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5-19 11:50 (일)
 실시간뉴스
김도형의 사진과 이야기-어머니의 손
김도형의 사진과 이야기-어머니의 손
  • 김도형 기자
  • 승인 2016.02.28 07: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어머니의 손

고장난 휴대폰을 새것으로 교체하고 사진을 옮기던 중
지난 2월에 어머니가 세상을 등지기 전 병실에서 찍어 두었던
손 사진에 시선이 머물렀는데
무슨 이유였는지 기억은 저 먼 초등학교 4학년 어느 봄날의 하루로 날아갔다.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등교해서 자리에 앉자
선생님이 오늘 소풍을 간다는 공지를 전했다.
오후 수업이 있었어도 그렇게 늦게 마칠 때가 아니어서
도시락도 안 싸왔는데 예고도 없이 소풍을 간다 하니
당시 어린 마음에도 그건 좀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그것이 소풍이었는지 일종의 야외수업이었는지 기억이 가물하다.

공교롭게도 행선지는 학교에서 십리가 좀 못 되는 거리의 우리동네 뒷산이었다.
등교해 오던 길을 되짚어 전교생이 줄을 지어 언덕으로 올라가는데
걸음을 많이 걸어서였는지 점심 때가 멀었는데도 벌써 배가 고파왔다.

언덕에 당도한 우리는 소나무에 오르기도 하고
송화가루를 날리는 솔밥을 따먹기도 하면서 빨리 집에 가고 싶은 생각들을 했다.
그러던 중 보따리를 하나 들고 저 멀리 오솔길을 따라 올라오는
아주머니가 있어서 자세히 보니 내 어머니였다.

당시 우리집은 소풍간 언덕과는 거리가 한참 떨어져 있었는데
아들이 다니는 초등학교 아이들이 뒷산으로 소풍을 왔다는 말을 누구에게 듣고
도시락을 싸 가지 않았던 아들의 점심을 챙겨 온 것이었다.

소견머리 없이 그때 내가 어머니에게 한 말은 "뭐하로 왔노?"였다.
느닷없는 소풍이라 아무도 엄마가 따라오지 않았고
그 날 어머니가 입고 온 옷도 평소에 입던 몸뻬바지여서
다른 아이들에게 좀 창피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결국 어머니가 가져온 도시락은 먹지 않은 채로 집으로 가져갔다.
나 말고도 도시락을 싸오지 않은 아이들이 많아서 혼자서 밥을 먹을수도 없었다.

떠나보낸 지 두어 달이 지났지만
어머니 생각이 날 때마다 유독 그때 그일이 함께 떠오른다.

봄비가 내리는 창밖을 바라본다.

그 언덕이,
그 언덕의 소나무가 보고싶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