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7 14:50 (토)
 실시간뉴스
[여성과 법] 분식회계와 윤리경영
[여성과 법] 분식회계와 윤리경영
  • 전현정
  • 승인 2023.12.16 08: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올해 초 누가 SM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할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결국 카카오가 경쟁자인 하이브를 제치고 SM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하면서 막을 내렸다. 그러나 카카오가 인수 과정에서 하이브를 견제하기 위하여 SM엔터테인먼트의 주가를 인위적으로 띄웠다는 시세조종 의혹으로 수사를 받고 있다. 이와 함께 카카오는 계열사인 카카오모빌리티가 분식회계 논란에 휩싸였다.

카카오모빌리티가 분식회계를 한 것인지에 관해서 금융감독원이 감리를 하고 있다. 그 결과가 나와야 카카오모빌리티가 매출액을 부풀려 재무제표를 작성했는지에 관하여 정확한 내용을 알 수 있지만, 카카오모빌리티의 분식회계 의혹만으로도 충격이 컸다. 카카오만큼 기업규모가 크고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회사가 분식회계를 하였으리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분식회계는 우리나라 기업에서 뿌리 깊은 문제였다. 1990년대 말에는 분식회계가 우리 사회의 중대한 문제로 등장하였다. 특히 1997년 IMF 구제금융을 받은 이후에 불거진 대우그룹의 41조 원 분식회계는 상상을 초월했다.

분식회계는 영어로는 ‘window dressing settlement’이다. ‘window dressing’은 ‘쇼윈도 장식’ 또는 ‘겉치레’라는 뜻이다. ‘분식(粉飾)’이란 말은 평소에 자주 사용되는 단어는 아니다. 분식은‘내용이 없이 거죽만을 좋게 꾸밈’, ‘실제보다 좋게 보이려고 사실을 숨기고 거짓으로 꾸밈’이라는 뜻이다. 결국 분식회계는 ‘기업이 재정 상태나 경영 실적을 실제보다 좋게 보이게 할 목적으로 부당한 방법으로 자산이나 이익을 부풀려 계산하는 회계’를 말한다. 회사마다 분식회계를 하는 수법은 다양하다. 매출채권의 액수나 재고자산의 규모를 부풀리는 방법이 많이 사용된다. 분식회계 사실을 모르고 회사의 주식을 매입한 투자자나 분식회계를 한 회사에 대출을 해준 금융기관 등이 피해자가 될 수 있다. 분식회계는 좋게 표현한 것이고 실제로는 회계사기이다.

2005년경 서울고등법원 판사로 근무할 당시 대우전자 분식회계 사건을 맡아 판결을 선고한 적이 있다. 그 내용을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대우전자 주식을 보유한 개인투자자들이 대우전자와 외부감사인인 회계법인, 대우전자의 이사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분식회계를 이유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주식 취득자의 청구를 받아들였다. 외부감사인이 대상 기업의 재무제표를 검토하여 감사보고서를 작성한다. 이 보고서는 대상 기업의 재무상태를 드러내는 가장 객관적인 자료로서 일반투자자에게 제공·공표되어 그 주가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주식투자자로서는 대상 기업의 재무제표와 이에 대한 감사보고서가 정당하게 작성되어 공표된 것으로 믿고 이를 바탕으로 주가가 형성되었으리라는 생각을 하고 대상 기업의 주식을 취득하였을 것이다. 그 후 회사의 재무제표나 외부감사인의 감사보고서가 허위였다는 것이 드러났다면 그 회사와 이사, 그리고 외부감사인이 주가 하락에 따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이러한 결론은 상고심인 대법원에서도 유지되었다. 그 후에도 다양한 종류의 분식회계 사건을 판단할 기회가 있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은 매년 국제 회계투명성 순위를 발표한다. 우리나라는 총 63개국 중에 2017년 63위, 2018년 62위, 2019년 61위, 2020년 46위로 계속 순위가 상승하다가, 2022년에 53위로 하락하였다. 2022년에 발생한 오스템 임플란트 횡령 사건과 우리은행 횡령 사건이 영향을 주었을 것이지만, 회계투명성이 여전히 중하위권을 면치 못하고 있다.

회사는 직원의 개인적 일탈을 잘 막아야 하지만, 회사 스스로 재무제표를 왜곡하는 것은 더 큰 문제이다. 기업은 어려울 때 유혹에 빠지기 쉽지만, 회사가 잘 될 때에도 유혹에 빠질 수 있다. 기업의 재무상태가 좋지 않아 남몰래 분식회계를 해온 경우라도, 과감하게 그 고리를 끊을 수 있어야 한다. 기업의 진정성에 큰 관심을 가지는 세상이다. 진짜이거나 진짜 같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 드러났을 때 사람들이 떠난다. 분식회계에 대해 기업이 태도를 분명히 해야 한다. 정부도 이에 관해 필요한 조치를 하고 기업이 분식회계의 고리를 끊도록 도움을 주어야 한다.

올해부터 순차적으로 연결 내부회계관리제도가 도입되고 있다. 이것은 지배기업과 종속기업을 연결·통합해 재무제표를 관리하는 제도로서, 먼저 자산 2조 원 이상 상장사에 적용되고, 그 이하의 기업에 대해서는 2029년부터 적용된다. 2조 원 이상 상장사도 최대 2년간 유예를 신청할 수 있다. 그러나 2년 후에는 어차피 연결 내부회계관리제도를 도입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회사가 유예를 신청하지 않고 연결 내부회계관리제도를 도입하기로 하였다고 한다.

기업회계는 연속성이 있다. 한 번 분식을 하게 되면, 분식회계가 드러나기 전에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어렵다. 정상적인 회계처리를 하려는 기업이라면 첫 단추부터 제대로 끼워야 한다. 분식회계는 기업경영에도 해로운 결과를 가져온다는 인식이 확산되어야 한다.

글 전현정 변호사(법무법인 케이씨엘)

 

전현정 변호사는...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1990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23년간 판사로 일하다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를 끝으로 2016년 법원을 떠났다.
현재는 법무법인 KCL 파트너 변호사다.
한국여성변호사회 부회장, 법제처 법령해석심의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