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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가 여인들⑥-신영자 롯데 재단 의장 편 “유통업계 대모로 승승장구, 비운의 재벌가 딸로 전락한 파란만장한 삶”
재벌가 여인들⑥-신영자 롯데 재단 의장 편 “유통업계 대모로 승승장구, 비운의 재벌가 딸로 전락한 파란만장한 삶”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23.12.0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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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포커스
신영자 롯데재단 의장. 2016년 7월1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고 있다

 

롯데재단 신영자 의장을 재계에선 유통업계 대모로 불린다. 그러나 그녀는 재벌가 딸로 태어나 온갖 풍상을 다 겪은 어쩌면 비운의 재벌가 딸이다. 일본에서 성공을 바탕으로 한국에서 사업을 벌여 대 재벌로 성장한 롯데그룹 창업주인 신격호 회장의 장녀로 태어나 영어의 몸까지 되었던 그녀의 삶은 한편의 드라마나 다름없다. 지난 8월 8.15특사로 사면 복권돼 다시 기지개를 켜는 신영자 의장의 파란만장한 삶을 짚어 본다.

국내 재계 랭킹 5위권에 드는 롯데그룹은 경남 울주군 삼남면 출신의 신격호 회장이 단돈 83엔을 들고 일본으로 건너가 ‘조센징 장사꾼’이라는 소리를 들어가며 돈을 벌어 한국에 투자해 성장한 대 재벌이다. 신격호 회장이 일본으로 간 것은 1941년 우리 나이로 19살 때였다. 그는 당시 고향 처녀인 노순화씨와 결혼한 상태였다. 이때 한국인 부인 사이에 태어난 이가 바로 신영자 의장이다. 한국인 부인은 남편이 일본에서 성공했다는 소식을 듣지 못한 채 29살 때 요절하고 만다. 신 의장은 자연 할아버지 밑에서 자랄 수밖에 없었다.
 

신격호 회장, 일본 성공 후 장녀 신영자 제일 먼저 찾아

고故 신격호 명예회장
고故 신격호 명예회장

 

신격호 회장은 일본에서 성공해 제일 먼저 찾은 이가 바로 장녀인 신영자 의장이었다고 한다. 신 의장이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신격호 회장은 일본에서 롯데껌을 만들어 대 히트를 치며 일본 식품업계에 돌풍을 일으킨다. 일본에서 대성공을 거두고 있을 때 한국에서 투자 요청이 들어온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단돈 1달러라도 유치해 한국의 산업을 발전시키려고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5.16으로 집권한 뒤 경제개발 5계년 계획을 발표하는 등 경제 체질을 바꾸려는 데 문제는 자본이었다. 성공한 재일교포들을 국내에 초치해 투자를 권유했고 신격호 회장도 이에 호응해 국내 투자를 결심하게 된다.

일본에서 대 성공을 거둔 껌을 국내에 들여와 ‘롯데제과’를 설립했고 이 여세를 몰아 롯데호텔과 롯데백화점을 세우게 된 것이다. 롯데백화점과 롯데호텔의 등장은 국내 서비스산업의 문화를 바꾸는 단초가 되었다. 신격호 회장은 일본에서 번 돈을 국내에 투자해서 돈을 벌었지만 다시 일본으로 보내지 않고 국내에 재투자하는 방식으로 ‘롯데 왕국’을 이룩했다. 어쩌면 신격호 회장 개인 돈으로 투자와 재투자를 이루면서 무차입 경영을 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유통업이나 호텔업은 초기 투자비가 많이 들기 때문에 자본이 취약한 기업이나 개인은 하기 어려운 사업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신격호 회장은 개인 자본이 풍부했기 때문에 초기 투자에 어려움이 없었다. 자연스럽게 무차입 경영이 이뤄졌고 백화점과 호텔에서 엄청난 현금 수입이 쏟아지면서 다시 문어발식 경영을 할 수 있었다. IMF구제금융을 받을 때 롯데그룹이 더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은행 빚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그룹들이 은행 차입금을 늘리며 확장할 때 신 회장은 개인 돈으로 사업을 늘릴 수 있었다. 은행 차입금으로 사업을 확장했던 기업은 대부분 쓰러졌고 롯데그룹만은 오히려 더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롯데그룹과 다른 재벌과의 성장에 차이가 있다면 이런 부분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신격호 회장 적극적 지원, 신 의장 사실상 롯데백화점 경영 총괄 위치 올라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시절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시절

 

어쨌든 신격호 회장은 장녀인 신영자 의장을 일찍부터 경영에 참여시켜 경영인으로서의 소양을 가르쳤다. 부산여고와 이화여대 가정학과를 나온 신 의장이 경영에 참여한 것은 1973년 롯데호텔로 입사하면서였다. 호텔에서 서비스 업무를 맡았던 그는 1979년 롯데백화점이 개점할 때 백화점으로 옮겨 본격적으로 유통업무를 맡게 된다. 백화점 개점에 깊숙하게 관여했다는 후문도 있다. 한국 사업이 커지면서 신격호 회장은 한 달은 일본에서, 한 달은 한국에서 근무하는 이른바 ‘셔틀경영’을 했다.

처음 한국에 진출했을 때인 1960년대엔 동생인 신춘호 회장이 한국 롯데를 책임 경영하다 그가 농심으로 분가해 나가자 막내인 신준호를 그룹 부회장으로 앉혀 국내 롯데를 책임지도록 했었다. 현 신동빈 회장은 1990년대 들어 한국에서 상무 직함을 갖고 롯데 경영에 참여하기 시작했고 장남인 신동주 회장은 일본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이때 신영자 의장은 한국에서 숙부를 도우며 사실상 롯데백화점 경영을 총괄하는 위치까지 오르게 된다. 부친인 신격호 회장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신영자 의장과 비슷한 시기에 백화점 경영에 참여한 이가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의 막내딸인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이다. 둘은 이화여대 동창이기도 하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신 의장은 백화점에서 면세점 사업 진출 등 롯데그룹을 유통 재벌로 탈바꿈하는데 일대 공신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유통업계 대모로 칭송 받는다. 한마디로 당시 신세계 이명희 회장과는 격이 다른 경영인이었다.

나중에 이명희 회장은 삼성으로부터 신세계를 계열분리하고 이마트와 스타필드 등 사업 다각화에 성공해 유통재벌 총수로 우뚝 서면서 신 의장과는 경쟁 대상이 아니라는 평가를 받게 된다. 신 의장은 롯데그룹이 유통 재벌로 성장하는 데는 일조했지만 오롯이 자신의 사업을 만들지는 못했다. 신격호 회장이 주식을 조금 넘겨주고 경영에 전념할 수 있는 토양은 만들어 줬지만 분가 같은 것은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 의장 가족이 100%지분을 갖고 있는 회사가 몇 개 있지만 그 회사는 오직 롯데그룹에 의존해야 하는 성장에 한계가 있는 분야였다.
 

2016년 전격 구속...한동안 은둔 생활

신영자 의장의 이복 남동생 신동주 신동빈 회장
신영자 의장의 이복 남동생 신동주 신동빈 회장

 

재벌가 딸로서 전문 경영인으로서 승승장구하던 그녀에게 시련이 닥친 것은 2010년대 중반기부터였다. 여러 군데서 투서가 날아오고 때마침 부친인 신격호 회장의 건강도 급속하게 나빠지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복 남동생인 신동주 동빈 형제가 경영권을 놓고 갈등을 벌이며 한국과 일본에서 연일 매스컴을 장식하는 사태까지 이어진다. 신 의장은 어느 형제 편을 들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처음에 비쳐진 것은 현 회장인 신동빈 회장 편이 아니라 장남인 신동주 회장 편이다. 아버지를 전세 비행기로 일본으로 모셔가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를 전격 사임하게 만들었지만 신동빈 회장이 이사회를 통해 이를 다시 원점으로 돌리면서 경영권은 차남인 신동빈 회장이 차지하는 것으로 결론이 나고 만다. 이 와중에 신 의장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본격적으로 이어졌다.

결국 2016년 7월 특정경제범죄 가중 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횡령 및 배임 혐의로 신 의장이 전격 구속되기에 이르렀다. 신 의장은 억울하다고 저항했지만 1심에서 징역 2년의 선고를 받고 실형을 살다가 상고심에서 집해유예 선고를 받고 석방됐다. 이 사건 이후 신영자 의장은 전혀 얼굴을 내밀지 않고 은둔의 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던 그가 매스컴에 얼굴을 내민 것은 지난 광복절 특사로 특별 사면 명단에 이름을 올리면서였다.
 

8.15특사로 다시 모습 드러낸 신영자 의장 다음 행보?

지난 9월 서울 잠실 롯데월드에서 열린 ‘2023년 다문화 가정 및 이주노동자 추석맞이 롯데월드 초청 행사’에는 직접 참석해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이제부터 대외 행보를 하겠다는 신호로 읽히는 대목이기도 했다. 이날 눈길을 끈 것은 그녀의 직함이 ‘롯데재단 의장’이라는 사실이었다. 롯데백화점 대표 및 롯데면세점 대표를 하다 물러나고 구속 전까지 롯데재단 이사장이 공식 직함이었다. 이사장 직함도 구속되면서 전직으로 바뀌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최근 롯데재단 의장이란 타이틀을 달고 나타남으로써 앞으로 장학재단을 비롯한 여러 개의 롯데재단을 총괄하는 자리를 맡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신 의장이 이렇게 재단을 통해 얼굴을 내밀고는 있지만 과거처럼 경영 일선에 복귀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그룹 안팎에선 분석하고 있다.
 

장녀 장혜선 롯데삼동복지재단 이사장 등장에 시선

롯데재단 故신격호 선영 추석 참배. 신 의장 장녀 장혜선 롯데삼동복지재단 이사장 참석에 시선
롯데재단 故신격호 선영 추석 참배. 신 의장 장녀 장혜선 롯데삼동복지재단 이사장 참석에 시선

 

1941년 생으로 경영 복귀하기에는 어려운 나이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이날 행사에 눈길을 끄는 이가 한 사람 있었다. 그녀의 장녀인 장혜선 롯데삼동복지재단 이사장의 등장이다. 1남 3녀를 둔 신 의장은 그동안 차녀인 장윤선 롯데호텔 전무가 그룹 경영에 관여하며 사실상 모친의 대를 이을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장녀는 대외 활동이 전무하다시피하다 이번 행사를 통해 복지재단 이사장으로 얼굴을 내밀며 본격적인 대외 활동을 알린 셈이다. 두각을 나타내는 독자적인 사업은 별로 없지만 아직도 롯데 지주와 롯데제과 롯데쇼핑의 지분을 갖고 있어 언제든지 롯데 경영에 관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신동빈 회장도 그러한 그녀의 위상을 감안한 대우를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롯데그룹 창업주의 장녀로 태어나 백화점과 면세점을 국내 최고의 자리로 만드는 등 유통업계 대모로 불렸던 신영자 롯데재단 의장의 현재는 정중동이다. 롯데재단 의장이라는 타이틀로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지만 과거의 화려한 활동을 재연하기에는 여러 가지 넘어야 할 산이 있다. 재벌가 딸로서 온갖 풍상을 겪은 신영자 의장의 다음 행보가 다시 한 번 재계의 시선을 모으는 시점이다.

홍성추 언론인

필자는 서울신문 기자 때부터 30년 넘게 재벌가를 취재해 온 재벌 전문기자. 서울신문 산업부장 때 기획 연재한 ‘재벌가 혼맥 인맥 대 탐구’는 재벌집안의 이면사를 다룬 최초의 기획이었다.이 기획은 나중에 ‘재벌가맥’으로 출간 되었으며 우리나라 최초로 재벌 3세를 정면으로 다룬 저서 ‘재벌3세’와 논문으로 ‘재벌가 분쟁 유형 연구’가 있다. 국내 최초로 재벌가 이야기를 다룬 유튜브 채널 ‘홍성추TV'를 운영하고 있다.

글 홍성추(본지 회장) 사진 Queen DB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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