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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경을 가지고 싶어한 아이 21 [편견]
망원경을 가지고 싶어한 아이 21 [편견]
  • 김도형
  • 승인 2024.04.15 11: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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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인시장흑백사진관 김도형 사진작가 첫번째 에세이집 '망원경을 가지고 싶어한 아이' 온라인 연재
사진 김도형 (인스타그램 photoly7)
사진 김도형 (인스타그램 photoly7)

 

언론사 입사 시험의 과목은 국어, 영어, 상식, 직무실기였다.

‘아카데미 토플’과 ‘이재옥 토플’ 그리고 시사상식 책 몇 권을 구입하고 일간 신문을 탐독했다.

도서관 1층과 2층의 중간에 있던 다락방 같은 열람실을 1.5층이라고 불렀는데 나는 거기의 구석에 자리 잡고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했다.

고시 공부에 뜻을 둔 학생들도 조용한 그곳을 선호했다.

그 학생들과는 오고 가다 눈인사 정도를 하게 되었는데 하루는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법대생과 휴게실에서 처음으로 얘기를 나누었다.

그 학생이 사시를 준비한다는 사실은 공부하고 있는 책을 보고 알 수 있었다.

나보고 무슨 학과를 다니냐고 묻기래 사진학과라고 대답했더니 놀라는 표정으로 사진학과 학생이 무슨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하냐고 했다.

나는 웃으면서 “사진학과 학생이 열심히 공부하면 안 된다는 법이 어느 법전에 있나요?” 라고 물었다.

입사 영어 시험을 위해 이왕이면 영문학과 수업을 듣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영문학과 수업 수강 신청을 했다.

첫 수업 날 가보니 영문학과 학생들 외 타과의 학생은 내가 유일했다.

교수님은 칠판에 'melting pot' 이라고 써놓고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느냐고 물었다.

아무도 대답을 안 하기에 내가 '멜팅 팟' 의 사전적인 뜻은 용광로인데 미국 같은 이민자가 많은 사회에서 인종과 문화가 뒤섞이는 현상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대답을 마치자 교수님과 학생들의 시선이 내게로 쏠렸다.

나는 그 과목을 입사시험 공부하듯 했기에 A플러스 점수를 받았다.

한편 그 무렵은 민주화 투쟁이 한창이었던 때라 도서관 내부로 최루탄이 날아들기도 했다.

학내시위 취재를 위해 신문사의 사진기자나 방송사의 촬영 기자들이 찾아왔을 때 나는 그 사람들에게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언론사 입사 시험의 유형에 관한 정보를 얻기 위한 기회였기도 했고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계기도 됐기 때문이었다.

그때 들었던 얘기는 나를 놀라게 했다.

사진과 영상 기자들의 출신 학교는 서울 소재 상위권 대학 일반학과 출신이 대다수였고 심지어 서울대 출신도 있다는 사실에 다리의 맥이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은 바로 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 사실은 오히려 나를 더 채찍질하는 계기가 되었다.

다시 연필을 굳게 잡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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