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호호호. 제 결혼식 때니까 벌써 30년이 지났네요.”
지난 7월 중순, 제10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PiFan20 06) 심사위원으로 고국을 찾은 왕년의 스타 윤정희(62) 씨는 나이를 무색하게 할 만큼 낭랑한 목소리에 간간이 웃음을 섞어가며 옛 기억을 떠올렸다.
윤씨는 하루 평균 10편가량의 영화를 보고 심사위원들과의 미팅, 국내 지인들과의 만남 등으로 바쁜 일정을 보내다 그가 살고 있는 프랑스 파리로 출국하기 이틀 전이 돼서야 시간을 냈다.
“문신 선생님은 우리 부부(윤정희·백건우)에게 아버지 같은 분이셨어요. 작품에만 전념하시느라 사람들에게 냉정했지만 우리 부부와 딸에게는 항상 따뜻하게 대해주셨죠.”
윤씨는 한국이 낳은 세계적 조각가 고(故) 문신(文信, 1923~1995)에 대해 존경심과 함께 애틋한 마음을 나타냈다. 윤정희·백건우 부부는 1976년 3월 프랑스 파리 고암 이응로 화백(1904~1989)의 집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주례는 이 화백이 했고 문신은 윤씨의 아버지를 대신해 윤씨의 손을 잡고 신랑 백건우 씨에게 인도했다. 문신은 윤정희 부부가 결혼하는 데 산파역을 했을 뿐 아니라 두 사람이 이국생활을 하면서 어려움을 겪을 때 아버지와 같은 병풍이 돼주었다.
“남편을 처음 만난 것은 1972년 독일 뮌헨올림픽 때였지만 2년 뒤 우연히 파리 레스토랑에서 만났을 때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어요. 아마 운명이었나 봐요. 그때 문신 선생님을 처음 뵈었어요.”
윤씨는 고 신상옥 감독의 영화 ‘효녀 심청’이 뮌헨올림픽에 초청돼 주연배우로 참석했다가 세계적 음악가 윤이상(1917~1995) 씨의 오페라‘심청’을 보기 위해 뮌헨을 방문한 피아니스트 백건우 씨를 처음 만났다.
윤씨는 1960~1970년대 문희, 남정임과 함께‘은막의 트로이카’로 불리던 유명 인기배우였고, 백건우 씨 역시 국제 콩쿠르 수상 등으로 국내에 알려져 있었지만 활동 분야가 달라 초면에 서먹서먹하였다고 한다. 이때 윤이상이 두 사람을 소개하면서 분위기를 누그러뜨렸다.
윤이상은 경남 통영 출신으로 일본 오사카 음악학교(1935년), 프랑스 파리 국립음악원(1956~1958)을 수학한 후 1959년 독일에서 열린 다름슈타트음악제 때 쇤베르크의 12음계 기법에 한국의 정악(正樂) 색채를 담은 ‘7개의 악기를 위한 음악’을 발표, 유럽 음악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1967년 ‘동백림 사건’에 연루돼 서울로 강제 소환, 2년간의 옥고를 치른 뒤 1971년 독일에 귀화했고 독일 측의 요청으로 1972년 뮌헨올림픽 개막 축하 오페라‘심청’을 썼다.
“뮌헨올림픽 행사 기간 동안 남편과 만나면서 예술과 삶 등에 대해 얘기를 나눴는데 독일 유학생들과 맥주를 마시러 갔다가 남편으로부터 장미꽃 선물을 받고 감동했어요.”

윤정희·백건후 커플, 프랑스 레스토랑에서 우연히 만나다
윤정희 씨는 곧 국내로 돌아와 영화에 몰입하면서 백건우 씨를 잊고 지냈다고 한다. 그러다 1974년 청룡영화제 시상식에서 “영화와 연기를 더 공부하고 싶다”고 소감을 발표한 뒤 실제 그해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가 남편과 재회했다.
“뮌헨에서 처음 만나고 2년쯤 지나 파리로 와 그곳 영화를 열심히 관람하고 난 뒤 부근 레스토랑에 갔다가 우연히 남편을 만났어요.”
윤씨는 파리의 생 미쉘 뒷골목 예술영화관에서 스웨덴이 낳은 20세기 최고의 영화작가 잉마르 베리만의 영화를 보고 부근 레스토랑에 갔다가 문신과 함께 있는 남편을 발견했다고 한다.
“남편이 저를 문신 선생님께 소개했는데 그때 문신 선생님은 무덤덤한 모습이었어요. 그후에도 얼마동안 그러셨는데 나중에야 이유를 알 수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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