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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경을 가지고 싶어한 아이 13 [김남도씨의 초상]
망원경을 가지고 싶어한 아이 13 [김남도씨의 초상]
  • 김도형
  • 승인 2024.01.22 14: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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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인시장흑백사진관 김도형 사진작가 첫번째 에세이집 '망원경을 가지고 싶어한 아이' 온라인 연재
사진 김도형 (인스타그램 photoly7)
사진 김도형 (인스타그램 photoly7)

 

내가 꼬마 때 마을에 '법부' 라고 불렸던 벙어리 홀아비가 한 분 계셨다.

나이는 내 아버지 또래였는데 나를 참 귀여워 했다.

나는 그 분을 어쩌면 아버지보다 더 따랐고 동네 어르신들은 그분이 별세하면 내가 상주 노릇을 해야 된다고 할 정도였다.

카메라와 확대기까지 장만하고 본격적인 사진 작품 촬영을 시작할 때 시골 사람 치고 큰 키에 속하는 그 분은 내 전문 사진 모델이었다.

하루는 아침에 우리 집 소를 몰고 그 분과 함께 마을 뒷산을 올랐다.

산의 공제선에서 소로 밭을 가는 사람을 실루엣으로 촬영하는 것이 그날의 콘셉트 였다.

위 사진은 우리 가게 앞에서 찍은 김남도씨의 포트레이트다. 

대학 1학년 여름방학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그분은 우리 집의 일을 많이 하셨다.

물론 삯은 지불했지만 내가 무사히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분 덕이 컸다.

먼당(산마루)에 있던 밭에서 엄청나게 큰 콩 단을 지고 좁은 산길을 잘도 내려오시더니 세월 앞에서는 어쩔 수 없으셨나 보다.

내가 대학공부를 위해 부산으로 떠난 뒤에 어머니가 노쇠해진 그 분의 빨래를 해드린다는 얘기가 들려오긴 했는데 어느 날 그 분이 돌아가셨다는 전갈이 왔다.

장례식에 참석하려고 고향에 가려는데 어머니는 어딘가에 살던 조카가 모시고 가버려서 장례식 자체가 없으니 오지 말라고 했다.

어릴 적에 나는 김남도 씨 집에서 밥도 많이 먹었다.

흰밥에 김치와 간장이 찬의 전부인 적이 많았지만 이상하게도 밥이 맛있었다.

방학이 되어 집에 왔을 때 그 분의 집에 들렀다.

주인 잃은 단칸방 집은 적막에 싸여있고 몇 안되는 장독은 장맛비에 젖고 있었다.

'김남도' 라는 이름이 있었어도 평생 '법부'라고 불린 한 사람이 우리 마을에 살다 가셨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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