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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조명] 재벌가 여인들⑪ 한미약품 송영숙 회장 편 “미망인 총수로 모자(母子)의 난을 일으켰던 한미약품 송영숙 회장의 일장춘몽”
[재계 조명] 재벌가 여인들⑪ 한미약품 송영숙 회장 편 “미망인 총수로 모자(母子)의 난을 일으켰던 한미약품 송영숙 회장의 일장춘몽”
  • 홍성추
  • 승인 2024.05.0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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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숙 한미약품그룹 회장

 

재벌가 안방마님에서 재벌총수에 오른 재벌가 여인들은 꽤 있다. 대표적인 예는 애경그룹 장영신 회장이다. 장영신 회장은 1970년 남편이 갑자기 사망하자 남편이 운영하던 회사를 맡아 대 그룹으로 키운 여성 경제인의 대모다. 장영신 회장을 롤 모델로 삼은 재벌가 미망인들 중 유명한 몇 사람을 꼽으라면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 대신그룹 이어룡 회장이다. 이달엔 재벌가 분쟁의 새로운 유형을 제시했던 한미약품 분쟁의 내막의 주인공 송영숙 회장 편을 조명해본다.

최근 우리 경제계에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던 한미약품 그룹 송영숙 회장은 남편이 사망하면서 회장에 오른 케이스다. 다른 그룹과 달리 송 회장이 주목받은 것은 두 아들과 경영권을 놓고 분쟁을 벌였기 때문이다.

송 회장은 지난 3월 주주총회 전까지만 해도 사실상 그룹을 총괄하며 미망인 총수로서의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경영에 이견을 보인 두 아들을 제치고 전격적으로 OCI그룹과 통합을 선언해 재계의 주목을 받았다. 경영권이 넘어갈 수 있다고 판단한 두 아들은 모친인 송 회장에게 반기를 들며 주주를 끌어 모아 결국 모친의 꿈을 좌절시켰다. 이 ‘모자의 난’으로 한미약품 그룹은 창업주 집안의 치부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미망인 총수로 재계에 혜성같이 등장, 두 아들을 제치고 경영권을 행사하다 좌절하게 된 송영숙 회장은 누구이며 왜 모자간 경영권 전쟁을 벌였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종로 임성기약국으로 출발, 임성기 회장 한때 국내 주식부호 7위 랭크
 

임성기 회장

 

한미약품은 임성기 회장이 1967년 서울 종로에 ‘임성기 약국’을 설립하면서 시작됐다. 1940년 경기도 김포 출신인 임 회장은 중앙대 약대를 졸업하고 자신의 이름을 딴 임성기 약국을 열었다. 그 당시 약국은 의사 처방 없이 직접 조제를 했기 때문에 사실상 동네 의료기관이나 다름없었다. 임 회장은 국내 약사 최초로 하얀 가운을 입고 직접 환자를 면담하는 방식으로 영업을 시작했다. 그때는 월남전이 한창이라 성병약이 잘 팔리던 시절이었다. 성병도 창궐하던 시기였는데, 개별 상담을 통해 성병치료제를 조제해주면서 입소문이 나기 시작해 임성기 약국은 그야말로 호황을 누렸다. 서울 시내 3대 약국으로 소문날 정도로 대 성공을 거뒀다.

이에 자신을 얻은 그는 직접 제약회사를 만들어 약을 생산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실천에 옮겼다. 이때가 1973년이었다. 한미약품의 탄생은 이렇게 이뤄졌다. 한미약품 역시 복제약을 만들어서 파는 ‘제너릭’ 의약품이 주종이었다. 제너릭 의약품은 특허기간이 끝난 해외 의약품을 복제해서 만드는 약이다. 신약을 개발한다는 것은 그 당시에는 엄두에도 두지 못할 만큼 거대한 장벽이었다.

1990년대 이후 임 회장은 결단을 하게 된다. 신약에 대한 도전이다. 매년 매출의 10% 이상을 연구개발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첫 결실은 2000년에 나왔다. 국내 최초의 개량 신약인 아모디핀을 선보인 것이다. 이 신약이 나오자 일부에선 제너릭과 뭐가 다르냐는 비아냥도 나왔다. 그러나 이를 계기로 다른 제약회사들도 신약 경쟁에 나서게 됐다. 한마디로 국내 제약회사들을 신약 개발에 나서게 선도역할을 한 것이다.

2013년엔 역류성 식도염 치료제인 ‘에소메졸’이 처음으로 미국 시판 허가를 받는 쾌거를 이룬다. 국내 개량 신약 가운데는 처음이었다. 한미약품은 세계적 제약회사인 베링거인겔하임, 얀센 등에 기술 수출을 할 정도로 발전했다. 한미약품의 주가도 폭등했음은 물론이다. 한때 임성기 회장은 우리나라 주식부호 7위에 랭크될 정도로 재벌 이름에 등재됐다. 그러나 2020년 8월 임 회장은 80세를 일기로 영면하고 만다. 주변에 따르면 임 회장은 건강에 대해 자신을 갖고 있었고 건강관리도 철저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병원에서 내시경을 받았고 그 후유증으로 갑자기 건강이 악화돼 타계하고 말았다. 이때 도하 언론은 제약업계의 큰 별이 지다라는 추모 글로 추앙했다. 임 회장이 별세하면서 이목은 후계자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쏠리기 시작했다. 갑작스런 별세라 후계 문제나 주식 지분 등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임 회장 사망 후 장남 대신 미망인 송영숙 회장 취임

그 당시에는 장남이 지주회사 격인 한미사이언스 대표를 맡고 있어 장남이 회장에 취임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전망하고 있었다. 그러나 얼마 뒤 그룹 회장으로 미망인인 송영숙 여사가 취임한다고 발표, 재계를 놀라게 했다. 미망인들도 종종 그룹 경영권을 물려받은 적은 있지만 이런 기업은 대부분 아들이 어렸거나 집안 사정이 복잡하게 발생했기 때문이다. 비록 송 회장이 취임하더라도 상속 문제를 해결하면 자연스럽게 아들에게 경영권을 물려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장남인 임종윤 한미사이언스 대표에게 그룹을 승계하기 위한 과정이라는 해석이었다.
 

한미약품 본사 전경.(한미약품 제공)
한미약품 본사 전경.(한미약품 제공)

 

그러나 그룹 측은 송 회장의 취임에 대해 ‘송영숙 신임 회장 체제가 굳건히 장기간 이어질 것’이라며 ‘전문 경영인의 전문성과 가족들의 책임 경영이 조화를 이루는 체제를 안정적으로 유지한다는 게 회사의 방침’이라고 밝혀 의문을 낳았다. 이러한 그룹의 발표에도 대부분의 언론이나 재계에선 당연한 수사 아니냐는 반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송 회장은 임 회장 타계 전까지 그룹 경영에 나선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송 회장은 2002년부터 가현문화재단 이사장직을 역임한 것 외에 한미사진미술관을 설립해 관장을 맡아 문화 예술 분야에서 주로 활동을 해왔다. 경영 활동을 했다면 2017년부터 한미약품의 사회공헌활동 즉 CSR 고문직을 맡아 활동한 것이 밖으로 나타난 것은 전부였다. 송 회장은 사진 부분에서 숙명여대 재학생 때부터 활동해 상당한 실력을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관을 운영하며 직접 활동도 하고 고급 사진을 수집하기도 해 이 분야에선 자타가 인정하는 전문가로 소문나 있다.

그러나 그룹 측은 송 회장이 한미약품의 발전 과정에서 임 회장과 주요 경영 판단 사항을 협의하는 등 임 회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며 그룹의 성장에 공헌해 왔다며 경영 문외한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특히 중국 북경한미약품 설립 당시 한국과 중국의 정치 문화적 차이 때문에 발생한 여러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많은 기여를 했으며 국내 공장 연구소 설립에도 보이지 않는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최근 대기업 OCI와 통합 선언으로 재계 시선 집중

송영숙 한미약품그룹 회장.(한미사이언스 제공)
송영숙 한미약품그룹 회장.(한미사이언스 제공)

 

어쨌든 송 회장은 남편이 타계하고 얼마 안 돼 회장으로 취임해 경영에 임하다 최근 들어 대기업인 OCI와 통합하겠다고 전격 선언함으로써 다시 한 번 재계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엄마가 한미약품을 OCI와 통합해 신약개발의 시너지를 높이고 한미약품을 글로벌 제약회사로 키우는 역할을 하겠다고 선언하자 장남과 차남이 반기를 들고 나왔다. OCI와의 통합 결정 과정에서 배제된 형제가 한미사이언스 이사회를 통해 경영에 복귀해 통합을 저지하겠다며 주총 소집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두 형제의 경영 복귀 선언에 그룹 측은 진정성이 의심된다는 취지의 보도자료를 통해 이들의 행보를 비판하고 나서며 맞섰다.

장남인 임종윤 사장은 지난 10년간 한미에 거의 출근하지 않았을 뿐더러 그가 사내 이사로 있는 한미약품 이사회에도 한차례만 출석하는 등 한미약품 경영에 무관심했었다고 주장한 것이다. 실제로 임종윤 사장은 한미약품과 무관한 개인 회사를 운영한 것은 사실이다. 임산부 용품 제조와 산후조리 사업을 영위하는 코리그룹과 코스닥 상장회사인 DX&VX를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 이들 회사의 영업 상태가 그렇게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게 재계의 시각이다.

모친과 그룹 측은 이 회사의 건전성 문제를 놓고 임종윤 사장이 사적 욕심을 위해 한미를 이용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하기도 했다. 임 사장측은 개인 목적을 위해 한미를 이용한다는 것은 심각한 정보 왜곡이며 명예훼손의 여지가 있다고 반박했다. 송 회장과 그의 딸인 임주현 한미그룹 부회장은 주총 며칠 전까지 OCI와의 통합이 한미의 성장과 그룹이 연속성을 유지할 수 있다며 여론전을 펼쳤다. 지난 3월 29일 주총 직전까지 송영숙 회장 측 우호 지분은 40.85%, 임종윤 종훈 형제의 지분은 38.40%로 사실상 송 회장 측이 우세할 것으로 재계에선 전망하고 있었다.

송영숙 회장의 ‘일장춘몽’...승리한 두 아들은 모친에 화해 손짓

임종윤 한미사이언스 사내이사, 임종훈 사내이사
임종윤 한미사이언스 사내이사, 임종훈 사내이사

 

그러나 주총 결과는 두 아들의 승리로 귀결되고 말았다. 송 회장이 추진했던 OCI와의 통합도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이날 주총에서 예상을 깨고 임종윤 종훈 형제가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소액주주들과 오너일가 사촌들의 힘이었다. 이번 표결에서 모녀 측은 출석 의결권 수의 48% 찬성표를 받았고 형제 측은 52% 내외 찬성표를 얻어 과반을 넘겼다. 약 4% 포인트가 승패를 가른 것이다. 약 4%의 지분을 보유한 오너일가 사촌들이 막판에 형제를 지지하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전에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이 두 아들 편에 서며 OCI와의 통합에 반대를 표명, 송 회장에겐 불리한 면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송 회장은 국민연금을 우군으로 확보해 충분히 승산이 있는 것으로 비쳐진 것도 사실이다. 결과는 OCI와의 통합을 주장하는 어머니를 누르고 두 아들이 승리하고 만 것이다.

경영권을 놓고 모자가 이처럼 첨예하게 대립하자 재계에선 의아해 했었다. 보통 가족간 재산 분쟁은 이복형제와 같은 복잡한 집안 내력이나 경영 능력이 없는 장남이 경영권을 차지하려고 할 때 생기는데 한미약품그룹은 그런 상황과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임성기 창업 회장은 송영숙 회장과의 사이에 2남 1녀를 둬 복잡하지도 않았다. 살아생전에 장남을 지주회사격인 한미사이언스 대표로 선임하며 나름 후계 수업을 시키기도 했다. 미국 버클리 음대에서 재즈작곡 석사학위를 받은 장남 임종윤 사장은 밴드 리더로 활동한 적도 있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로 알려졌다. 음악활동을 접고 한미약품으로 입사해 부친 밑에서 착실하게 경영수업을 받고 한때 중국 사업을 총괄하기도 했다. 모친과 여동생인 임주현 부회장이 한미약품을 OCI에 통합하겠다고 선언하며 두 아들과 절연한 이유에 대해 주변에선 임성기 회장이 생전에 후계 구도에 대한 정확한 정리를 하지 않고 작고함에 따라 막대한 상속세를 내는데 대한 부담이 작용한 것 아닌가하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송 회장이 아들이 아닌 딸을 후계자로 세운 것에 대한 여러 가지 뒷말이 나오고 있기도 하다.

보통의 엄마는 딸보다 아들을 후계자로 삼는데 송영숙 회장은 두 아들을 제치고 딸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했다는 해석이다. 어쨌든 한미약품의 모자간 분쟁은 주주총회를 통해 두 아들의 승리로 귀결되고 말았다. 주총에서 승리한 두 아들은 모친에게 화해의 손짓을 내밀며 ‘회장’직을 그대로 유지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번 모자간 분쟁은 재벌가 분쟁의 또 다른 유형의 사례로 남을 것으로 재계에서 분석하고 있다. 분쟁의 상처가 쉽게 아물지 않을 것이란 진단이다.

글 홍성추(본지 회장) 사진 뉴스1 Queen DB

홍성추 언론인

필자는 서울신문 기자 때부터 30년 넘게 재벌가를 취재해 온 재벌 전문기자. 서울신문 산업부장 때 기획 연재한 ‘재벌가 혼맥 인맥 대 탐구’는 재벌집안의 이면사를 다룬 최초의 기획이었다.이 기획은 나중에 ‘재벌가맥’으로 출간 되었으며 우리나라 최초로 재벌 3세를 정면으로 다룬 저서 ‘재벌3세’와 논문으로 ‘재벌가 분쟁 유형 연구’가 있다. 국내 최초로 재벌가 이야기를 다룬 유튜브 채널 ‘홍성추TV'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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