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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경을 가지고 싶어한 아이 15 [밀가루 사진]
망원경을 가지고 싶어한 아이 15 [밀가루 사진]
  • 김도형
  • 승인 2024.02.08 10: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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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인시장흑백사진관 김도형 사진작가 첫번째 에세이집 '망원경을 가지고 싶어한 아이' 온라인 연재
사진 김도형 (인스타그램 photoly7)
사진 김도형 (인스타그램 photoly7)

 

고등학교 2학년 때 수학여행을 갔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내가 사진에 조예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친구들은 사진관에서 빌려온 올림푸스 카메라를 내게 건네며 기념사진 촬영을 부탁했다.

간단한 카메라 조작을 한 다음 구도에 신경을 쓰며 정성껏 사진을 찍어주었다.

여행을 마치고 학교에 등교하자마자 소동이 벌어졌다.

친구들은 내가 찍은 사진을 내밀며 사진이 왜이리 밝게 찍혔냐고 했다.

보는 순간 사진이 전문용어로 '노출과다' 되어 찍혔다는 것을 알았다.

등에 식은땀이 났다.

원인을 분석해보니 내가 사진을 너무 많이 아는 것이 탈이었다.

그 올림푸스 카메라는 내 SLR 카메라 미놀차 XD5 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간단한 노출측정 장치를 가지고 있었는데 내 카메라처럼 그것도 '조리개 우선 노출 시스템'이 있는 줄 착각했던 것이었다.

조리개 5.6 으로 찍힌 사진은 결과적으로 2stop 정도 오버 노출되어 사람이 밀가루를 뒤집어쓴 것 같은 밝은 사진이 되고 말았다.

나는 오히려 밝은 톤의 하이키 사진이 더 고급스럽다는 말도 안되는 소리로 우기며 위기를 모면했다.

사진 전문가로 통하는 내가 간단한 기념사진조차 망쳐놓은 것을 인정하기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지금도 그 친구들의 앨범에는 눈만 빠꼼히 보이는 그 밀가루 사진들이 보관되어 있을 것이다.

이제야 친구들에게 사과한다.

친구들아, 그때 사진 망쳐서 참 미안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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