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7 18:15 (토)
 실시간뉴스
[여성칼럼] 파워있는 여성들의 목소리는 세상을 바꾼다
[여성칼럼] 파워있는 여성들의 목소리는 세상을 바꾼다
  • 이복실
  • 승인 2024.01.14 08: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작년 이맘때의 일이다. 내년에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한국을 방문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국은행과 IMF가 디지털 화폐에 관한 국제회의를 공동으로 개최하는데, 그때 총재가 참석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2019년 총재가 되고 나서 그녀는 한 번도 한국을 방문한 적이 없었다. 그녀는 전임자인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현 유럽중앙은행 총재)에 이어 IMF 역사상 두 번째 여성 총재다. 게오르기에바 총재는 평소 여성과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기로 정평이 나 있었다.

‘아! 그녀가 한국에 온다면, 여성 이슈를 외면하고 그냥 갈 리가 없다.’ 우리는 그녀를 초청하자고 뜻을 모았다. 우리는 세계여성이사협회 한국지부를 말한다. 나는 당시 회장을 맡고 있었다. 수소문하여 총재실에 편지를 보냈다. ‘IMF 총재가 한국의 여성들을 위해 희망과 응원의 메시지를 주신다면 큰 힘이 될 것입니다.’라며 총재를 위한 특별포럼을 제안하였다. 역시 우리의 바람과 기대대로, 그녀는 요청을 수락하였다. 초청장을 보내고 성사되기까지 일 년이 걸린 길고 지난한 여정이었지만, 그녀가 우리에게 주고 간 메시지는 기다림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가치가 있었다. 그녀의 진솔한 태도와 통찰력 있는 연설은 우리를 집중하게 하고 우리에게 힘을 주었다.

한국은 선진국 중 남녀격차가 제일 심한 나라

게오르기에바 총재는 지난달 13일 세계여성이사협회 한국지부 초청 기조연설에서 “한국은 선진국 중 여전히 성 격차가 가장 심하다. 여성 노동참여가 18% 더 적고, 남성 대비 31% 낮은 임금을 받는다”라고 지적했다. "한국이 근로 시간 성별 격차를 다른 국가들 평균 수준으로 줄일 경우, 1인당 소득이 18% 늘어날 것"이라고도 말했다.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앞으로 몇 년간의 성장세가 수십 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보일 것으로 예상하는 현시점에서 여성의 경제적 역량 강화는 경제성장을 촉진시킬 수 있는 강력한 수단 중 하나”라며 “여성 노동인구가 늘어날 때 한국을 포함한 선진국이 겪고 있는 문제인 경제활동인구의 정체 또는 감소 추세를 완화시킬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진 패널토론에 나도 총재와 함께 패널토론자로 참여하였다. 나는 여성 이사의무화제도를 도입하면서 느낀 교훈과 시사점에 대하여 발표하였다. 첫 번째는, 여성리더들간의 연대의 중요성, 두 번째는 여성 등 소수자의 참여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정책이나 제도의 필요성, 세 번째는 정책결정자의 의식이 중요한 점을 들었다. 향후, 공공기관에도 여성 이사의무화제도가 도입되어야 한다고 말하니, 그녀는 고개를 끄떡이며, ‘공공기관에도 도입하고, 지금은 한 명의 이사로 시작했지만, 두 명으로 확대하라’라고 공감해주었다. 이어서 나는 그녀에게 IMF가 여성 고위직 참여를 확대한 사례에 대하여 질문하였다. 그녀는“IMF는 최근 4년 동안 여성부서장의 비율을 25%에서 50%까지 늘렸으며, 5명의 고위 관리 중에서 저를 포함한 3명이 여성”이라고 답변했다. 이렇게 힘 있는 여성들의 목소리와 실천은 세상을 바꾸는 지렛대 역할을 하고 있었다.

“한국 여성의 경영 참여 확대를 돕고 싶어요”

몇 달 전 김 수이 캐나다 연금투자위원회(CPPIB) 사모펀드 글로벌 총괄 대표에게서 메일을 받았다. 서울에 갔을 때 세계여성이사협회 한국지부 임원들과 함께 만나자는 내용이었다. 전 세계를 무대로 일하는 그녀가 얼마나 바쁜지 아는데 무슨 일일까? 궁금하였다. 김 대표를 처음 본 것은 2017년, 세계여성이사협회 창립 2주년 포럼에서였다. 김 대표는 포럼에서 ‘기업지배구조에 다양성이 중요한 이유’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였다.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는 캐나다 상장회사들을 대상으로 2025년까지 이사회 내 여성 비율을 30%까지 높이라는 권고안을 채택하고 있다고도 했다. 김 대표는 “지금까지 이러한 권고안은 캐나다 상장회사에만 적용했지만 앞으로 아시아를 포함한 다른 나라 투자기업에도 확대하기로 했다”라며 “이사회 구성 변화에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기업에는 넛지 또는 필요할 경우 직접적인 요구를 통해 변화를 독려할 것”이라고 따끔하게 말했다.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는 1999년 설립되었으며, 전 세계 연기금 가운데 9위 수준의 자산규모이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서의 다양성을 강조하는 것은 언론을 통해서 알고 있었지만, 그녀에게서 사례를 직접 들으니 생생하게 와 닿았다.

드디어 한국에 방문한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한국 여성들의 경영 참여 확대를 돕고 싶어요.”라고 깜짝 제안했다. 어떤 방식으로 도울 수 있는지 의논하기 위하여 만나자고 했다는 것이다. 아니 이럴 수가. 한국의 그 어떤 여성 리더들에게도 들어 보지 못했던 말이었다. 글로벌에서 자본시장의 변화를 주도하고 있는 그녀가 한국 여성이라는 점도 자랑스러웠지만, 후배 여성들을 돕고 싶어 하는 마음은 더 감동을 주었다. 모든 여성리더가 다 그녀 같지는 않다. 여성을 위하여 목소리를 내고, 실천하는 그녀야말로 진정한 여성 리더라고 생각한다.

1호 여성들의 역할을 강조한 박유경 대표

그러한 신선한 충격은 세계 3대 연기금 중 하나인 네덜란드 공적연금의 운용사 APG (All Pension Group)의 아시아지역 책임투자총괄인 박유경 전무에게서도 받았다. 금년 10월에 개최된 세계여성이사협회 7주년 창립포럼 기조 강연에서 박 전무는 APG의 지속가능한 투자 원칙과 이행 현황을 소개하면서 성별의 다양성은 이사회의 다양성을 가늠하는 지표라고 강조하였다. 기업들에게 다양성을 갖추라고 촉구함과 동시에 여성 이사들에게도 적극적인 역할을 당부하였다. 여성 이사들 1호들이 잘해야 2호, 3호가 더 배출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초기에 진출한 여성 이사들이 더욱더 엄격하고 충실하게 이사로서의 감시 기능을 활발하게 해 줄 것을 강조했다. 만일 본인이 지주사의 여성 이사라면 계열사 여성 이사들을 모아서 어떻게 그룹의 다양성을 확보해 나갈 것인지 논의할 것이라며 대안도 제시하였다. 참석한 여성 사외이사들은 “따끔한 충고에 정신이 번쩍 났어요.”라고 말했다. 그렇게 진솔하게 이야기하는 여성 리더는 드물다. 소수자인 여성 리더들은 후배 여성들을 위한 하나의 의무가 더 있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선한 영향력이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성별 다양성으로 기업지배구조를 확립하고, ESG 가치를 확산하는데 최 첨병의 역할을 하는 그녀들이 한국과 한국의 여성들에게 주는 충고와 조언을 잘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파워 있는 여성들의 목소리는 세상을 바꾸고 있었다. 앞으로도 여성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실천할 수 있는 파워를 가진 여성리더들이 더 많이 배출되기를 바라는 마음 가득하다.

글 이복실(전 여성가족부 차관)

 

이복실은…
전 여성가족부 차관, 세계여성이사협회 한국지부 회장.
서울 시립대 도시행정학과를 졸업,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USC 에서 교육학으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1985년 여성으로서 네 번째 행정고시 합격자이다. 30년간 중앙부처에 재직했으며,
2013년 여성가족부가 설립된 이래 최초 여성 차관으로 임명됐다.
저서로는 <여자의자리 엄마의 자리>, <나는 죽을 때까지 성장하고 싶다> 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