보이며 집 안으로 들어온다. 사실 대외적으로는 소신에 따른 거침없는 발언으로 ‘저격수’라는 별명을 가진 이 의원이지만 집안에서 만난 그는 생각보다 훨씬 자상했고, 소탈했다. 거실 한쪽에 놓여 있는 작은 어항을 한참 들여다보고서는 “물고기들이 오늘따라 왜 이렇게 요동을 치지”라며 먹이도 줘봤다가, 인터뷰 중에도 간간히 물고기들의 상태(?)를 살펴볼 정도로 세심한 사람이기도 했다.


“남편은 참 정이 많은 사람이에요. 오히려 저보다 더 섬세하고, 마음이 약하다고 생각할 때가 많아요. 강하게 보이는 이미지와는 달리 부드러운 면이 훨씬 많은 사람이죠. 그런데 사람들에게는 무서운 인물처럼 오해를 많이 받는 것 같더라고요. 실제로는 오히려 시트콤의 주인공처럼 복잡하지 않고, 수시로 웃기는 사람인데 말이죠. 제가 집에 없을 때는 본인이 직접 꽁치 김치찌개를 끓여서 아이들과 맛있게 밥상을 비울 줄도 알고, 혼자 있을 때는 스스로 라면도 끓여 먹는 타고난 서민남자예요(웃음).”(추영례)

‘행복한 국민’ 위해 ‘가난한 대통령’ 될 것

4.11총선으로 은평구에서만 다섯 번째 당선된 대단한 기록을 세운 이재오 의원은 얼마 전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사실 처음 정치 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대권 도전을 목표로 뒀던 것은 아니지만 18대 총선에서 안타깝게 낙선하며 잠시 타국에서 성찰의 시간을 보낼 때부터 점차 결심이 섰다. 이제는 단순히 누군가를 대통령 만드는 데 치중하기보다 자신이 정권을 잡아 진정으로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어야겠다는 무언의 사명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제는 권력형 리더십으로 일어난 부패를 청산하고, 사람냄새 나는 새로운 리더십으로 나라를 열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 청렴생활을 바탕으로 대통령 출마 결심도 하게 된 것이고요.”(이재오)


이 의원은 대통령이 되면 대통령 집무실은 정부종합청사에 마련하고, 청와대도 박물관으로 개방하겠다는 계획이다. 또한 은평구 자택에서 정부종합청사로 지하철로 출퇴근하며 서민들의 목소리를 듣는 인간적인 대통령이 되고 싶다. 권력을 가진 자가 가장 먼저 달라져야 나라와 국민의 삶이 달라질 수 있다는 소신 때문이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 이 의원이 앞으로 극복해야 할 과제들이 많다. 지금 당장 이 의원 앞에 붙은 ‘MB정권의 오른팔’이라는 수식어도 그렇고, 새누리당과 이 의원에 대한 젊은 층의 편견도 그렇다. 앞으로도 그를 둘러싼 무수한 억측이 따를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아내는 남편의 진정성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남편의 갑작스러운 선전포고에도 군말 없이 그의 선택을 존중해줬다.


“제가 40여 년간 옆에서 본 ‘이재오’라는 사람은 늘 한결같았어요. 젊은 시절 교사로 일했을 때나 정치인으로 나랏일을 할 때나, 매일같이 새벽 5시면 일어나서 신문을 보고, 아침 산책을 하며 하루를 시작해요. 국회의원이나 장관일 때도 항상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했고요. 평생을 돈이나 명예 욕심 없이, 자신보다는 늘 대의를 위해서 살아온 사람이에요.”(추영례)


늘 한결같은 모습 때문일까. 은평구 30년 토박이인 이 의원은 야성이 강한 이 지역에서 여당 후보로 5선에 성공할 만큼 절대적인 지지를 받아왔다. 은평구에서 만큼은 그는 ‘의원님’이 아닌 ‘옆집 아저씨’였고, ‘친근한 이웃’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은 아직도 이 의원을 “재오야”라고 부른단다. 총선 직후 그가 대선출마를 선언했을 때도 지역구민들은 원망보다 열화와 같은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매번 강남에서만 대통령이 나오냐고, 이제는 은평구에서도 대통령이 나와야 될 때라고 하시던데요(웃음). 지역구민들은 저를 오랫동안 지켜보신 분들이니, 그만큼 믿고 지지해주시는 것 같아요. 기대하시고 응원해주시는 만큼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각오를 다집니다.” (이재오)

생활비 안주는 남편, 그래도 믿음과 존경을 주는 사람

이 의원은 정치인들 중에서도 청렴하기로는 정평이 나 있다. ‘검은 돈’ 한 번 받아본 적 없고, 지구당 운영비 역시 오롯이 자신의 국회의원 월급에서 사용하다보니 아내에게 주는 생활비는 늘 최소비용이었다. 이는 과거에도 마찬가지였다. 젊은 시절 민주화운동을 했을 때도 돈이 넉넉했을 리 없고, 민주화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유신정권 시절 약 10여 년간 교도소 생활을 했을 때는 말할 것도 없다. 지금껏 세 자녀의 교육을 포함한 가정의 모든 경제는 사실상 그의 아내가 옷가게를 운영하며 꾸려왔다.


“남편이 조금씩 생활비를 보태긴 했지만 상상도 못할 정도로 적은 돈을 줬죠(웃음). 남편이 5선 의원인데도 저는 아직도 국회의원 월급이 얼마인 줄 몰라요. 저는 괜찮은데 아이들한테는 많이 미안했어요. 아이들이 한창 자랄 때 해주고 싶은 게 많은데 그럴 수가 없었으니까요.”(추영례)


상황이 이렇다보니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도 수시로 맞닥뜨렸지만, 추영례 씨는 한 번도 남편에게 불평을 토로하거나 원망한 적이 없다. 돈을 빌미로 부조리한 권력과 손잡고 싶어 하지 않는 남편의 대의와 양심을 믿고, 존중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아내와 가족들은 그를 충분히 이해했지만 이 의원은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매번 적은 돈의 생활비밖에 줄 수 없음이 내심 많이 미안했다.


“직접적으로 표현한 적은 없지만,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나를 믿고 따라주는 아내에게 늘 미안하고 고마웠어요. 그런데 돌이켜보면 이 사람은 아마 나와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고난의 연속이었을 겁니다. 민주화운동을 하는 신랑 덕에 결혼식 날부터 사건, 사고의 연속이었으니까요(웃음).”(이재오)


1971년 한글날 정오는 이 의원 부부의 결혼식이 예정된 날이었다. 민주화운동가로서 결혼식 당일까지 강원도 원주에서 시국강연에 철야농성을 벌였던 이 의원이 결혼식에 네 시간이나 늦게 나타난 것. 또 하필 그날부터 민주화운동가들의 지명수배가 떨어져 결혼식장에는 신랑보다 경찰이 먼저 도착하는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드라마 속에나 나올 법한 황당한 상황이었지만 새색시는 의외로 의연하게 대처했다.


“저는 웬 정복을 입은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이 축하를 해주러 왔나 생각했어요.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남편을 잡으러 온 경찰이었더라고요(웃음). 옛날이나 지금이나 제가 제일 많이 하는 말이 ‘사정이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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