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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과 법] 전세사기
[여성과 법] 전세사기
  • 전현정
  • 승인 2024.03.31 0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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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사기는 일어나서는 안 될 범죄였다. 전세금이 집값에 버금가는 거액이다 보니, 피해자의 충격이 엄청나게 클 수밖에 없다. 집값을 마련하지 못해 대출을 받아 전세금을 지급한 사람은 살 길이 막막해진다. 주거비 부담에 서울 변두리나 수도권 인근에 집을 마련하여 힘겹게 출퇴근을 하던 사람이 갑자기 한 푼도 받지 못하고 길거리에 나앉을 상황이 되었을 때 그 절망감을 이루 헤아리기 어렵다. 모든 꿈을 앗아갈 수 있는 범죄가 전국곳곳 여기저기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 사태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처음 전세사기라는 말을 들었을 때 어떻게 전세로 사기를 친다는 것인지 의아하였다. 종전에도 집주인이 전셋돈을 내주지 못해 소송을 하는 경우는 있었다. 하지만 전세제도를 이용해서 대량으로 사기행각을 벌인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전세제도는 대부분의 국민이 이용할 정도로 우리 사회에 확고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전세사기가 심각하니 전세를 없애자는 주장이 있다. 사실 전세는 우리나라에 특유한 제도이다. 외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전세는 임차인이 월세를 다달이 내는 대신 전세금을 한꺼번에 지급한다. 임차인이 집주인에게 전세금을 내고 집을 사용한 다음 전세기간이 끝나면 집주인으로부터 전세금을 돌려받는다. 집값에 가까운 전세금을 내지 않는다면 전세사기는 있을 수 없다. 그러나 확고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전세제도를 하루아침에 없앨 수는 없다. 전세제도를 이용하는 임차인으로서는 집주인으로부터 전세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 확실한 방책을 마련해 두어야 한다.

전세는 전세권 등기를 하는지 여부에 따라 두 가지 종류로 나누어진다. 부동산등기부에 전세권 등기를 하면 물권으로 보호된다. 전세권 등기를 하면 그 순위에 따라 전세금반환채권의 순위도 확보된다. 그러나 전세권 등기를 하지 않는 ‘채권적 전세’를 주로 이용한다. 이 경우에는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라 보호받을 수 있다. 임차인이 임차 주택에 이사를 하고 주민등록 전입신고를 하면 그 다음날부터 대항력을 취득하여 집주인이 바뀌더라도 전세금을 반환받을 때까지 집을 비워주지 않아도 된다. 다만 임차인이 위와 같이 대항력을 취득하기 전에 선순위 저당권 등이 설정되어 있다면 그 저당권자가 임차인보다 우선하게 되어 임차인은 경매 등으로 주택을 새로 취득한 사람에게 대항할 수 없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따르면, 2022년 7월부터 14개월간 검거한 전세사기 관련 사범이 1천 765건·5천 568명이며 그 가운데 481명이 구속되었다. 2023년 6월에는 전세사기 피해자의 주거불안을 해소할 수 있도록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어 2023년 7월부터 2년 동안 한시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전세사기의 수법은 다양하다. 전세사기범은 전속 공인중개사를 두고 매매가보다 높은 가격에 전세계약을 체결하여 전세금을 챙긴 다음 곧바로 부동산 소유권을 바지사장 명의로 넘겨버린다. 전세사기범은 전세금을 챙겨 사라지고, 임차인이 나중에 집주인인 바지사장으로부터 전세금을 반환받으려고 해도 재산이 없기 때문에 받을 길이 없게 된다. 또한 주택임대차보호법상 대항력이 전입신고를 한 다음날에 발생하는 점도 이용한다. 임차인으로부터 전세금 잔금을 지급받는 당일에 부동산을 담보로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고 근저당권을 설정해준다. 이렇게 되면 전입신고 다음날에야 대항력을 취득하는 임차인은 전입신고 당일에 근저당권을 설정한 금융기관에 순위가 밀리게 되고, 결국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한다. 공인중개사나 감정사, 브로커까지 조직적으로 개입한다. 이중, 삼중으로 전세계약을 체결하기도 하며, 피해자인 청년들이 전세자금을 대출받는 데 관여하기도 한다. 전세사기라는 신종 범죄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전세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가장 유의해야 할 것은 임대인이 주택의 실 소유자인지 여부이다. 그런데 전세금을 지급받고 난 후 바지사장 명의로 소유권을 넘겨버리면 임차인은 전세금을 반환받기 어렵다. 전후 사정도 모른 채 푼돈에 눈이 어두워 자신의 명의를 함부로 제공하는 바지사장들도 없어야 하겠고, 이에 가담하는 공인중개사도 없어야 이런 범죄가 사라진다.

최근 전세사기의 여파로 다가구주택에 대한 전세 거래가 급감하고 월세 거래가 70%를 넘었다고 한다. 다가구주택은 단독주택에 여러 가구가 거주할 수 있는 구조로 된 주택이다. 호실별로 등기가 되는 다세대주택과 달리, 다가구주택은 호수별로 등기가 되지 않고 한 채로 소유권이 등기된다. 다가구주택 한 채에는 19세대 이하가 거주할 수 있다. 전세사기로 공인중개사의 책임이 강화되자 공인중개사들도 다가구주택에 대한 전세거래를 꺼린다고 한다.

신축빌라나 다가구주택에 대하여 매매가보다 높은 전세가를 부르는 경우에는 전세사기일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신축빌라나 다가구주택 같은 경우에는 시세를 확인하기가 어렵다. 시세를 확인할 수 없는 이런 건물은 아예 전세를 얻지 않는 편이 안전하다고 조언하는 전문가도 있다. 주택도시보증공사의 전세보증보험 제도를 이용할 수 있는지 알아보는 것도 좋다. 전세계약을 체결한 후에도 소유자가 바뀌었는지, 선순위 저당권이 설정된 것은 아닌지 등 주택의 권리변동 사항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책이 미봉책임은 물론이다. 법과 제도의 허점을 예리하게 파고든 전세사기에 대한 묘책을 찾기 쉽지 않다. 그래도 문제를 발견하는 대로 하나씩 해결해 나가야 한다. 전세제도, 특히 채권적 전세의 가장 큰 문제는 전세를 공시하는 방법에 있다. 주민등록 전입신고는 임차권 공시방법으로는 매우 미흡하다. 누구나 볼 수 있도록 전세나 임대차를 공시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다가구주택에 전세나 월세를 얻고자 하는 사람을 위해 근본적인 개선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글 전현정 변호사(법무법인 케이씨엘)

 

전현정 변호사는...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1990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23년간 판사로 일하다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를 끝으로 2016년 법원을 떠났다.
현재는 법무법인 KCL 파트너 변호사다.
법제처 법령해석심의위원,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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