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인시장흑백사진관 김도형 작가가 보여 드리고 들려 드리는 서정적 사진과 서정적 이야기
1983년의 어느 봄 날.
나는 내 고향집 사랑방에서 세상을 뜰 뻔했다.
진짜 그랬다면 사인은 하이포 중독.
그날은 시골의 고교생이 가당치도 않게 사진확대기를 장만하고 첫 사진인화를 하던 날.
밤이었고 보름 언저리의 달이 있었다.
달빛이 새들어 올까봐 장지문에 바른 것은 검은 비닐.
빛만 들어오지 못한 것이 아니라 안팎의 공기마저 단절.
내가 그것을 어떻게 알았겠는가.
현상액 속 백지 인화지에서 피어 오르던 마술 같은 이미지를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는 순간 방바닥에 쓰러졌다.
간신히 비닐을 뜯어내고 문을 열어 나는 살았다.
심한 초산 냄새를 가진 사진 정착액 하이포.
사실 그것은 마시면 죽는 독극물이란 것을 알게된 것은 나중.
환기의 틈이라곤 없던 그 좁은 방.
지나고 보니 웃음난다.
그런데 요즘 그 하이포 냄새가 그리운 것은 왜인가.
흑백필름 한 통 사서 니콘 FM에 끼우고 봄마중 나가볼까.
양평 국수리 벚꽃 피었을라나.
저작권자 © Queen 이코노미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