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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형의 풍경 '잃음과 그리움'
김도형의 풍경 '잃음과 그리움'
  • 김도형 기자
  • 승인 2019.09.23 06: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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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김도형의 풍경 '강화도, 2018' (유튜브 검색창: 김도형의 풍경, 인스타그램: photoly7)
사진작가 김도형의 풍경 '강화도, 2018' (유튜브 검색창: 김도형의 풍경, 인스타그램: photoly7)

 

1990년 5월 서울신문사 입사시험에 붙어 고향집에서 상경을 준비하고 있는데 같은 마을 한 형님의 어머니 께서 서울 가거든 형님을 만나 보라면서 전화번호를 알려 주셨다.

두 어번 잠깐 들렀던 것이 전부인 낯선 서울생활에 조금 익숙해 질 무렵 문득 그 때 전화번호를 받았던 형님 생각이 나서 전화를 했다.

"행님 내요. 도행이. 서울에 취직해 올라와 있는데 행님은 오데요?"
"니는 오덴데?"
"여기 광화문 프레스센터 있는 서울신문사."
"오이라 지금."
"지금요? 오데로요?"
"오데긴 오데고 너 회사와 붙어있는 호텔이지."

참 좁은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넓은 서울에 아는 사람이 딱 한 사람 있는데 그 사람의 생활터전이 내가 근무하는 회사와 붙어 있다니.

전화를 끊고 점심시간에 들렀더니 과연 옛날 모습 그대로인 형님이 그 호텔 커피숍의 지배인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형이 없는 나는 그 후 뻔질나게 커피숍을 드나 들며 형님과 정을 나누었다.

네 살이나 위인 형님은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서울로 갔으니 고향에 있을 때 별로 대화를 해 본 적이 없었지만 하도 자주 드나드니 친형제와 다를 바 없이 친해졌다.

1993년 크리스마스 이브날의 해프닝을 잊지 못한다.

당시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던 고향친구와 나는 크리스마스 이브라고 해도 마땅히 갈 곳도 없고 해서 형님 커피숍에 들렀다.

근무를 마친 형님이 자기 집에 가서 삼겹살이나 구워 먹자고 해 우리는 캐럴과 구세군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거리를 잠시 거닐다 역곡행 1호선 전철을 탔다.

형님 집에 도착해 현관문을 열려고 하는데 그 날 따라 열쇠를 커피숍에 두고 왔다고 했다.

수군거리던 두 사람이 옥상으로 올라가서 따라 가봤더니 세상에 해병대 출신인 친구가 밧줄을 타고 창문으로 진입하려는 위험 천만한 일을 꾸미고 있었다.

내가 하도 호통을 치니 두 사람은 그제서야 하던 일을 멈췄는데 열쇠를 가지러 서울로 다시 갈 수도 없는 상황에서 난감해 하고 있는데 형님이 그러면 성당에 미사를 드리러 간 집 주인 할머니를 찾아 가자고 해서 우리는 성당으로 향했다.

성당에 도착해 들어가 보니 신도들은 하나 같이 면사포를 쓰고 있어서 누가 누구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미사를 집전하는 신부님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리는 와중에 깡 마르고 구부정한 우리의 형님은 의자 사이로 난 복도를 따라 걸어며 한 사람 한 사람 살피고 다녔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우습던지.

결국 미사가 끝나고 할머니를 만나 우리는 형님의 자취방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보일러를 켜고 사들고 간 고기를 굽는데 고기가 익으면서 무슨 거품 같은 것이 생겨서 우리는 이 고기가 상한 것이라고 결론 내렸는데 그 순간 형님이 고기를 다시 싸들고 정육점으로 갔다.

삼십 분이 되어 가는데도 오지 않아서 무슨 일이 생겼나 하고 걱정하고 있던 차에 형님이 돌아왔다. 그런데 런닝이 찢어져 있는 등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말인즉슨 정육점 문을 홱 열고 들어간 형님이 굽다만 고기를 싼 비닐봉지를 던지면서 "이거 썩었어" 라고 했는데 그걸 본 정육점 주인과 몸싸움 수준의 실랑이가 벌어졌다는 것이었다.

그말을 들은 우리는 분기탱천하여 복수를 하러 나가려 하는데 형님이 자기가 엄청 많은 혼을 냈으니 갈 필요가 없다며 말렸다.

냉장보관하고 유통이 빠른 고기가 썩긴 왜 썩었겠나. 고기가 익으면서 연한 부분의 살점이 부풀어 오를 수 도 있는데 그걸 썩었다고 그 난리를 쳤으니 웃지 못할 크리스마스 이브의 해프닝 이었다.

그로 부터 십 년이 지났을 무렵의 어느 날 그 커피숍을 인수해 운영하던 형님이 커피 뿐 아니라 호프도 판다는 홍보 플래카드를 호텔 2층 난간에서 걸다가 그만 추락하여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세상에 이런 허무한 일이 또 있나. 고작 2층에서 떨어진 사람이 죽다니.

눈앞이 캄캄했다.

장례식장에서 천진하게 놀고 있는 형님의 어린 딸을 보고 억장이 무너졌다.

늦장가를 가서 겨우 하나 얻은 딸을 생시에 얼마나 예뻐하던지.

형님의 유해를 모신 공원이 파주 봉일천 변에 있는데 근자에 들러보지 못했다.

이제 날씨도 선선해 졌으니 한 번 다녀와야 되겠다.

"네 감사합니다. 커피숍 두메라 입니다."
"감사하긴 뭐가 맨날 감사하요?"
"난 또 누구라고. 오이라 임마."

형님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전을 맴돈다.

사람은 가고 그리움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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