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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아 전 아나운서가 말하는 ‘도전의 의미'
유정아 전 아나운서가 말하는 ‘도전의 의미'
  • 박천국 기자
  • 승인 2014.05.23 15: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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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과 노무현시민학교에서 찾은 제2의 인생

 
지난 대통령 선거 당시 문재인 시민캠프의 대변인으로 활동했던 유정아 전 아나운서가 최근 노무현시민학교의 교장에 선임됐다. 연극배우로 활동하며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그이에게 또 한 번의 새로운 기회가 주어졌다. 자신의 인생에서 한 번도 교장이라는 자리를 생각해 본 적 없는 그이는 대외적으로 정치색이 짙은 자리를 두고 고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건전한 시민의식을 발전시키는 시민학교의 순기능을 부정할 수 없었다. '민주주의의 최후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라는 노무현시민학교의 설립 정신이 결국 그이의 마음을 움직였다.

취재 박천국 기자 | 사진 양우영 기자

지난 2012년 문재인 시민캠프에서 대변인으로 활약했던 유정아 전 아나운서는 선거 패배 이후 상실감과 무력감으로 꽤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심지어 대변인 이미지가 그이의 방송활동에 걸림돌이 되어 방송 섭외가 뚝 끊겼다. 정신적인 생채기가 채 아물기도 전에 방송 진행자로서 설 자리마저 잃었다. 그럴수록 그이는 기존에 하고 있었던 저술과 강연활동에 주력하면서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나갔다.
최근 연극 <그와 그녀의 목요일>에 출연하게 된 것도 일차적으로는 방송 진행자로서 이렇다 할 활약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기회이기도 했다. 하나의 길이 막혀 옴짝달싹 못하고 있는 사이 새로운 길이 보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길이 열렸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신을 계승한 노무현시민학교 교장을 맡게 된 것이다. 기회가 도전을 낳는다는 말처럼 그이에게 찾아온 두 가지 기회는 기꺼이 고통을 감내할 만한 행복한 도전이다.

정치색을 넘어선 시민교육의 힘을 알린다

 
노무현시민학교는 5년 전 노무현 재단과 함께 설립됐다. 노무현의 시대정신을 계승한 노무현시민학교는 지난 5년간 시민들이 깨어 있는 의식을 갖도록 돕기 위해 다양한 분야의 강좌를 개설했다. 정치적 메시지와 민주주의, 그리고 시민의식과 연관된 강좌는 역사, 문화, 클래식 음악, 물리학, 정신분석학 등 인문학과 공학, 그리고 의학을 넘나드는 학술적 강의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이 역시 교장직을 수락하기 전까지 시민학교에 대한 편견을 가진 한 사람이었다. 이른바 '친노 인사'들이 강사진으로 다수 포진된 시민학교의 특성상 정치색을 쉽게 지울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대변인으로 활동하던 시절 시민캠프에서 홍보 파트 일을 맡았던 전임 교장 선생님으로부터 신임 교장직에 대한 제안을 받았어요. 내부적으로 추천을 받아 최종 이사님과 전임 교장 선생님께서 결정을 내리신 거죠. 노무현 정신을 계승한다는 측면에서 정치적인 색이 있다고도 볼 수 있고, 교장이라는 직함을 인생에서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일을 잘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들어서 많은 고민을 했어요. 하지만 재단이 변화를 모색하던 과정에서 재단 속에 갇힌 이미지가 아니라 정치색을 배제한 조금 다른 이미지를 원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의미에서 저를 선정했다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 같다는 결심을 하게 된 것이죠."
그이는 신임 교장으로서 새로 온 사람이라는 티를 내지 않기로 했다. 자발적이고 유기적으로 운영되는 조직 체계에서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기보다 함께한다는 동질감과 팀워크가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아직 많은 시간이 흐르지 않았지만, 그이는 동참과 공감 속에서 교장이 지녀야 할 리더십을 자연스럽게 형성해 가길 희망했다.
"기존에 시민학교가 자발적인 시스템에 의해 잘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제가 교장이 되었을 때 무엇인가를 바꾼다거나 더 잘하겠다는 느낌보다는 기존 시스템에서 같이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해 보였어요. 봉하마을에서 진행된 청소년캠프에 다녀온 적이 있는데 2박 3일 동안 만난 학교 식구들은 정말 열심히 일하고 올곧은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잘 가고 있는 수레에 힘을 더하는 정도라고 생각해요."
교장이 된 그이의 소식이 인터넷을 통해 알려지면서 그동안 대외적인 지명도가 낮았던 시민학교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최근 들어 시민학교 홈페이지 방문자 수가 크게 늘어날 정도로 '유정아 효과'가 꽤 큰 파급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 정도로 관심을 받게 될 줄 몰랐는데 제가 교장이 되었다는 뉴스가 나온 이후 어떤 날은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오르더라고요(웃음).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노무현시민학교가 어떤 곳인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학교 홈페이지를 방문하는 분들도 많아졌다고 해요. 저뿐만 아니라 많은 학교 측 관계자들이 그런 부분을 반가워하고 있죠."
그이는 당분간 시민학교를 대외적으로 알리는데 진력할 생각이라고 했다. 외부 행사를 통해 시민학교의 얼굴이 되는 것은 물론, 후원회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강좌를 개설해 시민학교의 외연 확대를 이끌어내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내부적인 회의를 거쳐 진행되는 일들을 체크하는 것이 교장으로서의 주된 업무예요. 그러면서 학교에서 하는 일에 있어서 다른 조직과 연계하는 일을 할 때 미팅을 통해 학교를 알리는 역할도 맡고 있죠. 얼마 전에 남아공 대사와 미팅을 한 적이 있어요. 만델라 재단 측 인사가 영화 상영 때문에 온 적이 있는데 당시 남아공 대사관에서 많은 도움을 줬어요. 그런데 대사가 시민학교가 어떤 곳인지 알고 싶다고 해서 교장으로서 대외적으로 처음 한 일이 남아공 대사와의 미팅이었죠. 앞으로 그런 대외적인 활동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시민학교 내에 문화나 예술 강좌를 더욱 늘려서 후원회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의 참여를 더욱 유도했으면 좋겠어요."

 
연극은 취미활동이 아닌 또 다른 생계

그이는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던 배우 조재현의 권유로 연극 무대에서 서게 됐다. 대선 이후 패배감에 젖어 회복할 수 없는 무력감에 빠져 살 때쯤 조재현은 그이에게 연극 <그와 그녀의 목요일> 공연에 초대했다. 연극이 끝난 이후 연극 연출가와 작가와 만난 자리에서 그이는 다음 번 재공연 때 함께해 보자는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그이는 정통 연기 경험이 없었지만, 알 수 없는 기대감으로 그 자리에서 반색을 표했다.
"솔직히 그런 제안을 받았을 때 못할 것 같지 않아서 좋다고 했는데, 조재현 씨로부터 막상 진짜 제안을 받으니까 망설이게 되더라고요. 조재현 씨의 극장에서 개관 기념 연극을 하는데 저에게 배역을 준다는 것이었죠. 이제 막 정식으로 시작하는 배우여서 망설여졌지만, 제 몸속의 어딘가에서 자신감이 차올랐는지 '하겠다'고 답했죠."
2010년 여름 설치미술가 양혜규 작가의 작품에서 경험한 무대는 그이의 기억 속에 오롯이 남아 있다. 2시간 동안 특이한 이야기들을 낭독하거나 무대를 혼자 걷는 등 조명 효과나 비디오 작업과 함께 심오한 메시지를 표현해낸 것이다. 예술가적 기질이 없다면 무척 난처하고 고통스러웠을 경험일 수 있지만, 그이는 그 두 시간을 기다렸다고 했다. 그이에게 진행자로서 무대에 섰던 느낌과는 다른 특별한 희열을 안겨줬던 것이다.
"이전에 클래식 음악회의 사회도 좋아서 했지만 그 일이 무사히 끝나기를 기다리는 마음이 컸지, 그 무대에 서는 시간을 기다린 적은 없었어요. 하지만 설치미술가의 무대는 달랐죠. 어느 순간 무대에 서는 그 두 시간을 제가 기다린다는 느낌을 받았으니까요. 이전부터 연극에 대한 꿈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무대에 서는 두 시간이 즐겁다면 연극 무대도 좋지 않을까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연극을 대하는 그이의 자세는 누구보다 진지했다. 카메오 출연이나 취미 활동 정도로 연극 무대를 가볍게 생각했다면 도전 자체가 쉽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연극은 그이에게 또 다른 생계나 다름없어 보였다. 실제로 대변인 활동 이후 방송 일이 급격하게 줄어들기 시작했고 급기야 작년부터는 일을 거의 하지 못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 무렵 그이에게 연극이라는 새로운 활동 무대가 생겼다. 무대에 대한 호기심에서 시작했지만 연극배우로 활동하면서 얻는 즐거움과 성취감은 시간이 갈수록 커져만 갔다. 그러자 다른 출발선에서 시작했을지 모르지만 기성 배우들 못지않게 무대에 대한 간절함과 절실함을 진심으로 이해하게 된 것이다.

"솔직히 지금은 방송보다 연극이 더 즐거워요. 아나운서는 분명한 자의식을 가지고 방송 현장에서 방송의 모든 부분을 체크하는 역할을 한다면, 연극배우는 자신이 맡은 배역 속에 자의식을 얼마나 없애는지가 중요하죠. 아마 그런 아나운서의 역할에 익숙하다 보니 연극 무대에 섰을 때 연출자로부터 무대 집중도가 제로에 가깝다는 따끔한 평가를 받았어요. 물론 저를 배우로서 훈련시키기 위한 조언이었지만, 자의식이
많아서는 무대에서 좋은 연기를 할 수 없다는 깨달음을 얻게 됐죠. 연기의 매력은 바로 자의식을 잊은 채 연기에 몰입하는 순간이 아닐까 생각해요."
방송인 혹은 대변인으로 활동했던 그이의 이름과 무관하게 연극배우 유정아를 바라보는 관객의 평가는 대체로 호의적인 듯했다. 그이는 "커튼콜에서 이름을 호명할 때 관객의 박수 소리로 그날 자신의 연기에 대한 반응을 짐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연극 무대에 잔뼈가 굵지 않은 연기자로서 기성 연기자들 못지않게 관객의 호응을 이끌어낸다는 것에는 분명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예전에 연극을 본 관객의 반응이 궁금해서 블로그에 쓴 관람 후기를 본 적이 있어요. 배종옥 씨가 나오는 공연인 줄 알고 갔다가 아나운서 출신의 '유정아'라는 배우의 연기를 처음 접했는데 그 배역에 빨려 들어갔다는 좋은 평가를 해주셔서 기분이 좋았죠."
그이에게는 여전히 '아나운서 출신'과 '스피치 전문가'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얼마 전에는 서울대학교에서 10년간 맡았던 말하기 강좌를 그만뒀다. 스스로 자기계발을 하지 못하고 매너리즘에 빠졌다는 판단이 서자 주저 없이 연단에서 내려오기로 결심한 것이다. 앞으로 또 어떤 도전의 기회가 주어질지 모르지만, 그이에게 지금 당장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연극배우로서 차기작을 찾는 일과 노무현시민학교를 알리는 일이다.
"이번에 출연한 연극 이후로는 제의가 들어온 작품이 아직 없어요. 사실상 연극배우로는 백수 상태나 마찬가지죠. 물론 이번에 맡은 배역이 제 성향과 비슷해 이질감 없이 연기했던 것 같아서 차기작이 들어왔을 때 새로운 배역을 잘할 수 있을지 걱정도 돼요. 하지만 배우가 차기작을 찾는 건 당연한 일이잖아요? 또 시민학교 교장으로서도 건강한 진보와 건강한 보수가 건강한 논쟁을 펼쳐서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 일어날 수 있도록 다양한 강좌를 통해 돕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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