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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경을 가지고 싶어한 아이 9 [낡은 오토바이와 올림푸스]
망원경을 가지고 싶어한 아이 9 [낡은 오토바이와 올림푸스]
  • 김도형
  • 승인 2023.12.22 10: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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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인시장흑백사진관 김도형 사진작가 첫번째 에세이집 '망원경을 가지고 싶어한 아이' 온라인 연재
사진 김도형 (인스타그램: photoly7)
사진 김도형 (인스타그램: photoly7)

 

굿으로는 누나의 병을 치료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큰 비용을 치르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급기야 읍내 시장에 있었던 재산목록 1호였던 싸전을 팔았다. 

누나를 마산의 정신병원에 장기간 입원시켜 치료를 해야 했으므로 큰돈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싸전을 6백만 원에 넘기고 허탈해 하는 아버지를 아버지 친구가 위로하던 모습이 생생하다. 

아버지는 그 이후로 다섯마지기 논 소작에 나섰다. 

집에서 5리 쯤 떨어진 논을 편하게 둘러보기 위해 중고 50cc 오토바이도 한 대 장만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넘어져 다리를 다친 이후로 그 오토바이는 방치되었다. 

그 신산했던 나날들 속에서도 '사진예술'에 대한 흥미가 싹트기 시작했다.

망원경을 가지고 놀던 내가 성장하자 렌즈를 통해 본 세상에 대한 관심이 카메라로 옮아갔다.

사진관에서 빌린 카메라로 작품사진을 촬영했다. 

그 카메라의 이름은 '올림푸스 펜 EE3 하프사이즈'였다. 

24장짜리 필름을 넣으면 48장이 찍히는 카메라였다. 

집에 방치되어 있던 오토바이는 초보 사진작가에게 빠른 기동력을 제공했다. 

위의 사진은 내게 큰 의미가 있다. 

'작품' 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찍은 최초의 사진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없어진 내 고향 가려리 교회종탑의 모습이다. 

몹시 추웠던 겨울이었는데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가 종탑의 실루엣을 찍었다. 

그 길가의 종탑은 근대문화유산에 등재해도 될 만큼 오래된 명물이었으나 도로가 확장되면서 없어졌다. 

내 어릴 적 그 종탑 집에는 몽이 형네가 살았다. 

몽이 형의 어머니는 교회 전도사였다. 

매년 크리스마스이브에 전도사님은 동네를 다니며 찬송가를 불렀다. 

고요한 밤에 조용히 울려 퍼지는 전도사님의 찬송가는 교인이 아닌 사람에게도 성탄의 기쁨을 느끼게 해주었다. 

서울생활을 하면서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간혹 명동에 갔었다. 

명동성당 앞길로 사람들이 밀려 다니고, 구세군 자선냄비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백화점 앞의 트리가 휘황한 빛을 뿜어도 나는 어릴 적 고향에서 맞았던 크리스마스가 훨씬 더 좋았다. 

성탄절에 긴 줄을 당겨서 울리던 종탑 종소리의 둔중한 여음은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두고 읍내에서 사 온 카드를 정성 들여 썼던 기억도 새롭다. 

한지를 바른 문에는 달빛이 희뿌였게 비쳤고 트랜지스터라디오에서는 캐럴이 가냘프게 흐르고 있었다. 

성탄카드에는 루돌프가 설원 위의 루돌프가 썰매를 끌고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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