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5-18 07:05 (토)
 실시간뉴스
아름다운 방황이 삶을 바꾼다 시인의 감성을 가진 과학자 최재천 교수의 MESSAGE
아름다운 방황이 삶을 바꾼다 시인의 감성을 가진 과학자 최재천 교수의 MESSAGE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11.09.14 15: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래전 복잡한 서울보다는 강릉의 자연을 사랑했던 소년이 있다. 공부보다는 산과 들을 뛰어다니며 노는 것을 좋아했고 책 읽기를 즐겼던 소년은 시인의 꿈을 키우기도 했다. 조각가가 될 뻔도 했다. 이화여자대학교 에코과학부 최재천 석좌교수의 이야기다. 세상을 향한 다양한 관심과 호기심을 가지고 있던 그의 인생은 여러 가지 우연과 필연을 거쳐 어린 시절 꿈과는 꽤 동떨어진 과학자의 삶으로 이어졌다. 서울대를 졸업하고 하버드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다시 미시간 대학교에서 교수와 명예교우회의 연구원, 서울대 교수를 거쳐 지금의 이화여자대학교 에코과학부 석좌교수로 살아가고 있는 성공적인 삶. 언뜻 탄탄대로의 삶이라고 여겨지지만, 그러한 삶 속에서 그 역시 방황의 시기를 겪었고 좌절감을 맛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위기의 순간에 직면할 때마다 늘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며 스스로를 다잡았고, 자신이 꿈꾸는 삶에 접근하기 위해 노력했다.

방황하는 청춘에게 고함
어린 시절 누구보다 놀기 좋아했던 최 교수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어려운 가정 형편을 인지하게 되면서 처음 방황을 경험했다. 4형제 중 바로 아래 동생이 심장판막증으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면서 만만치 않은 병원비가 들었던 것.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그의 어머니는 장남인 그에게 과외를 시켰다. 중학교 입시가 존재하던 당시에 명문 중학교를 보내야 한다는 교육열 덕분이었다. 놀기 좋아하는 성향은 중학교나 고등학교 때도 여전했다. 대학입시에 실패한 뒤에도 방황은 이어졌다. 대학 4학년이 되어서야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정했던 그는 이후 각고의 노력 끝에 지금의 자리에 이르렀다.

방황의 시간이 나타나면 반갑게 맞아주라고 하셨는데요. 교수님의 경우는 어떠했나요.
조숙하다는 것을 우리말로 ‘더넘스럽다’라고도 해요. 어려운 형편에 부유한 집 아이들과 함께 과외를 하면서 세상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구김 없이 살다가 더넘스러운 아이가 된 거죠. 그 이후에도 물론 방황은 있었습니다. 특히 서울대 의예과에 낙방했을 때였죠. 힘들기로는 그때가 제일 힘들었고 방황도 많이 했어요. 하지만 방황에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가끔 고등학교에서 하는 강연의 제목이 ‘아름다운 방황’입니다. 청소년들에게 방황을 하라고 이야기하죠. 단 끌려가는 방황이 아닌 자기가 주도하는 아름다운 방황이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겪은 인생의 방황 중에도 스스로 주도한 방황이 있고, 또 끌려가면서도 뭔가 찾으려고 애쓴 방황이 있어요. 누구나 방황의 시기에는 그 순간을 다시없을 절망으로 느끼겠지만, 그럼에도 이겨내리라 마음먹으면서 자기 스스로를 믿고 끊임없이 길을 찾는 것이 아름다운 방황이죠. 방황 속에서도 주도권을 쥐려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입시 위주 풍토에서 많은 청소년이 대학 진학 이후의 삶을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또 대학을 가서도 취직이라는 힘겨운 관문을 넘어야 하는데요. 많은 젊은 세대가 경쟁에서 뒤처지는 것에 조바심을 내고 있습니다.
우선은 그런 상황에 있는 젊은 세대에게 ‘이렇게 해라’ 하기보다 사과부터 하고 싶어요. 정말 미안해요. 모두 기성세대가 만들어 낸 구도니까요. 미래학자들의 예측을 보면 앞으로는 직업을 적어도 다섯 번쯤 바꾸는 시대가 됩니다. 예컨데 좋은 대학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좋은 직장을 얻는다면 그렇지 못한 친구들에 비해 행복하겠죠. 그런데 40대쯤 되면 그중 몇 명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다시 새로운 직장을 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경영학은 이론이 자주 바뀌는 학문이죠. 회사 입장에서는 새로운 이론을 배운 졸업생을 뽑지, 월급은 많이 주면서 케케묵은 이론만 알고 있는 사람은 뽑지 않습니다. 요즘 학생들은 기초학문을 공부하기보다는 제일 잘나가는 이론만 공부해 직장을 구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저는 학생들에게 다섯 번의 직업을 구해야 하는 시대에 대학에서 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일은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기초를 확실히 다져두는 거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언제든지 새로운 공부를 해서 직장을 구할 수 있거든요.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서 기초학문을 착실히 쌓는다면 기회와 여건이 주어졌을 때 누구나 실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는 단기 경쟁이 아니라 평생 공부를 해야 하는 시대가 옵니다. 긴 마라톤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포기하지 말고 즐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공부는 어떤 의미에서 배우자보다 더 오래 함께할 평생의 반려자예요.
대학에 가서도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지 못해 고민하는 이들도 있는데요.
그 점은 제가 절실히 겪은 것이라 확실히 알고 있죠(웃음). 대학 4학년이 돼서야 길을 찾았거든요. 성적관리를 잘 못해서 그 후에도 상당히 고생을 했죠(웃음). 그냥 앉아서 ‘나는 뭐하면 좋을까’ 생각만 하는 소극적인 태도 대신 적극적으로 덤벼들어 경험해보고 찔러보고 느끼세요. 원하는 학과에 가지 못해서 저 역시도 나름 우울한 대학생활을 하며 방황했습니다. 매일 같이 술을 마시고 ‘세상이 왜 이럴까’ 한탄한 적도 있죠. 그러면서도 정신이 날 때는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돌아다니며 알아보고 찔러보는 일을 반복했죠. 집안에서는 외교관이 되라고 말씀하셔서 대사관에도 가보고 외교부에도 가봤어요. 또 아나운서를 해보면 어떨까 해서 당시 최고로 인기 있었던 봉두완 앵커를 찾아가 “선생님처럼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물어보기도 했고요. 그러니까 그분이 ‘나도 하다 보니 어쩌다 이렇게 하게 됐다’고 하시더군요(웃음). 신문기자가 돼볼까 해서 신문사에도 가보고 이것저것 참 많이 찔러봤죠. 물론 그 시간에 공부를 했으면 성적이 나쁘지 않았겠지만 지금도 전혀 후회하지 않아요. 그런 경험들이 제겐 다 도움이 됐고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제 길을 찾았으니까요. 그렇게 찾다 보면 어느 순간 눈앞에 고속도로가 보이거든요. 그때부터 달리면 됩니다. “뒤져라 언젠가는 나타난다. 좀 더 적극적인 방황을 해봐라”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너무 늦은 건 아닌가 걱정하는 사람도 많은데요. 심지어 직장에 가서야 자신의 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사람도 있는데 이런 사람들에게 필요한 마음가짐은 어떤 것일까요.
제가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에서 석사학위 논문을 제출했는데 연구를 잘했다고 박사학위를 주겠다는 것을 거절한 적이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제정신이 아니었죠(웃음). 기생충 연구 논문이었는데 제가 하고 싶은 공부는 사실 따로 있었거든요. 그런데 전 그때 ‘기생충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아 평생 해봐야 내가 원하는 게 아니야. 나는 아프리카에 가서 동물을 연구해야 하는데…’라는 생각뿐이었죠. 어느 것을 하는 것이 더 성공이냐 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 더 중요했어요. 하지만 요즘 젊은 세대를 보면 무엇이 된다는 것에 너무 갇혀 있는 것 같습니다. 무엇을 하느냐가 사실은 더 중요하거든요. 여하튼 결국 다시 제가 원하는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받는 데는 7년이 걸렸습니다. 사실 그 와중에 조금 후회하기도 했어요(웃음). 하지만 지금 돌아봤을 때는 후회하지 않습니다. 모두 경험으로 남아 제가 학문의 길을 가는 데 도움이 됐으니까요. 살아가면서 지금에 이르러보니 제가 전혀 늦은 것이 아니더군요. 늦게 시작했고 오래 걸렸지만 살아보니 인생에 시기가 다르다고 큰 차이는 없더군요. 운전과 비슷한 것 같네요. 조금 먼저 가더라도 신호등에 걸리고 결국은 같이 가게 돼 있거든요. 늦었다고 생각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보면 늦은 것이 아니죠.

좋은 부모가 된다는 것
자녀를 믿고 삶의 모범을 보여주는 것은 부모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